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산수, 진한 역사의 향기가 묻어나는 영월을 찾아서
수려한 산수, 진한 역사의 향기가 묻어나는 영월을 찾아서
  • 이원주 기자
  • 승인 2018.07.02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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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광문화기획단
성광문화기획단이 지난 6월 30일 단종역사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성광문화기획단(단장 이용흠)이 수려한 산수를 자랑하고 단종의 슬픈 한이 서려있는 영월을 찾아가는 날(2018.6.30) 이른 아침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도 성광기획단이 단종을 찾아 떠나는 줄 아셨던 것인가?
이른 아침 왕십리역 광장에서 출발한 버스가 장마의 영향인지 소통이 잘돼 예정보다 일찍도착할 것 같아  예정에 없는 한반도 지형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버스가 2시간을 달려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에 도착했다. 가는 내내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렸으나 다행이 그 곳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마침 기다리고 있던 해설사의 안내로 800미터를 따라 오르자 한반도 지도와 똑같은 모양의 지형이 나타났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20분거리에 있는 단종의 무덤이 있는 장릉에 도착했다.
장릉입구에 도착하자 친절한 해설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장릉에 들어간 일행은 먼저 기념관 앞에서 기념촬영부터 하고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설명을 들었다.

해설사의 친절한 해설을 들은 일행들은 단종이 잠든 무덤까지 올라가 예를 갖추기도 했다

장릉에 대한 단종의 슬픈 사연을 들은 일행은 사전 예약을 해 둔 보리밥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감자를 넣어 지은 보리밥은 각종 나물을 넣고 비벼먹으니 일품 식사가 따로 없었다. 반주로 내어 준 동동주를 곁들여 먹으며 힘들었을 단종의 유배생활을 음미해 봤다.
동동주와 보리밥으로 허기를 채운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슬픈사연이 깃든 청령포를 찾았다.

청령포는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아주 짧은 거리지만 배를 타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나루터 언덕에서 바라보는 청령포 경치는 가히 절경이었다.
선착장도 없는 자갈밭에 뱃머릴 대자 일행은 단종이 유배생활을 했던 어가로 이동했다.

청령포는 험준한 산과 둥글게 물돌이를 이루며 돌아가는 강으로 둘러싸인 범상치 않은 풍경이 앞에 펼쳐졌다. 소나무들이 울창한 천혜의 섬이었다. 닿을 듯 쉽게 닿지 않는 탓에 조선시대 숙부인 세조로부터 왕위를 찬탈당한 어린 단종 임금이 이곳에서 한 많은 유배 생활을 했다는 생각에 잠시 가슴이 저려오는 듯 했다.
며칠전부터 내린 비로 강물은 짙은 향토색이었지만 자갈밭은 밝은 미소로 반겼다. 정말 천혜의 섬 아닌 섬 같다.

청령포 탐방을 마친 일행은 마지막 코스인 김삿갓 유적지로 자리를 옮겼다.
김삿갓 묘소 앞에는 갓을 쓰고 하얀 한 도포를 입은 해설사가 쩌렁 쩌렁한 목소리로 난고 김삿갓에 대한 설명을 해학적으로 풀어내 일행들이 한 바탕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김삿갓의 묘소 건너편에는 김삿갓 문학관이 있다. 문학관에는 시대정신과‘문화예술 魂’을 추모하고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 하고,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김삿갓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각종 자료들과 김삿갓이 조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과거 답안과 그가 해학적으로 썼던 시를 통해 그의 일대기를 엿 볼 수 있다.

김삿갓 문학관을 돌아 본 일행을 태운 버스는 서울향해 질주를 시작했다.
왕십리역 광장에 도착하자 비는 내리지 않았다. 하늘이 성광문화기획단을 도운것이리라.

