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에서 배우는 智慧> 묘청의 란(妙淸亂) 역사 속에 오늘이 있다
<古典에서 배우는 智慧> 묘청의 란(妙淸亂) 역사 속에 오늘이 있다
  • 성광일보
  • 승인 2017.08.1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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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묵/화옹거사
이계묵/화옹거사

묘청(妙淸)의 란(亂)은 고려 중기 귀족들 간의 권력 투쟁이 북방 정책의 국론(國論)을 놓고 칭신사대(稱臣事大)냐? 칭제벌금(稱帝伐金)이냐?로 낭가(郎家) 자주파(自主派)와 유가(儒家) 사대파(事大派)간 권력 투쟁을 말한다.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선생은 천년이래(千年以來) 일대사건(一大事件)이라고 진단했다.
국론(國論) 파당(派黨)의 발단(發端)은 12세기 고려의 북방정책 대상은 여진족(女眞族)과 그 들이 세운 금(金)나라였다. 여진족은 우리 민족과 오랜 관계를 맺어왔고, 고구려 발해의 지배를 받았다.
고려 중기에는 윤관(尹瓘)이 여진을 정벌했다. 여진 아구타(阿骨打)는 요(遼)를 멸망시키고 국호를 금(金)이라 하고, 자칭(自稱) 황제(皇帝)라 하면서 만주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금(金)은 자신들의 조상은 고려로부터 왔다고 하여 고려를 부모(父母)의 나라라고 받들었다.

예종4년(1109) 여진이 사신(使臣)을 보내 윤관이 빼앗은 9성을 돌려 달라고 할 때 국서(國書)를 보내 옛 우리 태사 영가(盈歌)는 말씀 하시기를 “우리 조정이 대방大邦(고려)으로부터 왔으니, 자손에 이르기까지 의리상 귀부(歸附)해야 한다 하였으며, 지금 태사 우야소(烏雅束) 역시 대방으로부터 나라를 삼고 있습니다. 만일 9성을 돌려주고 생업을 편안케 하여 주신다면 우리는 하늘에 고하여 맹서하고 자손대대에 이르기까지 공손히 세공을 받칠 것이며, 또한 감히 돌조각일지라도 고려의 강토에 던지지 않겠습니다”하였다.

그러던 여진이 요나라를 공략하고부터 오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려에 국서를 보내 형(兄)인 대여진국황제(大女眞國皇帝)가 아우(弟)인 고려국왕에게 글을 보낸다고 했다.

인종3년(1125)에 또 국서를 보내 형제 관계가 이제는 칭신사대(稱臣事大)로 변하여 고려국은 신하이고, 금은 섬겨야할 임금의 나라라고 협박을 했다.

나라와 나라 사이 외교는 이런 것인가? 힘이 없을 때는 부모의 나라로 섬기다가 힘이 생기자 신하의 나라라고 무시했다.
고려 조정은 칭신사대의 국론을 놓고 정치적 논쟁이 벌어졌다. 김부식의 동생 김부의는 당(唐) 송(宋) 천자(天子)도 흉노, 돌궐, 거란 등에 굴욕적 외교 화친의 고사를 들면서 여진(女眞)의 요구를 받아들이자고 했다. 여러 백관들은 반대를 했다.

당시 왕권을 능가했던 이자겸, 척준경 세력은 반대 세력을 제압하고, 금(金)에 굴복(屈服)했다. 이렇게 이자겸을 추종하던 김부의 귀족 문벌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라의 주체성마저 팔고 말았다.
금(金)에 복종(服從) 외교는 이자겸이 제거된 뒤에도 김부식(金富軾)일파에게 계승되었다. 집권귀족들이 굴욕외교를 취하자, 한편에서는 칭제벌금(稱帝伐金)론과 서경천도(西京遷都)를 주장하고 나왔다.
고려도 황제라 칭하고, 금을 정벌하고 西京(평양)으로 천도를 하여 고려의 자주성(自主性)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신채호는 낭가사상파(郎家思想派)와 불가(佛家)들이 자주파(自主派)라고 했다. 윤이언(윤관의 아들)은 칭제북벌만 주장했고, 묘청(妙淸)과 정지상(鄭知常)은 칭제건원(稱帝健元)과 서경천도(西京遷都)를 주장했다.

