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 화성행궁 역사탐방
수원화성 & 화성행궁 역사탐방
  • 김광부 기자
  • 승인 2018.05.02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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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1일(월) 서울교대 여행작가 반에서 실시하는 현장 수업에 참여 하기 위해 오전 8시 30분 ITX - 새마을 1121 열차에 몸을 실었다.

수업 장소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190번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 화성행궁이다. 수원화성은 곳곳에 아름다운 꽃과 고풍스러운 성곽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다각형 정자로 동북각루로 불린다. 화성의 4개 각루 중 하나다. 각루는 주변 보다 높은곳에 지어져 주변 감시를 목적으로 한다)

수원 화성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뒤주 속에서 불운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풍수지리학상 명당자리인 화산으로 이전하고 그 부근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 현재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또한 화성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그 필요를 절감한 수도 서울의 남쪽 방어기지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당쟁이 극심했던 정세를 쇄신하고 강력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정조 자신의 원대한 구상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계획적 신도시로 건설된 것이기도 하다.

▲ 수원화성 장안문(長安門), (북문)

따라서 극진한 효심을 기반으로 군사, 정치, 행정적 목적까지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화성의 건설에 당대 동서양의 과학과 기술의 성과가 총결집되었고, 단원 김홍도를 비롯한 예술가들, 번암 채제공과 실학의 거두 정약용을 포함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참여했다. 그 결과 화성은 근대 초기 성곽건축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성벽의 외측을 쌓되 내측은 자연의 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우는 외축내탁의 축성술, 실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화강석과 벽돌을 함께 축성의 재료로 사용한 전석교축, 목재와 벽돌의 조화로운 사용, 거중기·활차(滑車)·녹로 등 근대적 기기의 발명과 사용 등 기능성과 과학성, 예술적인 아름다움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 조선 시대 절정의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 포루 및 홍이포(길이: 215cm, 구경: 10cm, 중량: 1800kg)는 명나라 말부터 청나라 때까지 사용된 유럽식 화포로 포구쪽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하여 발사하는 포구 장전식 화포이며 사정거리가 700m 에 달하는 위력적인 화기로써 성곽 또는 포루 등에 배치 하거나 성곽 공격용으로 사용 하였다.

축성의 전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화성성역의궤」에 따라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홍수 등을 거치며 일부 파손되고 손실된 부분을 복원한 화성은 약 6km에 달하는 육중한 성벽을 따라 마흔 개 이상의 시설물을 갖추고 있다.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팔달문(八達門)과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長安門)을 포함한 4대문, 화성행궁의 중심이자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연을 치르기도 했던 봉수당(奉壽堂), 방화로 소실되었다 두 번 복원된 서장대(西將臺), 남북으로 흐르는 수원천의 범람을 막아주는 동시에 방어적 기능까지 갖춘 북수문인 화홍문(華虹門), 망루와 포루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독특한 시설물인 공심돈(空心墩), 군사적 목적의 이름으로는 동북각루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건물인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자체 방어시설까지 갖춘 봉수대인 봉돈, 샛문인 암문 등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수원시는 매년 10월 화성문화제를 개최해 정조의 효심과 화성을 기리고 있다.

▲ 화홍문[華虹門] 에서 바라본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2016년 1월 수원화성 일대 약 1.83㎢가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화성행궁 봉수당.(奉壽堂)은 화성행궁의 정전이자 화성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장남헌(壯南軒)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1789년에 완공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다. 그 후 1997년에 복원되었다. 정조는 1795년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하였다.

우리 일행은 수원갈비를 점심 메뉴로 맛보기로 하고 본 수원 갈비집으로 향했다. 수원갈비가 유명한 이유는  수원은 아래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모든 산물이 거치는 장소란다. 그중에서 수원이 일제강점기 우시장으로 꼽혔는데 원가 한우갈비를 구하기 쉬워지니 이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이 발전되어 양념을 잰 갈비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수원갈비는 1795년 정조대왕이 수원화성 행차시 아침 수라상에 올리기도 했던 음식이기도 하다.

▲ 본 수원(수원갈비 차림)

'수원갈비'는 이미 정평이 난 수원의 대표 음식. 영동시장 골목에 있던 회춘옥에 들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맛있게 먹은 뒤, 수원갈비의 이름이 더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일찍이 수원에 큰 우시장이 있어서 좋은 갈비를 신선하게 댈 수 있었던 것도 큰 이유라고 한다. 여느 지역에 비해 갈비가 큰 데다 맛도 좋아 소문이 났는데, 소문대로 갈비,  냉면 맛이 일품이었다.

▲ 정조(정조는 왕권 강화를 위한 새로운 정치 공간으로서 수원부에 신도시를 건설했고, 실학자 정약용에게화성의 축조를 맡긴다.)
▲ 정약용(다산 정약용은 상업적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평산성 형태를 기본으로 수원 화성을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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