한반도 지도와 꼭 많은 한반도 지형

<한반도지형>
한반도 지형은 서강(西江) 샛강인 평창강(平昌江) 끝머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음 앞에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사인 한반도를 꼭 빼닮는 절벽지역인 한반도지형이 있어 유명해졌다고 해설사는 설명했다.
평창강은 길지 않지만 유로연장(流路延長)이 220㎞가 될 만큼 심하게 곡류하며, 주천강(酒泉江)과 합쳐지기 전에 크게 휘돌아치면서 동고서저(東高西低) 경사까지 한반도를 닮은 특이한 구조의 절벽지역을 만들어 냈다.

단종의 무덤에 절을 올리는 회원

<단종의 무덤, 장릉>
조선시대에 왕릉은 도성 10리 밖, 100리 내에 조성했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은 유일한 능이 청령포 인근의 장릉(莊陵)이다. 단종이 묻힌 장릉(사적 제196호)을 돌아보는 것도 청령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다른 조선 왕릉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단종의 주검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도 없게 강에 띄워졌다. 세조의 서슬 퍼런 후환이 두려워서일까, 아무도 시신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때 영월의 호장(戶長: 지금의 읍장)인 엄흥도가 어둠을 틈타 강에 뜬 단종의 시신을 몰래 건져서 동을지산에 묻었다.
그것을 지켜본 가족과 친척들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말렸으나듣지 않고 "선(善)을 행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내가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라고 말했다. 그 뒤 엄흥도의 충절을 높이 여긴 우의정 송시열이 현종에게 건의하여 엄흥도의 자손에게 벼슬을 주었고, 영조 때는 죽은 엄흥도에게 공조참판이라는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이후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었는데 중종(中宗) 11년(1516년)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단종의 묘를 찾아 묘역을 정비했다. 그리하여 봉분을 갖추게 된다. 250여 년이 지난 숙종 때 와서야 비로소 단종으로 복위되었으며, 무덤도 장릉이란 능호를 갖게 된다.

장릉은 임금의 능임에도 여느 능에 비해 그 규모가 작은 편이다. 다른 능에는 없는 특이한 점도 있다. 세조의 불의와 폭력에 맞서 꿋꿋이 싸우다 죽은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고 추모하는 제단인 배식단(配食壇)을 설치한 것이다.

정려비, 기적비, 정자 등이 바로 그것인데, 대표적으로 정려비는 단종이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아무도 시신을 거두지 않았을때, 관까지 준비해 장례를 치른 충신 엄흥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조 때 세운 비각이다. 이런 예를 근거로 영월 사람들은 영월이 '충절의 고장'이라는데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다. 장릉은 매년 4월이면 향토문화제가 거행되는 유일한 왕릉이다.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 내에 있는 어가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성광문화기획단.

<눈물나는 청령포 사연>
청령포의 소나무 숲은 밖에서 보는 모습도 빼어나지만, 하늘을 빼곡하게 뒤덮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 안의 풍광도 매우 청량하다. 거북이 등껍질같고 장수의 철갑옷 같은 소나무 줄기의 모습이 웅장하다. 역사의 슬픈 사연이 담긴 유배지라고 하기엔 너무나 상쾌한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한다.

청령포 입구로 들어서자 소나무 숲 속에 기와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유배당한 단종이 묵었다는 거처인 어가(御家)다. 어가 주변으로도 늠름한 자태의 키 큰 소나무들이 초병처럼 서 있다.
단종이 생활했다는 마당에서 해설사가 우리를 반겼다.

단종은 왕(세종)의 손자로 태어난 금수저였지만, 태어난 지 삼일 만에 어머니(현덕왕후 권씨)를 여의고 할아버지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의 젖을 먹고 자랐다. 12살에 아버지 문종까지 병사하자 졸지에 고아가 된 단종은 17살에 숙부에게 쫓겨나 유배 온 지 넉 달 만에 죽임을 당한다.

단종이 강등될 때 두 살 위의 왕비인 정순왕후 송씨도 '부인(夫人)'으로 강등되어 서울 동대문 밖에서 시녀들이 구걸해온 양식과 염색일로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며 평생 영월 땅을 바라보며 한을 달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찾기 힘든 기구한 삶이요, 운명이기도 하다.

