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반짇고리
어머니의 반짇고리
  • 성광일보
  • 승인 2018.05.10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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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전대수의 마음의 향기
▲ 전대수/수필가

어머니의 반짇고리는 대나무 소쿠리였다. 얇고 가늘게 쪼갠 대나무로 엮어 만든 작은 소쿠리가 어머니의 반짇고리였으며, 그 반짇고리에는 낡은 대오리가 헐어서 넘쳐 나올 만큼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누에고치에서 뽑아 만든 명주실과 목화를 타서 물레로 잣은 무명실, 그리고 수의(壽衣)를 짓고 남은 삼베의 천 조각도 그 속에 담겨 있었다.

누에고치를 잘라 만들어서 엄지손가락에 끼는 골무나 천 조각을 넣어서 뭉친 바늘겨레도 그 반짇고리에 들어 있었고, 은박지로 납작하게 눌러 싼 바늘쌈도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뽕잎이 한두 잎 걸쳐 있기도 하였고, 말갛게 살찐 누에가 꿈틀거리며 검고 작은 똥을 누어 놓기도 하였다.

실로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그 반짇고리에는 읍내에서 사온 바늘쌈 외에는 대부분 어머니의 손길과 정성이 담긴 것들뿐이었으며, 어머니의 한숨이나 눈물은 물론, 어머니가 살아낸 인고의 세월도 묻어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베를 짜듯 인생을 엮으시고,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듯 세월을 뽑아 내셨다. 아버지가 일구어 주신 밭이랑에서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그리고 뽕을 따다가 누에를 치고, 목화를 탄 솜에 물레를 잣고, 손톱으로 삼 껍질을 가늘게 가르고... 그러면서 5남매를 길러주셨다.

시골 여인이었던 나의 어머니는 인공위성이 달나라에 가는 것쯤은 별 관심사가 못되셨다. 오직 살림 사는 것이 직업이었으며, 직업인으로서도 만능이셨던 나의 어머니는 남다른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베틀에 앉아서 베틀신을 신고, 베틀 끈을 당기면 북이 지나가도록 수십 개의 올이 위 아래로 열리고, '딸깍' 소리와 함께 용두머리 눈썹대와 반대 방향으로 맞추어진 굽은 신찐나무가 움직이면 운명을 짜고 인생을 엮으시던 어머니.

어머니의 재능과 예능은 끝이 없었다. 손수 짜신 천에 마음먹은 색깔의 물을 들이는 솜씨는 어느 염색 공장의 기술자도 따를 수 없었을 것이며, 옷을 지을 때의 디자인과 재단 솜씨나 바느질 솜씨도 재능을 넘어선 예술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고로 일찍 떠나보내고 쉰 넷의 나이에 홀로 되신 다음부터는 외로움을 가슴에 안고 사셨으며, 한숨 쉬는 날이 많아지셨다.

하여, 어머니는 베를 짜거나 길쌈을 하실 때도 그랬지만, 반짇고리를 앞에 두고 헤진 옷가지를 꿰매실 때면 '에고 우리 막내, 에고 우리 막내' 하며 유독 막내둥이인 내 걱정을 많이 하셨다. 어머니 연세 마흔여덟에 쉰둥이(?)로 나를 낳으셨으니 한숨이 절로 나왔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어머니의 한을 알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으리라. 게다가 어머니의 반짇고리에는 어머니가 살아내신 인고의 세월이 담겨 있다는 것도 그때부터 알게 되었으리라.

수필사 전대수는

월간 '수필문학'으로 천료 등단하였으며, 수필문학작가회 감사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음
·전,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전, 서울시의원
   저 서: 우리말 배우기<전5권>, 작은집, 발가벗은 남자, 논술형 아이 엄마가 만든다, 성공을 위한 화술클리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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