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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학
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2)>백발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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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20  15: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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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숙 논설위원
지하철을 타면 요즘은 웬만하면 노인들이 태반이다.
고령화 고령시대가 되니 승객들의 대화거리도 '생활보호대상자, 암수술, 자식이 셋이나 되는데 재산을 모두 자식한테 줬는데...' 라고 말하다가 그 자식이 아비가 암수술을 했는데도 들여다 보지도 않는다느니, 자식 키워봤자 뭐하느냐니, 실손 의료비랑 찾아먹을 복지는 다 찾아 먹어야 한다느니...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노인의 대화로 세상은 새 하얗다.
 그런 노인들의 말을 엿들으며 노인 욕을 했다.
 “그러니까 자식을 잘 키워야지. 오냐오냐하고 키웠으니까 자식이 그 모양으로 자랐나보네, 흠, 아니지 재산을 자식에게 줄 거면 쿨 하게 주고 말지 뭘 기대를 한다는 건지 원, 그러니까 보상을 원했던 거야, 보상을 원하고 베풀었으니까 기대 수준은 상승했는데 상대적으로 받는 게 없으니까 그게 빈곤해서 실망하는거야.”
 “아니, 뭐 저런 얘기를 왜 하는거야? 돈 많다고, 물려줄 재산 많다고 자랑하는 건가? 아이고, 노인이 되면 대화가 늘 저런 건가? 다른 얘기는 없는거야?”
 이런 욕 저런 욕 내 머릿속 욕을 하나씩 꺼내고 있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쳤다.
 '아이~ 씨~'
 '남 욕을 하니까 벌을 받나보다.’
 다시 돌아오는데 이번엔 정신을 너무 붙들어 매서 목적지 한 정거장 전에 덜컥 내려 버렸다.
 창문 밖에 놔둔 정신을 꼭 붙들고 있다가 이번엔 제대로 내렸다.
 어머나 세상에!
 대형서점에 들어서니 노인들이 큰 평상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유난히 큰 평상에선 젊은이 늙은이, 여자, 남자, 유식한 말로 남녀노소가 섞여서 책을 읽는데 이쪽 평상에선 노인 두어명이 누울만한 넓이로 된 평상에 책을 올리고 노인과 노인이 노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책을 읽고 있었다.
 이 노인들은 누구일까?
 노인독서모임 회원들일까?
 친구들일까?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책을 읽는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노약자 용' 이라거나 ‘노인 용’이라는 좌석 배치 안내가 써 있지 않은데도 이 곳에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지하철의 노인들이 이 노인들일까? 이 노인들이 지하철 속 노인들일까?
어쨌거나 여기, 저기, 거기, 쩌~기를 가도 사방에 노인들 천지다.
 수영장엘가도, 백화점 식당가를 가도, 버스를 타도, 병원엘 가도, 산엘 가도, 커피숍엘 가도 거리를 걸어도 내가 가는 곳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 곳 역시 노인천지다.
 아니, '노인'자가 들어간 간판, 책, 병원, 이 세상은 노인 세상이다. 아기와 젊은이 시절을 싹뚝 생략하고 '노인인간'으로 태어난 사람들처럼 노인세계다.
 하두 노인이 많으니까 이젠 아무래도 노인을 상대로 먹고 살아야 할 것 같아서 노인관련 책을 살펴봤다.
 노인심리, 노인건강, 100세 노인, 노인치료, 독거노인...
 “그래, 이런거야, 이런 걸 공부해야해.”
 노인들이 볼 새라 노인 멀리 떨어져서 책들을 살펴보고 있노라니, 앗차!
 돋보기를 빠뜨리고 왔다.
 주섬주섬 내 옆에 내 나이 또래 쯤 되는 아주머니가 돋보기를 쓴 것 같아 살짝 말했다.
 "저 돋보기 잠시만 빌릴 수 있을까요? 책 목차만 살펴 볼께요."
 흔쾌히 빌려 준 돋보기로 이책 저책 목차를 살펴봐도 영 개운치가 않은 것이 화딱지로 변했다.
 “아이~C”
 “저 이거 돋보기가 맞나요?”
 “네, 돋보기예요. 40대용인데 잘 안보이세요?”
 “젠장 !”
 “그래, 나는 50대라곳 !”
 할 수 없이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노인의 평상에서 책을 읽고 있는 노인에게 돋보기를 빌렸다.
 글씨가 보이니까 노인이 감사했다.
 아까 지하철에서 노인 욕을 했던 내가 당연히 욕을 먹어도 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노인이 꽉 찬 지하철에 다시 나를 실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노인 지하철에 나를 실었다.
 더 가서 내릴 까봐 덜 가서 내릴까봐 정신을 꽉 붙들었다.
 열차는 내선을 순환하는 설국열차처럼 하얀 햇살을 가르며 철크덕 철크덕 달렸다.
 갈라진 햇살이 내 머리에 부딪히고 백발에 부딪혔다.
 백발열차가 천천히 달렸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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