조각 꿈은 창 아래 아직도 머물고 있다네 : 忘牛存人 / 만해 한용운
조각 꿈은 창 아래 아직도 머물고 있다네 : 忘牛存人 / 만해 한용운
  • 성광일보
  • 승인 2016.01.1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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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7)

조각 꿈은 창 아래 아직도 머물고 있다네 : 忘牛存人 / 만해 한용운

일곱 번째는 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 이제 때가 왔으니 채찍과 고삐를 다 내버리고, 초가집에서 살아간다. 모든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집에 돌아와서 그동안 애쓰며 찾던 소는 잊어버리고 자기만 남아 있다는 다른 진리다. 본래의 자기마음을 찾아 이제 나와 하나가 되었으니 굳이 본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참 나]를 찾으려는 것을 비롯해 그 모든 것이 다 꿈이었다. 시인은 복사꽃 숲과 들은 벌써 잊었다고 한다 해도, 조각 꿈은 작은 창 아래 아직도 머물고 있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忘牛存人(망우존인) / 만해 한용운

강과 산을 향하여 마음껏 뛰어노니
복사꽃 숲과 들을 잊었다 한다 해도
조각 꿈 작은 창 아래 아직도 머물면서.

自任逸蹄水復山 綠水靑山白日閒
자임일제수부산 녹수청산백일한
雖然已忘桃林野 片夢猶在小窓間
수연이망도림야 편몽유재소창간

조각 꿈은 창 아래 아직도 머물고 있다네(忘牛存人)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강과 산을 향하여 마음껏 뛰어노니 / 녹수청산은 대낮인데도 그지없이 한가로워라 // 복사꽃 숲과 들을 벌써 잊었다고 한다 해도 / 조각 꿈은 작은 창 아래 아직도 머물고 있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강과 산을 뛰어노니 그지없이 한가롭네, 복사꽃 숲 잊었대도 조각 꿈은 머물고 있고’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소를 잃은 사람이 있네]로 번역된다. 한번 손에 들어 온 소라도 영원히 내 손아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점엔 다시 소를 잊어버린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영원히 내 것인 것도, 영원히 내 소유인 것도 없다고 가르친다. 이를 흔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했다.

시인은 소가 강과 산에서 마음껏 뛰어 놀았음을 회상한다. 우직한 소이고, 주인의 말에 순종치 않으면 채찍까지 맞으면서 시달린다. 방종과 자만을 키워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 그래서 시인은 마음껏 뛰어 놀았던 그 모습이 녹수청산은 대낮인데도 한가로운 것 같다고 했다.

화자는 한 조각의 꿈들이 아직도 머물고 있다는 후정(後情)의 시심을 담는다. 복사꽃 숲과 들은 벌써 잊었다 할지라도 ‘조각 꿈은 창 아래 아직도 머물고 있네’라고 했다. 어느 구절 어느 시상도 경(景)과 정(情)의 조화를 담았다.√ 불가에서는 망우존인(忘牛存人)를 다음과 같이 기린다(頌). [소를 타고 이미 고향에 도착하였으니(騎牛已得到家山) / 소도 공(空)하고 사람까지도 한가롭네(牛也空兮人也閑) / 붉은 해는 높이 솟아도 여전히 꿈꾸는 것 같나니(紅日三竿猶作夢) / 채찍과 고삐만은 띠집 사이에 부질없이 그대로 놓여만 있네(鞭繩空頓草堂間)]

【한자와 어구】
自任: 마음 대로. 逸蹄: 발굽으로 달리다. 水復山: 강과 산. 綠水: 푸른 물. 靑山: 푸른 산. 白日閒: 한 낮에도 한가롭다. // 雖然: 비록 그렇지만. 已忘: 이미 잊다. 桃林野: 복사꽃 숲과 들. 片夢: 한 조각의 꿈. 猶: 아직도. 오히려. 在: 있다. 小窓間: 작은 창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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