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일(克日)과 반일(反日)의 사이
극일(克日)과 반일(反日)의 사이
  • 성광일보
  • 승인 2016.06.1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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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욱/성동신문 논설주간

▲ 이춘욱/성동신문 논설주간
자유민주주의가 왕도정치의 역사적 경험이나 공산주의 몰락을 통해서 체제의 우월성을 보이는 것은 다른데 있지 않다. 바로 자기와 다른 다양함을 인정하는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사상의 다양화는 획일적 국가관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수령유일 사상이 지배하는 북한과 대비해서 보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간혹 자기와 생각이 다른 층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관대하지 않을 때가 많이 있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 미성숙이라 해도 좋다. 대다수가 수긍하는 어떠한 현상이나 논리를 자기만의 절대 논리로 만든다. 그리고 그기에 반대하면 곧 나라를 떠나야 할 만큼 가혹한 획일화를 강요하는 현상이다. 반일 사상이 대표적인데 이것은 과거 국시논쟁과 차원이 다른 일종의 린치에 가깝다.

국시(國是)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국민 전체가 지지하는 국가의 이념이나 국정의 근본 방침’이라 정의하였다. 프랑스는 “자유·평등·박애”로 하였는데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어 시비의 대상에서 벗어난 측면도 있겠다.

우리나라 국시는 무엇일까? 이제 아는 사람도 드물고 고민하는 사람도 없어 흐지부지 해졌다. 헌법에도 없는 이것은 “반공(反共)”이었다. 아마 학생들에게 반공의 뜻을 물으면 잘 모를 정도로 이제 냉전은 진즉에 끝이 나버렸다.

동서 냉전이 한창일 때 88올림픽을 앞두고 유성환이라는 국회의원은 1986년 대정부 질문에서 “반공이 국시인 나라에 공산진영이 참가할 것인가? 우리나라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 하였다.

그는 면책특권이 있는 국회 본회의 발언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수감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웃음이 나올 지경이고, 배우는 아이들에게 어찌 설명을 해야 할지도 난감하다.

반공이 국시라는 근거는 5·16 직후 ‘군사혁명위원회’가 발표한 6개항의 성명 중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라는 첫 항에 있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것 못지않은 현상은 지금도 반일이라는 포장으로 우리 주변을 횡행하고 있다. 통일은 반공과 이념 그리고 민족의 개념보다 높은 가치라고 했던 그는 제6공화국이 들어선 뒤 대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요즘의 난도질은 그런 은전을 기대하기는 요원하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데에 누가 어떠한 반론이 있을 수 있겠는가? 종군위안부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에 어떠한 주석이 더 필요한가? 하여 위안부 소녀상을 이전할 용기는 누구라도 낼 수 없다. 친일 인명사전을 통해 생계형 기술자라도 직급이 높다고 해서 죄다 수록하여 후손들로 하여금 오금 저리게 하는 서슬에 누가 방울을 달 수 있는가?

역사 교육은 곧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믿는다. 지난 역사의 교훈을 잊어버리면 곧 치욕의 역사는 되풀이 되는 법이다.

서애 유성룡 선생은 임진왜란 이후 가물가물한 기억과 흐릿한 시력으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후세에 길이 경계하고 신칙하기 위해서 『징비록(懲毖錄)』을 집필하였다. 그러나 이 책은 조선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당하였다.

더하여 청나라의 침략을 받아 삼전도 굴욕을 당한 우리는 노론 정권 200년 유지에 급급하였을 뿐 왜란이나 호란에 관한 어떠한 반성도 대비도 하지 않았다.

일본은 임진왜란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하여 『징비록』을 열독하며 자기들 입장에서 반성하고 연구하였다. 일본으로 간 ‘조선통신사’가 그곳에서 연구대상이 되어 있는 현상을 보고 경악하였다. 그러나 본 것으로 그뿐 달리 어찌 하지는 않았다. 그 결과는 20세기 들어 나라가 망하는 참혹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역사적 체험을 교훈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결과는 국권의 침탈이요 오만 백성의 고통을 필연적으로 수반하였다. 이는 곧 숙명이다. 위안부 문제는 근시적인 감성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나라를 지키지 못한 위정자의 자세와 국민의 의식에서 우선 잘못을 살펴야 한다는 거다.

인류역사를 통해 나치와 공산주의와 더불어 앞으로 더한 악행이 없을 정도가 지난 일본제국주의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 다행한 것으로 전쟁이 마무리되었다. 바로 원폭피해가 그것이다. 인류에 대한 중대범죄를 저지른 국가가 원자폭탄 투하로 인하여 참혹한 피해를 입은 양 옷을 갈아입었다. 그들이 독일과 다르게 반성할 줄 모르는 저의는 나는 여기서 찾는다.

어렵게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간에 합의를 보았지만 아직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급진 진보좌파가 아직도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은 진정으로 희생자를 위로해서가 아니다. 한심한 해양경찰의 구조형태를 빗대어 국가를 조롱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도 그렇다. 소녀상이 추워한다고 옷을 껴입히는 것은 박애가 아니라 반일이다. 이제 반일을 넘어 극일로 가야할 듯하다. 그래서 제기해보는 명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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