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중국 명나라 때 원황(袁黃)이란 분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여 새 삶을 살았기에 이 분의 요범사훈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는 원황선생이 어떻게 운명을 개척하였는가? 를 통해서 우리 삶의 모범으로 삼기 위해 그 분의 일생을 더듬어 보고 이 기회에 내 삶을 반성하는 계기를 만들어보자.
선생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아래서 의술을 배우기를 목표로 하였다. 이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염원이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의술은 남을 구제 할 수도 있지만 생활도 꾸릴 수 있는 직업으로 권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학공부를 하던 중 어느 날 자운사(慈雲寺)에서 긴 수염의 신선처럼 위엄이 있어 보이는 노인을 만나서 자신미래에 대한 예언을 듣게 된다.
그 노인은 자신은 운남사람으로 성은 공씨인데 원황에게 ‘당신은 벼슬길을 갈 사람이고, 내년이면 학교에 진학 할 텐데 어찌 책을 읽지 않는가?’라고 말하기에 그 연유를 물으니 자신은 소옹(소강절)의 황극경세서에 담긴 수리(역학)를 정통으로 전해 받았기에 그 수리의 내용을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원황은 공선생을 집으로 모시고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운수를 뽑아 보니, 1차 생원시험에 14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시험은 71등으로 합격하고, 마지막 시험은 9등으로 붙는다고 예단을 해 주었다. 그리고 원황이 다음해에 시험을 본 결과 위의 사실과 같이 딱 들어맞았다.
그래서 다시 공선생을 만나 평생의 길흉을 점쳐 보았는데 점 쾌에는 언제 보는 시험은 몇 등을 하고, 언제 벼슬길에 오르고, 또 언제 진급을 하고, 그래서 녹봉이 얼마가 되고 몇 년도에는 사천성의 대윤이 된다. 대윤에 부임한지 삼년반이 지나면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53세 8월 14일 축시에 거실에서 죽는다. 아깝게도 자식은 없다'고 예언하였다.
이후로 원황은 시험을 볼 때마다 공선생의 말이 맞았으며, 또 자신의 벼슬이 올라가 받은 봉록도 정확히 맞았기에 원황은 공선생이 일러준 내용을 잊어버릴까? 염려하여 따로 적어두었으며, 마음속에 새겨서 항상 확인해 보며 그렇게 믿고 살았다.
이렇게 운명에 맞추어 살다보니 마음이 담담해져 어떠한 물욕이나 욕심도 사라졌다. 그래서 책은 멀리하고 틈틈이 참선으로 마음을 닦는 중 어느 날 37세 되는 해에
남경의 서하산(棲霞山)에서 휴식을 가지고 참선을 하는 중 그 곳의 운곡선사를 만나서 인생관이 바뀌는 일이 생긴다.
운곡선사와 한 방에 마주앉아 사흘밤낮 동안 눈을 붙이지 않고 선정에 들자 운곡선사가 깜짝 놀라 물었다. ‘평범한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없는 원인은 잡념망상에 마음이 얽매이기 때문인데 당신은 사흘밤낮을 앉아 있으면서 한 순간도 잡념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이오’ 하고 물으니 원황이 공선생과의 있었던 사실을 말하고 자신은 계산된 운명으로 살고 있으며, 영욕이나 생사에는 일정한 운수가 있기에 아무리 훌륭한 생각을 가져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망상할 건더기가 없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