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 성광일보
  • 승인 2017.03.0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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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후배님 오랜만이에요. 졸업은 했어요!”“졸업생 원우회 활동은 안하고 있어요.”
학교를 졸업한지 꽤 오래된 선배가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첫 번째 문장에선 내가 학교를 졸업했는지를 묻는 말인 것 같아서
“네, 졸업했어요!”라고 대답했는데, 두 번째 문장에선 문장 끝에 마침표(.)가 있어서 선배 본인이 원우회 활동을 안 하고 있다는 건지, 내가 활동을 하는지 안하는지를 묻는 말인지 헷갈려서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다가 물음표(?) 한 개를 보냈다.
그랬더니 문자로 나누던 대화가 갑자기 끊겼다.
도깨비 같은 소통의 부호들이 오가는 동안 '세상사는 일이 녹록치 않다'는 게 이런 경우도 포함되겠다 싶었다.
물음표와 마침표의 출처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물음표와 마침표로 보낸 선배의 의중이 분명 물음표(?) 두 개인 것 같은데 휴대폰 다루는 솜씨가 서툰 것도 아니고, 난다 긴다 하는 사회적 활동만큼이나 손가락 터치 실력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 선배가 왜 그랬는지 못내 궁금해서 그저 “기이한 일이로세, 기이한 일이로세”로 탄식했다.
문자 소통을 기다리느니 통화를 하는 게 낫겠다 싶긴 했지만 워낙 사람 대하는 데 차별을 두는 내 까칠한 품성이 그러기를 그만두라고 다그쳤다.
말이라는 것이 인간이 자유로이 사용하는 도구임에도 사회적 약속인 부호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땐 이런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에 놀랐다.
질문을 할 땐 물음표(?)를 쓰기로 했으면 물음표를 쓸 일이지 왜 느낌표(!)를 써서 사람 헷갈리게 하는가 말이다.
살다보니 별걸 다 갖고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된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중년에게 이런 자극쯤이야 두뇌환기라고 할 수도 있으니 참아줄 수 있지만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이런 상황에선 화가 나서 방방 뛰었을 거다.
글쓰기 공부를 하는 학습자 한 분도 이런 고민을 얘기했다.
부부싸움 끝에 화난 감정을 문자로 적나라하게 나열해서 보냈는데 보내놓고 다시 읽어보니 남편에게 할 말 못할 말 다 해 버린 것 같아서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말이 말 같지 않아서 말을 고치려 하니 말이 부호여서 말로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휴대폰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땐 길가다가 통화하고, 버스에서 통화하고, 지하철에서 통화하고, 음식점에서 통화하는 소리에 세상이 시끌벅적했는데 요즘은 나랏일로 시끄러운 거 빼고 나면 세상 사람들의 통화 소리는 잠잠하다.
그 대신 소리 나지 않는 통화소리가 세상에 둥둥 떠다닌다.
길가다가도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음식점에서도 커피숍에서도 심지어 TV앞이나 밥상 앞에서도 부호 음을 눌러가며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으며 하늘의 구름까지도 뚫는 소리 없는 소리들이 떠다니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내 휴대폰에 “까똑”소리를 내며 소리 없는 안부가 도착했다.
육성통화를 할 땐 그나마 아침나절이든 저녁나절이든 심심한 안부전화도 하고 이바구도 떨었는데 이젠 전화를 받는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니
“혹시 시방 전화통화 되시나요?”라며 통화 전 애피타이저 문자로 상대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
이것 또한 녹록치 않아서 상대가 애피타이저 문자를 보면 다행이지만 문자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실로 복장 터진다.
그나마 하루 종일 심심한 안부전화 한 통화도 못했다면 누군가와 입을 튼 적이 없으니 저녁나절이면 입에서 군내가 나서 애꿎은 칫솔만 닦달을 하고 문댈 거다.
사람의 입이 먹고, 말하고, 가끔 숨도 쉬는 기능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아니, 가끔 키스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 그 기능을 제대로 못하니 침 분비가 적어서 먹은 것도 소화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부지런히 움직여서 소화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달가운 얘기면 육성통화가 반갑지만 시시껄렁한 얘기를 육성으로 했다간
“그런 얘기를 통화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라며 박대당하기도 쉽다.
이제 세상은 고요하다.
국가 정세가 시끄러운 건 이미 전설이 된 형편이니 그런 걸 차치하고 사람 사는 세상의 사람소리는 모두 잠자는 중이다.
잠자는 숲속에 빠진 공주와 왕자의 목소리는 수면제의 과다 복용으로 깨어날 줄 모르고 있다.
자판기 쿼티(QWERTY)위에서 분주한 손가락의 터치 음 만이 세상을 장악한 순간 인간의 육성이 사라졌다.
소리가 잠자는 세상, 부호가 떠다니는 세상.
숲속의 공주와 왕자가 언제쯤 잠에서 깨어날지 모르는 세상에서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자다가자다가 허리가 아프거나 목이 마르거나 오줌이 마리거나 배가 고프거나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거나 하는 일로 깨어 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영영 잠든 채로 숨도 쉬고 밥을 먹고 오줌을 눌 지도 모른다.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부디 가끔 오줌이 마려서라도 잠시 깨어나 침묵의 세상에 통화음 울리면 사람의 심장소리도 요동하겠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렇게 눈으로 듣는 소리 말고, “아따 ! 그동안 잘 지냈는가?”
“잘 지냈는교?”
“잘 지내?”
이런 종류의 귀로 듣는 소리 말이다.
“당신, 잘 지내고 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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