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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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광일보
  • 승인 2018.04.0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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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 논설위원

 

아침의 기운이 해를 데려오면 몸이 살아나고 으스름한 기운으로 해 없이 왔을 땐 물과 햇빛을 못 받은 반려식물처럼 내 몸도 덩달아 축 늘어지곤 한다.

하늘에 뜬 해가 구름에 가려지거나 미세 먼지에 가려지거나 기압이 내려와 몸을 누르는 건 아무리 봐도 보이질 않는데 분명 기압은 내 몸 사방을 누르고 있기에 몸뚱이가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뻑적지근한 것이리라.

어디에 있는 걸까?

어디쯤에서 나의 몸 그리고 그녀들의 몸을 겨냥해 기압레이저가 쏘아지고 있는 걸까?

이러다가 구름이든 미세먼지든 기압이 물러가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나와 그녀들의 몸은 물 만난 물고기마냥 외출을 준비하고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건강한 웃음으로 세상을 살거다.

오늘도 그렇다.

아침나절 잔뜩 찌푸린 기압과 해가 쓴 가면 덕에 하루를 시작하는 게 아침인지 저녁나절인지 도통 모를 기운에 일정의 반을 미루고 책을 읽다가 신문을 읽다가, 멍 때리고 있다가 오전 시간 모두를 흘려보냈다.

반백의 세월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내 삶의 이런 증상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서 당최 풀리지 않는다.

마음이 늙으면 몸이 늙는다 하고 몸이 늙으면 마음이 늙는다는 늙음의 불안이 삶을 지배할 때마다 세상 만물은 생과 성과 사하는 이치라는 걸 한 터럭 곁에 두고 위로받으며 또 다시 '끄응!'소리로 엉덩이를 추켜올려 일터로 나가곤 했다.

일하지 않으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어릴 적 엄마의 훈계는 내 나이 엄마 나이 쯤 돼서 방언처럼 터져 나와 앉으나 서나 일 타령으로 쉬는 게 좌불안석이다.

젊었을 때 부터, 정확히는 고등학생, 대학생 아르바이트, 직장인, 작은 사업, 어쨌거나 나는 일 할 수 있는 나이부터 일을 했으니 100세까지 복 받을 수명이라면 30년을 넘게 그러니까 인생 30퍼센트를 일하는 에너지로 쓴 셈이다.

사지멀쩡하고 눈 보이고 귀 들리니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폭발할 지경의 청년기엔 그 많은 일을 하고도 에너지가 넘쳐 나 객기와 색기와 밤거리의 운동장에서도 뛰어 놀았다.

뭐든지 과하면 못 쓴다고 과유불급을 책에서 배워도 몸 따로 마음 따로 세상에서 춤을 추는 걸 멈추지 못해서 당장 맞아 죽어도 과한 것으로 몸과 마음에 폭식하였다.

구두 빨 158센티 운동 화빨 153 센티의 작은 몸에서 머리는 크게 자라 사사건건 생각이 많고 생각이 유달라서 어느 무리에 속해도 튀거나 자폐하여 별스러웠던 청춘.

그 청춘도 오늘 아침처럼 뿌연 가면 쓴 해가 들락날락할 때면 별 볼일 없는 유기체의 지난 역사였다는 걸 알려주곤 한다.

늙음이 죄인가, 나이 듦이 죄인가, 수년전 TV에서 탱탱한 몸으로 청춘을 과시했던 연예인도 아이 낳고 사는 수 년간 중년으로 변해서 머리가 하얗고 주름이 진한데, 내가 늙는 게 뭐 어쩠다는 건가?

젊음이 재산이라는 내 속의 마음이 늙음은 재산을 잃어버린 것, 재산을 탕진한 것이라고 여겨서 늙음을 두려워 하는 걸까?

청춘은 재산이라는 내 심리속 명제가 재산이 없으면 죽는다는 논리로 나를 이끄는 걸까?

내 살아있음의 증거, 그걸 증명하려고 나의 늙음을 두려워 하는 걸까?

그래서 이런 날, 찌부둥하게 흐린 날, 보글대는 사우나탕의 유혹에도 꾸역꾸역 일터로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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