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 성광일보
  • 승인 2016.11.2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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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가다마이(가타마에)

▲ 김정숙 논설위원
호텔 결혼식장에 그녀를 데리고 가기로 한 건, 그저 그 시간에 특별한 스케줄 없이 그녀가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점과 저녁 식사시간에 열리는 결혼식에서 저녁 한 끼를 해결하고 오자는 의도이기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별 다른 할 일 없이 집에 머물게 된 그녀도 11시까지 늦잠을 자고 하루 종일 한 일이라곤 헬스클럽에 다녀온 것 뿐이라서 평소처럼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고 엉덩이까지 닿는 긴 머리카락을 드라이기로 '웅웅'거리며 말리는 요란한 행사는 생략한 지라 화장으로 완성하는 그녀의 Be fore 와 After의 모습은 언제나처럼 경이로웠다.

집에 혼자 있느니 친지 결혼식장에 함께 가자는 말에 다른 때 같으면 싫다고 거절했을 그녀가 선뜻 따라 나선 것은 그녀도 어느새 결혼이라는 행사가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ㅂ'자 소리가 나는 과년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 듯 도 했다.

평소 좀처럼 신지 않던 하이힐과 몸에 꼭 달라붙어서 미이라처럼 천을 둘러 맨 것 같은 원피스를 걸치고 “따각 따각”걸을 때만 해도,“세상 어떤 놈이랑 살게 될지 그 놈은 참 좋겠다.”는 감탄이 그녀의 엄마 입에서 흘러 나왔다.

결혼식장은 화려하고 고급스러웠다. 20여개쯤 되는 원탁에 앉아 있는 중년과 노년의 하객들은 그들의 딸이, 혹은 아들이 결혼한 날을, 아니면 앞으로 결혼할 날을 회고하거나 상상하는 듯, 몽롱한 눈빛으로 샹들리에가 비추는 공간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결혼식장 중앙과 벽면에서 쏟아지는 신랑신부의 사진은 스크린의 하얀 면에서 위로 아래로 그리고 옆으로 출렁이며 춤을 췄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또한 넋을 잃고 스크린에서 그네를 타거나 가느다란 실로 엮은 웨딩 촬영 사진들이 오가는 놀이에 정신 줄을 빼 놓은 채 입을 '쩍’ 벌리고 좀처럼 닫지 않았다.

그리고 딸과 엄마가 약속이라도 한 듯 얼굴을 맞대고 말했다.
“예쁘다.”
 결혼식이 진행됐다.
 결혼 서약식을 하기 전에 주례사가 신랑과 신부를 소개했다.
 “신랑 000는 훌륭하신 111님의 자제로 명문대학 222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333 전자의 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신부 555는 666 님의 자제로 같은 명문대학 777 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산부인과 전문의를 하고 있으며…”

그리고 간단한 신앙서 한 구절을 인용하며 주례사를 마쳤다.
주례사가 끝나고, 와인과 스테이크로 저녁식사를 하던 딸이 원탁에 둘러싸인 친지들의 프로그램에 걸렸다.

“888아! 네가 지금 몇 살이지? 너는 지금 뭐하니?”
그 순간 붉은 고기를 자르던 그녀의 어머니가 오른 손에 칼을 ‘불끈’ 쥔 채 고기 대신 딸의 말을 잘랐다.
 "공부하며 아이들 가르치고 있어요.”
 원탁의 친지들은 "음 공부하며 … 그렇구나.”라고 짧은 말을 긴 말로 흐린 채 접시위의 고기를 썰었다.
 딸의 말을 가로 막은 그녀의 엄마가 딸의 귀에 대고 주례사를 원망했다.
“주례사가 뭐 저 모양이야?”
 명문대 나오고 대기업 다니고 의사가 직업인 게 신랑, 신부야?
 이 많은 하객들한테 신랑,신부 소개할 게 그 얘기밖에 없어?
 신랑, 신부가 어렸을 때 오줌 싸고 야단맞고 했던 그런 얘긴 없는 거야 ?
이 결혼식 재미없다 그치? “

순간 그때까지 어른들 눈치 보랴 결혼식장 분위기 보랴 맥을 못 추던 딸의 고개가 꼿꼿이 서더니 평소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술을 입에 댔다.
 붉은 와인 잔을 손에 든 딸이
"원 샷!”하며 붉은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녀의 엄마도 잔을 들었다.
"원 샷!”
어여어여 식사가 끝나고 배와 가슴을 조이는 원피스와 하이힐을 벗고 거실에 벌렁 누우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한 딸이 물었다.
"엄마, 집에 언제가 ?”

사실, 그녀의 딸이 공부중이라는 건 접대용 멘트고 진실과 현실을 말한다면 그녀는 현재 ‘백수’다.
취업이 어려워서 전문직 공부를 하겠다고 나섰으니 “그녀는 지금 공부중!”이라는 되먹지도 않은 ing형으로 실없는 말을 할 기회를 얻은 것뿐이다.

언제 자신이 목표한 것을 달성할지, 아니면 자신의 목표대로 인생을 살지 알 수도 없는 그저 앞날이 뿌옇고 아득하기만 한 백수일 뿐이다.

그래도 밥상을 넘어 튀어 오른 바위덩어리에 딸이 다칠까 두려운 그녀의 엄마는 “당신들의 논리에는 이런 논리가 어울린다.”는 대답으로 날아온 바위를 받자마자 되받아쳤다.

샹들리에의 불빛 아래 온화한 웃음을 짓던 주례사는 왜 그런 주례사를 준비했을까?
세상엔 2%의 그런 자 보다 98%의 저런 자가 더 많다는 사실을 공감하고 있는 걸까?
‘세상은 노력하면 살만한 곳'이라고 누군가 하고 있다는 스펙을 따라 하고, 눈만 뜨면 영어로 “쌀라 쌀뼧라”하는 뉴스를 듣고 영화를 보고, 한국어 문법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코쟁이 언어의 문법은 귀신처럼 알아먹는 저 젊은 처자에게서 혼까지 빼 놓아야 했을까?

얼과 혼이 빠진 그녀는 얼마나 공허할까?
기왕 태어난 것 세상이 온통 내 것인 양 가슴을 쫙 펴고 팔자걸음으로 걷는다는 그녀에게 “세상이 내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었다는 영혼이 드나드는 건 아닐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딸이 현실의 백수인 것을 왜 말하지 못했을까?
현실의 백수이면 안 되는 것일까?

결혼식장을 총총히 빠져 나온 딸이 말했다.
“엄마, 왜 나를 그냥 백수라고 말하지 않고 공부한다고 말한 거야? 그냥 백수라고 말해도 돼. 굳이 공부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돼. 나 괜찮아.”

순간 딸이 생일 선물로 사줬다는 명품가방에 비닐봉지로 돌돌 말아 싸왔던 운동화를 꺼내든 엄마가 무릎 관절을 진동하는 하이힐과 바꿔 신으며 힘주어 말했다.
"엄마도 지키고 싶은 대외용 가다마이(가타마에)가 있다!“
"집에가자, 춥다.”

지하철 출입구를 들어선 모녀의 다리에 바람이 몰고 온 낙엽 두 장이 붙었다.
스타킹을 신은 네 개의 다리에 두 장의 낙엽이 붙었다. 민 다리가 추울까봐 낙엽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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