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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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광일보
  • 승인 2018.06.1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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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전대수의 마음의 향기
▲ 전대수/수필가

포장마차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면 옛 추억이 떠오르고 그리움이 영근다. 그런가 하면, 포장마차에서는 훈훈한 인정도 스믈스믈 피어오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는 집 다음으로 포장마차를 즐겨 찾는다.

나는 플라타너스 길거리에 자리 잡은 포장마차나 공원 옆 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포장마차를 좋아한다. 더불어, 한 잔 술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안주거리가 진열되어 있고, 후덕스러운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해 주기만 하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십 수 년 전부터 황학동의 은행 옆 골목 빈터는 포장마차 전용골목이 되어 있었다. 여기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은 친절한 만큼 단골손님이 많아지고, 돈 버는 재미도 짭짤한 듯 했다.

내가 즐겨 찾는 곳은 입구에서 세 번째 포장마차. 세상의 모진 풍파를 다 겪은 듯 얼굴에 잔주름이 많은 아주머니의 지긋한 눈인사가 친근감을 더해 주며, 거칠어진 더덕 손으로 만들어 준 안주거리가 향토 맛을 느끼게 한다.

해삼과 멍게는 초장감이요, 닭발이나 메추리는 연탄불에 구워먹는다. 대합을 뚝배기에 담아 끓여서 소주 한 잔에 속살 한 점씩을 안주 삼는 것은 끓일 때부터 입맛이 당긴다. '카아∼'하며, 한 잔 소주 꿀꺽이고 나서 내쉬는 숨결에 긴장감이 해소되고, 술기운이 몸에 젖어들면 작아졌던 간도 적당히 부풀어진다. 그러하기에 나는 선후배나 남녀를 가리지 않고, 대화가 통하는 사이라면 기꺼이 동반하여 그 포장마차를 찾아가 긴장을 풀기도 하고, 호기를 부려 보기도 한다. 그리고 내 마음에 작은집을 짓고, 그 안에서 추억을 만들기도 하며, 그리움도 익혀본다.

술잔을 앞에 놓고 앉으면 바람에 나부끼는 포장처럼 옛 추억이 펄럭이고, 어묵 국물의 김처럼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그리움. 딱딱하게 각이진 도심에서 정서의 샘이 말라버린 나이에 이런 자리를 찾기가 어디 그리 흔하던가.

벌써, 나의 포장마차 이력도 20년이 넘었으니, 단수로 평가하면(조금은 겸손하게 평가해도) 2단 정도는 될 것이다. 바람기 있는 친구,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 들어가는 날보다 많다는데, 나는 포장마차에 가는 날이 가지 않는 날보다 많다.

정해진 궤도를 따라서 도는 달처럼 일과를 마치면 황학동의 포마크럽(?) 골목을 들러 집으로 가는 내 발걸음. 어쩌다 한 번쯤, 날 찾는 이 없는 날에도 집으로 직진하기에는 일과를 마무리 짓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에 혼자서도 가끔씩 찾게 되는데, 마음이 답답하거나 짜증스러울 때일수록 가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 포장마차는 일과 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또 하나의 내 집이기도 하다. ?우선, 부담이 없어서 좋은 곳이다. 뷔페 보다 된장찌개에 꽁보리밥이 구미에 맞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곳이며, 허영과 과욕에 눈먼 사람보다 운명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기름기가 끓는 요정보다 서민들의 정이 끓는 포장마차에는 스코틀랜드산 고급 위스키 대신 값싼 소주를 팔고, 스위스의 비둘기 요리보다 메추리구이가 맛은 좀 덜해도 지갑을 꺼낼 때는 망설이지 않아도 좋다. 

그리고 포장마차는 서로 간에 정을 나누는 서민들의 사랑방이다. 처음 만난 손님 간에도 넌지시 인사를 나누며 한 잔쯤 권하고, 서로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어 가지기도 한다. 어디, 그뿐이랴. 술잔이 어느 정도 기울 때면 밤하늘의 구름 사이로 달도 흐르고, 흐르는 달 따라 가슴속으로 추억이 흐르니 그 아니 좋을 손가.

사람은 누구나 추억이 있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가겠지만, 나는 추억을 회상하고 그리움 떠올리기를 포장마차에서 하곤 한다.

이런 저런 연유로 하여 내가 즐겨 찾는 포장마차가 도로의 무단점유와 비 위생을 들어 철거명령을 내렸으니, 내 작은집이 사리지면 나는 퇴근 후 어디를 들러서 집에 가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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