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1)
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1)
  • 성광일보
  • 승인 2016.08.2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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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얌 미얌

▲ 김정숙/논설위원
어제 밤 한강 풀숲에서 잠을 자던 풀벌레들은 '쎄악쎄악' 대거나 '쓰억쓰억' 대며 코를 골더니 신 바람을 타고 날아온 매미는 우리 집 베란다 방충망에 앉아 '미얌미얌' 대며 아침을 열었다.

'따르르릉' 심장이 벌떡이도록 요란하게 잠을 깨우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깊은 울음으로 깨워 줄터니 그 소리에 잠을 깨라고 '미얌미얌' 대며 계속 울었다.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가 신문에 오르고 TV 화면에서 모자이크된 인물이 새된 소리로 악다구니를 쓸 무렵 위층의 아이들이 이사를 왔다.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소음이 발생할테니 양해해 달라며 찾아온 위층 아주머니는 새댁의 미소처럼 부끄럼 반 반가움 반으로 차마 '앙돼욧!'이라는 말을 꺼낼 수 없게 다소곳하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공사가 끝나고 이사를 들어오고 이사 맞이 시루떡이 아이들 손에 내려왔을 때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는 희망과 새로움이 새록록새록 솟았다.

그 아이들이 이사를 오고 다음 날 부터 위층에선 수시로 '우두두두두두' 하며 자갈이 굴러가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 달리는 것 같기도 한 소음이 들렸다.

그 소리에 참다못한 딸이 신경증적 발작을 일으켜서 '내가 아이들을 고이 타일러보리라!' 초인종을 눌렀다.

그랬더니 열린 현관문으로 시루떡을 배달했던 두 남자아이가 '안녕하세요~~!' 하며 내 품에 덥석 안기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뛰어 오른 작은 아이를 덥석 안을 수 밖에 없었다.

“오~ 그래! 안녕!”하며 아이들을 바라보니 작은 아이가 삑삑이 신발을 신고 거실 바닥을 뛰어다녔던 거다.

아이들의 엄마는 뛰는 아이들 때문에 층간 소음이 날까봐 푹신한 소음방지용 자리를 거실 바닥에 넓게 깔아 두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아래층 우리 집에 '우두두두두' 하며 울린 걸 탓할 순 없었다.
그래서 살짝 말했다.

“저, 혹시요,오후 1시부터 4시까지만 아이들이 뛰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시간에 우리 딸애가 공부하는 시간이라서요!” 순간 아이들의 엄마는 “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주의 시킬께요."

죄송하다는 말을 듣는게 더 죄송하도록 목소리를 조아린 아이들의 엄마는 그 후 오후가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마트에 가거나 했다.
애써주는 모습이 하도 고마워서 딸에게 도서관에 가기를 권했다.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가 인사를 잘 하듯이 만날 때마다 늘 정겹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먼저 인사를 해도 멀뚱멀뚱 쳐다보거나 엘리베이터 천장을 쳐다보며 인사하기를 쌩까는 아이들이 수두룩한 요즘 세상에 천연기념물처럼 자라는 아이들이 곱고 아름다웠다.

그 아이들이 어느 휴일 날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형아, 이거 곰 벌레다. 곰 벌레야!”라며 땅의 벌레와 곤충을 잡고 있었다.
개미와 좀 벌레를 손으로 잡는 아이들은 두려움도 공포도 없이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아이들과 말을 섞으며 함께 개미 얘기와 좀 벌레 얘기를 하다가 우리 집에 아침마다 날아오는 매미 얘기를 해줬다.

아이들이 매미를 잡아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선뜻 그 매미를 '우리 집 매미'라고 하며 그걸 잡아주겠다고 했다.

그 후 매미 생각에 잠이 안 왔다.
매일 오던 매미가 좀처럼 오지 않아서 '혹시 매미가 잡힐 걸 눈치챘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드디어 신 새벽에 잠을 깨우던 매미가 아이들과 약속을 한 뒤 나흘 만에 왔다.
그 새벽 방충망에 날아와 나를 깨우던 매미는 한 번의 저항도 없이 내 손에 잡혔다.
비닐 봉투속에 잡아 둔 매미가 숨 막혀 죽을까봐 아침7시에 위층 초인종을 눌렀다.

“매미예요!”
위층 아주머니는 아이들에게 얘기 들었다며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망울에 매미를 담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내가 인류를 위해 크게 이바지 한 것처럼 뿌듯했다.

그런데 그 후 새벽에 매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위층으로 간 매미가 그사이 죽었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일주일 쯤 지나자 신 새벽에 방충망에서 또 다시 매미가 울었다.
'미얌미얌'하며 나를 깨우고 아침을 열었다.
이 매미가 그 매미일까?
7년여의 시간 동안 굼뱅이로 살다가 겨우 며칠간 매미였던 매미의 생애가 내게 잡힌 그 날이 그 매미의 마지막 생의 날이었기를 미안스레 바랬다.

오늘도 매미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울어댄다.
그 동안 땅 속에 굼뱅이가 많았었나보다. 이제 이 여름이 가고 또 여름이 올 즈음엔 이 아이들이 굼뱅이도 관찰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형아,이거 굼뱅이다, 굼뱅이!”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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