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거안사위(居安思危)의 역설적 진리
(기고)거안사위(居安思危)의 역설적 진리
  • 성광일보
  • 승인 2018.03.2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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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극한의 갈등 지역인 한반도는 바야흐로 해빙 분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표명했고, 남북은 특사단 파견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으며, 일각에서는 종전선언의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전보장, 국방, 전쟁을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전란과 같은 ‘만분의 일’을 대비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이유이자 위정자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사가 증명하는 진실이자 교훈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Let him who desires peace prepare for war).’ 세계 병법서의 전범으로 여겨지는 「군사학 논고」의 저자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Flavius Vegetius Renatus)가 남긴 말이다. 베게티우스가 이 저술을 로마 황제에게 올린 것은 서기 378년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로마제국이 서고트 족에게 크게 패배했기 때문이다. 이는 제국의 팽창으로 넓어진 수비범위, 평화의 지속으로 외침에 대해 무뎌진 경각심, 시민권자의 병역기피에 따라 이민족 용병으로 구성된 제정로마의 군대 등 여러 악재들이 복합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로마는 자신들이 확립한 ‘팍스 로마나’에 취한 나머지, 그 평화를 확립하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전쟁과 희생을 망각했다. 이러한 잃어버림의 대가는 서기 476년 제국의 멸망으로 치러졌다.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라. 생각하면 대비를 하게 되고, 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이 사라진다.(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則無患.)’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위강(魏絳)이 자신에게 하사된 정(定)나라의 선물을 거절하며 진도공(晉悼公)에게 간했던 말이다. 당시 진나라는 신흥 강자인 초(楚)나라와 중원의 패권을 두고 다투고 있었는데, 양국의 사이에 위치한 소국인 정나라에 대한 대리전에서 승리한 진나라는 초나라와 도전을 억누르고 평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전쟁에 대비하라는 위강의 간언에 따라 더욱 정진한 진도공은 마침내 융(戎)이라는 오랑캐와 주변국을 굴복시키고 주나라 천자를 보위하여 중원의 패자가 될 수 있었다.

‘천하가 비록 평안하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기가 닥친다(天下雖安 忘戰必危)’ 중국에서 손꼽히는 병법서 중 하나인 「사마양저병법」 중 전쟁 원칙을 다룬 부분에서 언급된 말이다. 저자인 전양저(田穰苴)는 평소 치국평천하의 정상적 수단은 인의이며, 전쟁은 인의라는 정상적 수단이 통하지 않을 때만 사용하는 것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제(齊)나라의 장군이자 병법가였던 그는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인위라는 평화적 수단을 치국평천하에 사용할 수 있음을 알았고, 따라서,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절대적 진리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론을 바탕으로 전양저는 제나라의 장군으로써 당시의 패국인 진(晉)나라를 제압하는 등 군주인 제경공(齊景公)으로 하여금 제환공(齊還公)의 패업을 상당 부분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비교적 잘 알려진 격언을 활용하기 위해 로마와 중국의 세 가지 고사(古事)를 활용했지만, 평소에 전란을 대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나타내 주는 역사적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북방 여진족의 간헐적 발호와 을묘왜변 등을 제외하면 개국 이래 이어진 평화에 젖어, 전쟁 준비에 소홀했던 결과는 임진왜란으로 찾아왔다. 비슷한 역사는 1636년 병자호란, 1910년 경술국치, 1950년 6·25전쟁에서도 되풀이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비교적 최근인 2002년과 2010년 서해상에서 있었던 세 차례의 사건을 통해 다시금 아프게 배웠다. 오는 3월 23일(금)은 제2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도발이 주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고 상기하는 날이다. 그 교훈이란 평화를 위해서라면 전쟁을 치를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와 전쟁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말로써 양립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말의 이면에는 전란 시 국가의 평화를 지키는 것은 물론, 적국으로 하여금 감히 도발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쟁 억지력을 갖춤으로써, 완전한 평화를 도모한다는 역설적 진리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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