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보이던 날, 바람이 보이는 날
바람이 보이던 날, 바람이 보이는 날
  • 성광일보
  • 승인 2017.11.22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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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 김정숙 논설주간

동그랗거나 세모이거나 네모의 바람이 밤의 거리에 나왔다

오늘 아침엔 그들이 억씨게 힘을 모아 나왔다.

억씬 바람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 동동거리며 굴러갔고 사각의 바람에 휘둘린 거리의 낙엽이 강으로 가거나 하늘로 솟았다.

바람이 기억한 수능일은 늘 억쑤로 바람 쫌 불어줘야 제 할일을 다 하는 듯 했다.

그날 엄마는 내 도시락을 쌌다.

8남매의 생계를 책임졌던 엄마가 도시락을 싸 준 건 내 학창시절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나 언니 오빠들이 엄마를 대신해 나를 업어 키우는 건 기본이고 학교 공부와 도시락도 챙겨 줘야 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엄마는 늘 없었다.

그러나 대학시험을 치르던 날엔 엄마가 새벽부터 내 도시락을 쌌다.

뜨끈뜨끈한 찹쌀밥을 플라스틱 도시락에 담으며,

그 밥을 다 먹으면 시험에 붙을 거라고 했다.

새벽에 따뜻했던 도시락은 시험을 치는 동안 식어서 밥이 떡처럼 굳었다.

그래도 그걸 먹는 건 엄마의 정성과 기도를 받는거였다.

밥을 젓가락으로 떼어 먹는 건 1분이 아쉬운 점심시간을 허비하는거나 마찬가지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럴수도 없었다.

찹쌀밥은 지그들끼리 점성에 서로를 당기는 자성까지 더하여 밥알들 서로가 서로를 굳세게 끌어 안고 있었다..

숟가락으로 바둑판처럼 금을 그어 삽으로 모판을 떠 내듯이 한 덩어리씩 파 먹었다.

아구 한 가득 머문 찹쌀밥 덩어리가 내 목울대를 지날 때마다 가다가 서다가를 반복하며 긴 시간 식도를 통과했다.

대학시험에 붙으라고 찹쌀밥을 먹었으니 시험에 붙어야 했다.

가까스로 목울대를 지나던 찹쌀밥 덩어리는 소화하며 끈기를 포기하고 분쇄하며 분해해서 화학작용을 했다.

시험엔 떨어지고 소화는 잘 시켰다.

재수를 했을때도 엄마는 찹쌀밥을 싸줬다.

떡처럼 굳은 찹쌀 밥 도시락이 생각나서 미간을 찌푸리려는 순간 엄마는 손수건에 싼 도시락 대신 두툼한 가방을 내밀었다.

가방안엔 밥 주발을 담아 아랫목에 넣어두던 스트로폼 밥 주발 보온통이 동그란 대머리 뚜껑을 위로하고 수줍게 놓여 있었다.

새벽에 김이 모락모락 났을 찹쌀밥은 점심시간까지 엄마의 손처럼 온기를 머금고 밥의 형상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과 밥그릇에 머리를 쳐박고 밥을 먹는 내내 뜨거운 눈물이 밥과 함께 넘어갔다.

모판처럼 굳은 밥을 꾸역꾸역 먹는것도 아닌데 밥은 또 다시 꾸역대며 눈물과 콧물에 범벅였다.

책상에 쳐박은 머리가 고개를 들 무렵 스트로폼 주발 밥통의 대머리 뚜껑에 남은 눈물 한 방울 더 내렸다.

엄마가 싸준 두번째 찹쌀밥 도시락에 합격 통지서가 붙었다.

사랑은 그런거몄다.

부모의 사랑은 그런거였다.

몰라서 서툴고 없어서 서툴고 바빠서 서툴고 알아도 서툴고.

서툴고 서툴어도 받으면 받는대로 눈물이 내리는 거였다.

내일은 또 다시 이 땅의 수능일,

바람이 보이던 날, 그리고 바람이 보이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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