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한국에 맞지 않다는 마담X에게(3)
민주주의는 한국에 맞지 않다는 마담X에게(3)
  • 성광일보
  • 승인 2017.07.13 18: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에 대한 논쟁 -

3. 영국의 이사벨라가 본 한국

▲ 명 길 랑/천주교 서울평협 전 대외관계위원장

가. 한국의 절망적 상황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으로서 1894년부터 1897년 말까지 3년에 걸쳐 네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지리학적 관점을 중심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풍물·풍속)등을 조사하여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NEIGHBOURS)〉이라는 책을 써 1898년 1월 1일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신문사에서 두 권의 책으로 출간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이사벨라 비숍은 1897년 시점에서 한반도인들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한국은 가난한 국가가 아니다. 자원은 고갈되지 않은 채로 미개발되어 있다. 성공적인 농업을 위한 능력도 거의 이용되지 않고 있다. 기후는 최상이며, 강우량도 풍부하고, 토질도 생산적이다. 구릉과 계곡에는 철·구리·납·금이 있다. 2800km의 해안선을 따라 있는 어장은 밝혀지지 않은 부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간난(艱難)에 견딜 줄 아는 강인하고 공손한 민족이 살고 있고, 거지같은 극빈층도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 국민의 잠재된 에너지가 사용되지 않고 있다. 중산층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 않다. 매우 충분한 이유로 인해서 하급계층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이사(餓死)를 면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 심지어 서울에서도, 가장 큰 가게조차도 일정한 상점의 수준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한국의 모든 것은 낮고, 가난하고, 천한 수준에 있다”고 지적하였으며 한국인들의 삶의 비극적 상황에 놓여 있는 이유를 비숍은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한국은 특수계급의 착취, 관공서의 가혹한 세금, 총체적인 정의의 부재, 모든 벌이의 불안정, 대부분의 동양 정부가 기반하고 있는 가장 나쁜 전통인 비계획적인 정책수행, 음모에 물든 고위 공직자의 약탈행위, 하찮은 후궁들과 궁전에 한거(閑居)하면서 쇠약해진 군주, 가장 타락한 제국 중의 한 국가(러시아)와의 가까운 동맹, 널리 퍼져 있으며 민중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미신, 자원 없고 음울한 더러움의 사태에 처해 있다”며 “관료들은 나라의 월급을 축내고 수뢰(受賂)를 받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거나 전혀 없다.

나는 실제로 노동하는 땅의 경작자가 이 모든 기생충들의 부양자라는 것을 싫증이 나도록 보았다. 한국에서 농부들은 가장 열심히 일하는 계급이며, 비록 다소 원시적이지만 땅과 기후에 잘 적응함으로써 자기 노동의 생산량을 쉽게 배가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익이 안전하게 보호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리고 옷을 입힐 정도로만 생산하는데 만족해하고 더 좋은 집을 세우거나 품위 있는 옷을 입으려 하지 않는다. 수많은 소작농들이 양반과 행정관들의 가혹한 세금과 강제적인 대부금(貸付金) 때문에 해마다 경작 평수를 계속해서 줄이고 있으며 하루 세 끼를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만 경작한다”고 비숍은 분석했습니다.

비숍은 이어서 개혁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아직도 단지 두 계급, 즉 약탈자와 피약탈자로 구성되어 있다. 면허받은 흡혈귀인 양반 계급으로부터 끊임없이 보충되는 관료계급, 그리고 인구의 나머지 80%인 문자 그대로 하층민인 평민계급이 그것이다. 후자의 존재 이유는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비숍은 1897년 8월에 발표된 대한제국 황제의 칙령을 소개합니다.

“짐은 국민의 복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짐은 지난해의 혼란 이래로 평화와 질서가 결여되어서 국민이 크게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짐은 짐이 처해 있는 영일(寧日)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걱정한다. 이 사실이 지방 관리에게 알려진다면, 그들은 국민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강제적인 부과금과 징수는 짐을 오래 괴롭힌다. 수천의 무법(無法)한 관리들과 관아의 아전들이 무슨 구실로 해서든지 무기력한 대중을 약탈한다는 사실을 짐은 알고 있다. 그들은 왜 국민을 그렇게 잔혹하게 다루는 것일까?

