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 성광일보
  • 승인 2017.05.2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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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바리>
▲ 김정숙/논설위원

걷거나 지하철을 타려면 가방이 가벼워야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다. 그러나 난 오늘도 작전에 실패했다.

가방엔 지하철로 이동하는 동안 읽을거리로 책 한권을 담았고 이동해서 점심식사를 해야 하니 늘 싸들고 다녔던 현미밥 도시락을 챙겼다.

목적지에선 5월의 급 더위로 실내 에어컨이 돌아갈까 봐 찬바람 막을 가벼운 옷을 챙겼고 가끔 모양새를 다듬을 거울 달린 화장품, 콤펙트와 립스틱을 챙겼다.

찬 곳에서 취약한 목을 보호하기 위해 스카프를 둘둘 말아 넣었고 비상금 담긴 얇은 지갑과 뜬 눈으로도 글씨를 못 읽는 노안을 위해 돋보기를 챙겼다.

틈나는 대로 글을 쓰려고 종이와 펜을 챙겼고 과자나 빵을 안 먹는 습관으로 비닐봉지에 담은 견과류 간식을 챙겼다.

찌는 듯 더운 날씨에 빈 몸뚱이만으로도 걷는 게 버거운데 이런 걱정 저런 걱정으로 커다란 가방이 꽉 차서 걸음걸이가 느림보 거북이처럼 흐느적거리고,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 메는 가방 때문에 어깨가 휜다.

약간의 돈만 있으면 먹을 게 해결되고 설사 해결되지 못해도 적당히 떼우면 될 것을 세상사는 게 무에 그리 걱정스럽다고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밥 먹을 힘도 없다는 나이가 되도 밥 먹기 위해 싸들고 다닐 것 같다.
몽골에 갈 때도 이랬다.

워낙 추위를 타는 나는 몽골이 춥다 해서 방한복, 털옷, 털양말, 무릎 담요, 모자에 목도리까지 챙기고 틈틈이 읽으려던 책 2권과 화장품, 세면도구들을 싸놨더니 갖고 있던 여행 가방이 턱도 없이 작았다. 떠나기 전날 늦은 밤 마트에 달려가 함지박만한 이민용 트렁크를 샀다.

덩치 큰 남자도 들기엔 무리인 이민용 트렁크가 인천공항 로비에서 여행 동료들 앞에 드르륵거리며 굴러가니 몽골로 이민 가느냐고 배를 잡고 낄낄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추운 건 딱 질색이니 집채만한 트렁크를 빌어서라도 추위를 견딜 옷을 가져가야한다고 했다.

몽골 울란바토르 공항에 함지박만한 트렁크가 무사히 착지는 했는데 호텔로 이동하거나 일정에 따라 다른 호텔로 이동하는 데는 나의 어지간한 힘으로 무리였다. 내가 가방을 끄는 건지 가방이 나를 끄는 건지 헷갈렸다. 마음 같아선 모두 버리고 가는 곳에서 옷 한 벌씩을 사 입고 싶었다. 
그런데 실제 몽골은 내가 생각했던 체감온도보다 높았다.
젠장!
버리지도 못하고 주지도 못하는 트렁크로 고전하다보니 차라리 내가 함지박만한 트렁크에 담겨서 누군가 트렁크를 끌고 갔으면 싶었다. 돈 많이 가진 건 부럽더니 짐 많이 가진 건 업보 였다.

함께 갔던 동료는 우리나라 10월쯤의 몽골 기온에서도 몸에 열이 많아서 덥다며 여름 끈 나시를 입고 하얀 목살과 어깨를 드러내고 다니는데 나는 추위를 타서 옷을 많이 가져오느라고 큰 트렁크를 가져왔다 했으니 정말 추운 사람처럼 옷을 많이 입긴 해야 했다. 

쪽팔린 이민가방에 면이라도 서려면 켜켜이 입고 쓰고 두르고 해야 했다. 나는 두리둥실하고 몽실몽실한 곰처럼 몽골의 시내 울란바토르와 고비 사막에 동동 떠 다녔다.

쌕쉬미는 언감생심 살 보이는 곳은 창호지로 문창호 바르듯 목 폴라에 카디건에 방한복에 속에 입은 내복까지 켜켜이 입고도 목도리와 털모자를 썼으니 몽골의 원주민, 유목하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얼굴에 분칠만 안 했다면 옆집 게르에서 '어이 친구! 오늘 양들의 젖 좀 짰수?' 라고 덤빌 뻔 했다.

즐거울 여행에 짐 트렁크로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여행은 고역이었다. 차라리 일정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나마 한 호텔에 이틀정도 머물면 그런대로 견딜 만 했는데 가방을 들고 이동해야하는 일정에선 튜어 버스 밑바닥에 가방을 실었다 내렸다하느라 진을 빼는 기사 아저씨에게 미안해서  면목이 없었다. 그저 '쏘리!'와 '땡큐!'를 남발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여행하면 추억을 얘기하고 사진을 보여주고 그 곳의 문화를 말하는데 난 몽골 여행에선 빅 싸이즈 트렁크로 고전했던 기억밖에 거의 떠오르는 게 없다. 제대로 실패한 여행이다.

고생도 그런 개고생이 없었다고 툴툴 댔으면서도 집 밖에만 나서려면 또 다시 가방에 이것저것 챙겨 넣는다. 무에 그리 조바심이 나고 불안해서 바리바리 넣는지 모르겠다.

이동하는 1시간 동안 무언가 볼거리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내가 먹는 식생활을 지켜야 마음 편하고 불현듯 만날 추운 환경에 대비해야 마음이 편하다.   

볼 거리가 없으면 경치나 광경을 보거나 멍 때리면 되고 추우면 걸칠 거 하나 사면 되고 먹을 건 대충 떼우면 될 걸 이국땅에서 짐 때문에 모진 고생을 하고도 또 다시 바리바리 싸서 어깨가 휜다. 
가볍게 떠나면 어깨도 가볍고 관절도 가볍고 머리도 가벼운데 내게 삶은 아직 짊어지는 짐인 가보다.
짊어지는 짐들이 어깨에  매달려 삶은 무겁고 거추장스러우며 버거워 진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행동이 따르지 않는 건 왜 인지 모르겠다.

바리바리 쌀 수 있는 가방을 버리면 이런 증상이 사라질까?
아직은 가방을 멜 관절이 온전해서일까?
책과 옷과 화장품과 스카프와 펜과 종이를 토한 가방이 무거운 가방 메느라 힘 빠진 나처럼 흐느적한 몸으로 침대 곁에 누웠다.
내일은 또 저 가방에 무엇을 바리바리 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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