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에서 배우는 智慧> 회양마전(懷讓磨塼) : 회양스님 벽돌을 갈다
<古典에서 배우는 智慧> 회양마전(懷讓磨塼) : 회양스님 벽돌을 갈다
  • 성광일보
  • 승인 2017.09.2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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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 묵 근도/노고산방에서 화옹거사
▲ 이계묵 근도/노고산방에서 화옹거사

선문염송(禪門拈頌)에 보면 남악회양선사(南嶽懷讓禪師)가 어느 날 마조선사(馬祖禪師)가 열심히 좌선을(坐禪)을 하는 것을 보고, 하루는 벽돌을 가지고 와서 마조스님 앞에서 열심히 갈았다. 좌선하던 마조선사가 물었다. 스님!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회양선사가 말했다.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아니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듭니까?
그래!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얻을 수가 없다면 앉아서 참선(參禪)만 한다고 어찌 부처가 되겠는가?
스님!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여보게! 소에 수레를 채웠는데 만약 수레가 가지 않는다면 그대 생각에는 수레를 때리는 것이 옳겠는가?(打車卽是), 소를 때리는 것이 옳겠는가?(打牛卽是).
마조 선사는 그 말을 듣고 바로 확 철 대오(廓徹 大悟)를 하였다.
이상이 선문염송(禪門拈頌)에 나온 남악 회양선사와 마조선사와의 선문답 내용이다.

옛날 중국 선원에서는 방장 조실 스님이 수행하는 후학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하게 관찰을 해서 그 수좌의 근기에 맞는 수행 방법을 선택하여 제접(提接)을 하였다. 남악회양선사 회상에 마조(馬祖)라는 납자(衲子)가 방부(房付)를 드리고 나서는 날마다 열심히 앉아서 참선만 했다.

한번 앉으면 큰 바위마냥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 모양은 꼭 돌 절구통 같았다. 좌선하는 모양만 보면 정말 수행을 잘하는 수좌다웠다. 그러나 눈 밝은 선지식인 회양선사가 보기에는 틈이 보이고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회양선사는 벽돌을 가지고 와서 마조스님이 좌선하는 앞에서 득득 갈고 있었다. 좌선하는 마조 스님은 벽돌 가는 소리가 여간 시끄러워 짜증이 났다. 그래서 이 늙은 중이 노망이 들었나? 남의 수행을 방해를 하다니, 이렇게 속으로 생각을 하고 물었다.

스님! 그 벽돌을 갈아서 무엇 하시렵니까? 회양선사가 엉뚱하게도 거울 만들려고 하네! 했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듭니까? 마조스님은 회양선사 거울 만든다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

세상에 노망이 나도 이렇게 추하게 노망이 날 수가 있는가? 아니 천년만년을 갈아본들 어떻게 벽돌이 거울이 될 수가 있단 말인가? 마조스님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회양선사는 이때다 하고 그래!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 수 없는 줄은 알면서 앉아만 있는 다고 어떻게 부처가 될 수 가 있단 말인가? 하고 되몰아 물었다.
마조스님은 회양선사 올가미에 떡 걸려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옳겠습니까? 회양선사는 마조스님의 근기가 무르익은 줄을 알고 깨우쳐 주기 위한 방편(方便)으로 벽돌을 갈았는데, 그 방편 그물에 걸려든 대어(大魚)를 놓치겠는가.
여보게 마조수좌! 만약 소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때리는 것이 옳겠는가? 소를 때리는 것이 옳겠는가?  참선은 깨닫는데 목적이 있다. 줄탁 동시다,
마조스님 지금까지 공부 수행한 공력(功力)이 촉발(觸發)되는 순간이다. 수레냐? 소냐? 는 말에 바로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것을 조사선문(祖師禪門)에서는 언하대각(言下大覺)이라고 한다. 선지식의 말 한 마디에 나고 죽은 생사 문제를 깨달은 것이다.

이 마전(磨塼)이라는 선화(禪話)를 보면 선지식(善知識)의 안목(眼目)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 수가 있다. 자기 회상을 찾아와서 열심히 정진 수행하는 제자(弟子)의 근기를 갈파(勘破)하고 대오(大悟)의 경지로 이끌어주는 남악 회양선사의 자비심은 만고(萬古)의 사표(師表)이다.

절집에는 이런 선지식이 많아야 눈 밝은 수좌가 깨달음을 얻게 된다. 불교 수행은 각자가 자오(自悟) 자득(自得)이지만 그래도 눈 밝은 선지식이 있어야 바른 길로 곧장 갈수가 있다.

옛날 선원(禪院)에는 이런 선지식이 차고 넘쳤다. 그래서 당송(唐宋) 때는 기라성 같은 선승(禪僧)들이 선(禪)의 황금시대(黃金時代)를 꽃 피웠다. 그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선문염송(禪門拈頌)이고, 무문관(無門關)이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이다.

마조 스님은 회양선사의 촉발로 깨달음을 얻는 뒤에 남악회양선의 법을 이어 받아서 중국 불교를 선불교(禪佛敎)로 꽃을 피워냈다. 중국 천하가 마조(馬祖)선풍(禪風)으로 진작되었다.

마조스님은 평상심(平常心)이 도(道)다.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자는 것이 도다. 오가정종찬(五家正宗讚)에 보면, 마조스님이 깨달음을 얻고 회양선사 법을 이은 뒤에 고향을 찾게 되었다. 깨달음을 얻어서 큰스님이 되었다고, 금의환향(錦衣還鄕) 고향 사람들이 큰 잔치를 벌여 야단들인데,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이웃집 할머니가 무슨 경사가 났냐고, 구경을 나와서 마조스님을 보고 하는 말이 방앗간 키(箕)쟁이 마 씨(馬氏)네 작은 아들 오줌싸개가 아니오! 겨우 저 오줌싸개를 두고 이렇게 온 동네 방내가 야단들이야! 라고 코웃음을 쳤다고 한다.

마조선사가 그 말을 듣고, 그 후에 제자들에게 경계(警戒)의 선시(禪詩 )를 남겼다. 그대들에게 권하노니 고향에 가지 말라(勸君莫還鄕) 고향에 돌아가면 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還鄕道不成).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노파(溪邊老婆子)는 어릴 때 내 이름만 부르는구나(喚兒久時名), 도를 깨달아 큰 고승(高僧)이 되어 중국 선불교를 쥐락펴락한 큰 선지식(善知識)도 고향에 돌아가면 남의 집 옷이나 빨아 생계를 잇던 노파의 눈에는 어릴 때 오줌 싸던  마 씨네 작은 아들로만 기억을 한다는 말이다.

고향에 돌아가면 도인으로 존경을 받지를 못한다는 말이다. 마 씨네 작은 아들 오줌 싸게! 했으니,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고향 나사렛에  갔으나 배척받고 인정을 받지 못하고 불신만 당하고 고향 사람들은 의혹의 눈초리로만 보았다.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고 했다.

요즘 세상도 이와 같은 예는 아주 많다. 객지에 나와서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가면 역시 응! 너 왔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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