짐은 여기서 지방관리들에게 지금 거두고 있는 여러 항목의 법에 명시되지 않은 세금들을 찾아서 숨김없이 그 모두를 폐지할 것을 명령한다. 이 칙령에 주의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법에 따라 처벌받을 것이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이인화, 도서출판 살림. 1994.509-515쪽)

이 칙령을 두고 비숍은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국왕의 선량한 의도와 나약함이 그 하나이며, 지극히 감상적인 문서라는 사실이 다른 하나입니다. 국왕이 선량하다는 것만으로 나라가 정의로워지지 않습니다. 근대적 개혁이 시대적 요청으로 되고 있을 때 한국은 외세가 들어와 강제로 부과했던 개혁까지도 내던지고 대한제국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고종이 비난하고 있는 당시 한국 국가관리집단의 백성에 대한 착취행위는, 관리들을 비판하지만 그 비판을 실행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개혁을 구상하고 실천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전통적 정치질서 덕분에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백성의 고통을 생각하는 짐의 심려를 지방 관리들이 알게 된다면 그들의 착취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종의 말은 근대적 방법으로 실행할 수 있는 변화를 거부하는 낡은 질서의 감상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숍이 제안하는 해결책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현재 내부에서 한국을 개선할 세력들을 찾기 어렵기에 한국의 개혁을 위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한국 내부에서 변화의 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비관론이지요. 둘째, “군주의 권력이 엄중하고 영속적인 헌법상의 제어 하에 두어야만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전통적인 군주체제로는 한국에 가망이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군주인 고종이 선량한 인물임은 분명하지만 그녀에게 비친 고종은 전통적인 군주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가운데 불행하고도 나약하고 무능한 군주였습니다.

이러한 고종이 친일 개화파 세력에 눌려 지내던 청일전쟁 후 약 1년과 고종이 러시아의 힘을 빌려 다시 전제군주의 위상을 회복한 후의 한국 정치상황을 비숍은 날카롭게 비교합니다. 아관파천 이전 1년여의 기간 친일 개화파 정부가 추진한 개혁정치에 대해 “왕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편히 지내는 그 기간 동안 한국에 이익이 되는 일이 없었다는 사실과, 현재의 정치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일본이 한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간 동안 행해진 정치와는 대조가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일본이 한국에서 행한 야만적이고 잔인 했지만, 거시적으로는 한국의 진보와 정의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고종이 러시아 공관에서 지내는 동안 그리고 그의 환궁 이후 조선을 지배하게 된 수구파의 정치를 비숍은 “고질적인 권력의 남용이 매일 나타났고 장관과 그 밖의 다른 총신들은 얼굴하나 붉히지 않고 관직을 팔았다..... 이제 왕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고, 한국 왕조의 고질적인 인습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그 이후로 어떠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령은 다시 법이 되었고, 그의 의지는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왕의 환심을 사서 왕이 지니고 있는 두려움과 부귀에 대한 욕구를 통해 그를 이용할 줄 아는 교활한 이들이나, 그의 도피에 큰 역할을 했던 궁중여인인 박씨와 임씨. 그리고 왕의 나긋나긋한 성품을 이용해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얻어 낸 관직을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주거나 파는 총신들이나 아첨꾼들의 처분에 따라 왕의 의지는 결정되었다.”

여기서 비숍은 전제권력과 무능의 조합이 어떻게 일어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하지요. “아무리 관료들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절대적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리 많은 특권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왕은 그의 왕궁에서 가장 권력이 없었다..... 왕은 계속해서 ‘주십시오’만을 요구하는 측근자와 탐욕스러운 기생동물들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고종은 전통적인 일인지배체제의 정상에서 절대 권력을 누리지만, 그 권력을 구체적으로 누리는 세력은 군주보다는 주변의 권력층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한국 사회 지배층이 특권을 유지하는 데 편리한 질서였습니다. 그들이 백성의 고혈을 빠는 특권층으로서 계속 살아 갈 전통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동시에 그들 지배층에게는 칼날을 세울 수 없는 전제군주제였기 때문입니다. 무능과 전제의 결합이라는 최악의 조합이었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전체가 그 같은 전통시대에 머물러 있는 때라면 문제될 것이 없지요. 그러나 자기 혁신을 통한 근대적 도약이 아니면 외세에 먹히는 제국주의 시대였습니다. 비숍은 이런 상태의 한국은 희망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한길사. 2014. 759-762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창간일 : 2010-10-12
  • 회장 : 조연만
  • 발행인 : 이원주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서울로컬뉴스
  • 통신판매 등록 : 제2018-서울광진-1174호
  • 계좌번호 : 우체국 : 012435-02-473036 예금주 이원주
  • 기사제보: sgilbo@naver.com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