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한국에 맞지 않다는 마담X에게(1)
민주주의는 한국에 맞지 않다는 마담X에게(1)
  • 성광일보
  • 승인 2017.05.2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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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에 대한 논쟁 -

  시작하면서

▲ 명 길 랑/천주교 서울평협 전 대외관계위원장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키워왔을까요?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직후 우리 국민들은 합법성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48년 8월 15일 이승만의 집권은 이러한 우리 국민들의 노력을 말살하였습니다. 채택된 헌법이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었음에도 민주주의 원칙들을 고의적으로 왜곡시켰고, 반공과 안보를 제일의 과제로 내세움으로써 이승만 정권은 독재로 변질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위해 강제적으로 개헌을 함으로써 두 번째로 좌절을 겪었습니다. 그 다음의 독재자 전두환은 1980년에 민주주의를 짓밟았습니다. 이 세 사람의 인생의 끝은 어땠을까요?

이승만은 정권 연장과 장기집권을 위해 두 번 개헌을 했고, 1960년 3월 15일 대통령선거에서 부정선거를 하여 4·19학생혁명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 미국 하와이로 망명했고 거기서 생을 마쳤습니다. 박정희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를 일으켜 4·19학생혁명으로 국민에 의해 수립된 장면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박정희도 정권 연장을 위해 3선 개헌을 하더니, 1971년 4월 26일 대통령선거에서 신민당 김대중 후보에게 혼이 난 다음에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1972년 10월 17일 유신을 선포하고 영구집권을 위한 개헌을 해 7년 동안 3권 위에 군림했으나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전두환은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켜 집권했으나 김영삼 정부 때 내란죄로 사형언도를 받고 복역 중 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지금 전두환을 전직 대통령으로 대접한 국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 수난사입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독재와 총칼 앞에서 잠시 숨을 죽이고 있었을 뿐 민주주의를 짓밟는 독재자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1960년 4·19혁명, 1979년 부마 항쟁, 1980년 광주 항쟁, 1987년 6월 항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에다 2016년 10월부터 시작한 촛불집회는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시켜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이 촛불집회는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 역량을 만천하에 보여 준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민주적 역량이 이러함에도 마담X께서는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는 한국에 맞지 않다”고 주장해 필자와 5년 전에 논쟁을 하였습니다. 2017년 5월 9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의해 새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따라서 5년 전 논쟁을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독재 정권을 그리워하는 무리들과 마담X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민주주의는 한국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전개하겠습니다.
둘째,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간단한 이론을 함께 생각하겠습니다.
셋째, '지방자치가 한국에 맞지 않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전개하겠습니다.
넷째, 지방자치와 주민자치의 활성화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겠습니다.

Ⅰ.'민주주의는 한국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
1.한국에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마담X와 필자가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는 한국에 맞지 않다'는 귀하의 주장에 대해서 논쟁을 한지도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마담X께서는 그 근거로 첫째,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법철학》에서 동아시아를 “오직 군주 한 사람만이 자유로운 사회”라고 했고, 둘째, 미국의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은 《민주주의 제3의 물결》에서 “민주주의는 서구 문명에 고유하며, 비록 제도를 민주적으로 구축한다 해도 비 서구에서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더구나 유교와 민주주의는 형용모순이다”라고 주장했으며, 셋째,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와 김대중 전 대통령 사이의 “아시아적 가치 논쟁”에서도 리콴유는 “동아시아에는 고유의 정치문화가 있으며 그것은 민주주의와 다르다”고 주장한 점을 들었고, 넷째, 1980년 주한 미군 사령관 존 위컴(John Wickam)은 “한국인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돼도 따를 것이고, 체질상 민주주의가 맞지 않다”고 했고, 1982년 주한 미국 대사 리처드 워커(Richard Walker)는 “한국 국민은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다. 버릇없는 아이들의 위험한 민주주의 놀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면서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독재정권에 따랐다”는 점을 강조하였지요.
저는 마담X의 주장을 들으면서 해박한 지식에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을 하던 중에 마당X께서 급한 전화를 받고 떠난 바람에 논쟁이 중단되었습니다.

나는 이 논쟁을 잊고 있었는데 촛불집회를 통해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높은 역량을 다시 확인하면서 마담X의 논리에 대해 반론코자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 망명 시절에 하버드 대학의 '아시아 법률센터'에서 강연을 한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망명까지 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가능합니까? 민주주의는 서구 사회의 산물입니다. 한국의 전통에는 민주주의 요소가 없지 않습니까? 더욱이 한국은 유교의 영향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의 견해는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이 질문 내용이 마담X가 질문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맥을 같이하고 있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답변을 인용하면서 부연(敷衍)코자 합니다.