묘청과 정지상은 서경(西京) 출신이다. 정지상은 상경上京(개성)은 지기가 이미 쇠하여 궁궐이 불타고 남은 것이 없으니, 이어(移御)하여 서경 천도의 필요성을 임금에게 주장했다. 천도주장 이면에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 개경 중심 문벌귀족들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서경천도에 적극적으로 나선 사람은 묘청(妙淸)이었다. 그는 풍수지리설과 음양도참설로 인종을 설득했다. 평양으로 옮기면 천하가 합병되고, 금(金)이 폐백을 가지고 항복해 올 것이며, 36국 모두가 신국(臣國)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묘청 천도론 자들은 개경일부 귀족 문벌들도 천도에 설득을 하여 인종은 서경에 새 궁궐을 짓도록 하여 궁궐이 완공되자, 칭제건원(稱帝建元)과 금국정벌(金國征伐)의 정책안을 물었다.

왕이 천도와 북벌의 뜻을 보이자, 천도를 반대했던 김부식 등 개경 문벌귀족들은 천도 반대운동을 벌였다. 서경으로 천도를 하고나면 개경에 생활터전을 이룩해 놓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종지부를 찍게 되기 때문이다.
인종은 천도 반대에 부딪쳐 서경천도를 포기했다. 서경천도는 무력武力이 아니면 불가능한 상태였다.
묘청(妙淸)의 란(亂)은 이렇게 하여 일어났고, 개경에서 파견된 김부식의 관군에 의해서 자주파는 괴멸되고 말았다.
고려 초기부터 유지되던 북진자주정책(北進自主政策)과 고구려(高句麗) 계승의식(繼承意識)은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는 낭가 불가의 자주파가 패배하고, 유교적(儒敎的) 사대파(事大派)가 승리함으로써 그 후 조선의 역사는 사대주의에 빠져 치욕과 좌절로 자주성이 상실된 역사였다고 보았다.
우리 민족의 고대사는 대륙을 호통 치며, 통치했던 대륙 민족이다. 묘청 의 난 이후 사대주의 반도 사관으로 쪼그라든 민족이 되고 만 것이다.

오늘의 우리 현실 정치도 똑같다. 시대만 바뀌었지 상황은 고려 중기 이후 상황과 같다.
친미 우파세력과 자주 좌파 세력 간에 우파 좌파로 나누어져 당쟁만 일삼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달라이 라마가 한국을 방문하고자 해도 중국의 눈치 외교로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모화주의 사대주의 사대는 남아 눈치 외교로 일관하고 있다. 같은 동양권에 있는 일본에는 달라이라마가 여러 번 방문을 했다. 우리나라는 왜? 오지 못하는가?
지난 MB 정부·박근혜 정부는 국정에 대한 여론은 뼈 속까지 친미·친일이라고 국민들은 비판을 하였다. 강대국의 눈치나 살피는 나라는 자주국가(自主國家)는 아니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어떨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달라이라마 한국 방문법회가 성사될지 두고 볼일이다.

중국은 이어도를 자국영해라 망언을 하고, 일본은 독도를 자국영토라고 억지 생 때를 부리고 있다.
역사는 반복 되는가? 사대의 의식은 그대로다. 그때와 무엇이 다른가? 쪼그라든 대한민국이여, 중원 대륙을 호통 치며, 통치했던 광개토대왕의 다물(多勿) 정신을 배우자. 반도사관 식민사관 이제 버리고 대륙사관으로 다물多勿의 웅지를 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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