첫째, 단군 신화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건국 신화들 속에서 민주주의의 근본정신의 하나인 민본정신(民本精神)을 엿 볼 수 있습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사상은 백성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는 전제로 이뤄졌습니다. 신라나 가야국 건국 설화를 보면 백성이 모여 왕을 추대합니다. 어떤 나라 건국 설화에도 찾아보기 힘든 예입니다.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것이니 사람 섬기기를 하늘 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둘째, 최근 100년 역사가 권위주의에 맞서 싸운 투쟁의 기록입니다. 조선 왕조가 망한 9년 만에 일어난 3·1운동에서 왕정복고를 주장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프랑스가 1789년 대혁명 후에도 200년 동안 끈질긴 왕정복고의 역사를 거듭한 것과 비교해 보더라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60년 4·19혁명, 1979년 부마 항쟁, 1980년 광주 항쟁, 1987년 6월 항쟁, 2016년 촛불집회 등이 민주 정신에 입각한 투쟁이었습니다.

셋째, 조선 왕조 500년을 지배한 유교의 근본정신은 민본주의였습니다. 따라서 유교적 전통을 가진 나라가 민주주의에 친숙하지 않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맹자의 주장입니다.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 천자는 하늘을 대신해서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 사명을 받았다. 그런데 천자가 하늘의 뜻을 어기고 백성에게 학정을 한다면 백성은 들고 일어나 임금을 쫓아내고 새로운 임금을 들여올 권리가 있다”고 했고, 그리고 500년 동안, 표현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존중되었습니다. 정부 기구에도 사간원(司諫院)과 사헌부(司憲府)등이 있었습니다. 이들 기구는 왕과 고관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심지어 규탄까지 했습니다. 사관들이 쓴 역사의 기록은 왕이라도 볼 수 없었습니다.

넷째, 우리나라 국민의 교육 수준이 세계 정상급입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수준 없이는 창출될 수 없으며, 교육받는 국민만이 주권의식과 책임의식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민족이 결코 민주주의와 상관이 없는 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우리 역사 속에는 민주주의적 원리와 요소들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김대중, 김대중 자서전1, 삼인 2010, 470∼471쪽)

여기에다 추가해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와 김대중 전 대통령 사이의 '아시아적 가치 논쟁'에서 김 전 대통령은 1994년 《포린 어 페이스(Foreign
Affairs)》11∼12월호의 기고를 통해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논리를 반박했습니다.

〈문화가 운명인가(Is culture destiny)〉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로크(John Lock)가 근대 민주주의 기초를 세웠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로크의 이론에 따르면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과의 계약에 의하여 지도자들이 통치권의 위임을 받는데, 통치를 잘하지 못했을 경우 이 통치권이 철회될 수 있다.

그러나 로크의 이론보다 거의 2000년 앞서 중국의 철학자 맹자(孟子)는 그와 비슷한 사상을 설파한 바 있다. 맹자가 주장하는 왕도 정치의 이론에 따르면 왕은 하늘의 아들로서 좋은 정치를 베풀어야 한다는 임무를 하늘로부터 위임 받았다. 왕이 악정을 하면 국민은 하늘의 이름으로 봉기하여 왕을 권좌에서 몰아낼 권리가 있다고 하였다.

맹자는 심지어 옳지 않은 왕을 죽이는 것까지도 인정했다. 폭군은 죽이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를 물었을 때 맹자는 왕이 하늘로부터 위임받은 통치권을 잃게 되면 백성의 충성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으며, 백성이 첫째이고, 국가(사직)가 둘째이며, 그 다음이 왕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민본 철학은 '민심이 천심이다'고 했으며, '백성을 하늘로 여기라'고 가르치고 있다.

한국의 토착 신앙인 동학(東學)은 그보다 더 나아가 '인간이 곧 하늘'이라고 했으며, '사람 섬기기를 하늘 같이 하라'고 가르친다. 이 같은 동학 정신은 1894년 봉건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착취에 대항하여 거의 50만이나 되는 농민들이 봉기하는데 동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 같은 유교와 동학의 가르침보다 민주주의에 더욱더 근본적인 사상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시아에도 서구에 못지않게 심오한 민주주의 철학의 전통이 있음은 확실하다”고 주장했지요. 이 논문은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고 리콴유 전 총리와의 논쟁에서 세계의 석학과 지도자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습니다. 이 논문도 마담X의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회의론에 충분한 답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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