1457년 유배지 청령포에서 머물렀던 단종은 그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잠기는 바람에 두어 달 만에 영월부사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긴다. 결국 유배 당한 지 4개월여만인 10월 24일 세조의 명을 받은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이 관풍헌으로 갖고 온 사약에 의해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숲 풍경이 한결 새롭고 흥미롭게 보이기도 했다. 단종의 어소(御所)쪽으로 가지를 틀어 담을 뚫고 들어와 담장조차 거기에 맞추어 쌓을 수밖에 없게 한 허리 굽은 충절의 소나무가 있는가 하면,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단종이 묵었던 어소 쪽으로 인사를 드리듯 일제히 기울이고 있는 게 아닌가.

왠지 신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소나무들이 몸을 기울이는 이유를 들으니 조금은 과학적으로 이해가 간다. 더 많은 햇빛을 받기 위해 양지를 찾기 때문이라는 것. 소나무가 햇빛을 많이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양수(陽樹)나무임을 볼 때 수긍이 간다.

고목이 되어버린 관음송이라 불리는 키 큰 소나무는 하나의 문화재가 되었다.
숲길은 자연스럽게 청령포 서측의 층암절벽 위 능선 길로 이어진다. 단종의 자취가 남아있는 노산대와 망향탑이 위치하고 있는 목책 산책로 길이다.
청령포 숲 한가운데에 군계일학처럼 솟아있는 크고 장대한 금강송이 서 있다. 기운이 뿜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범상치 않은 나무다. 괜히 천연기념물(제 349호)로 지정된 게 아니구나 싶다. 600여 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관음송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관음송이라는 이 소나무는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觀), 슬픔과 울분으로 가득 찬 단종의 오열을 들었다고(音) 해서, 관음송(觀音松)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단종이 청령포에 왔을 때가 1457년이니 그 당시엔 이 관음송은 채 100년도 안 됐을것이다. 실제로 단종은 유배 생활을 하면서 이 소나무의 갈라진 가지 사이에 말을 타듯 올라가 슬픔을 삭이고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이 늙은 소나무는 단종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며 시름을 나누던 친구였던 셈이다.

김삿갓 묘소 앞에[서 해설을 듣고 있는 성광문화기획단

<우리나라 최고의 풍류시인 김삿갓>
김삿갓의 본명은 병연(炳淵), 호는 난고(蘭皐)이다. 1807년(순조7년)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회동면에서 출생한 김삿갓은 6세 때 조부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있다가 홍경래 난을 진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항한 것과 관련하여 폐족을 당한 후 황해도 곡산, 경기도 가평, 광주, 강원도 평창등을 전전하다 영월 삼옥리(三玉里)에 정착하여 화전을 일구며 살게 되었다.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자랐던 병연은 20세 때 영월동헌에서 열리는 백일장에서 “홍경래난 때, 순절한 가산 군수 정공의 충절을 찬양하고, 항복한 김익순을 규탄하라(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는 시험 제목의 향시(鄕試)에서 장원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조부라는 것을 알게 되자 조상을 욕되게 하여 하늘을 쳐다 볼 수 없다며 벼슬길은 포기하고 삿갓을 쓰고 방랑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후 김삿갓은 57세로 객사할 때까지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니면서 방랑 걸식했다. 지친 몸으로 말년에 들른 곳이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였는데, 그곳 명소 "적벽(赤璧)"에 매료되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그 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훗날 그의 차남이 영월 고향 땅으로 이장하여 이곳에 안치했단다.

산수가 수려한 고산준령 풍운 속에 청운의 푸른 꿈을 접고 해학과 재치와 풍류로 한 세상을 살다간 조선 후기 방랑시인이자 천재시인인 김삿갓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순간 우리 모두 방랑 시인이 된 듯 했다.

한반도 지형 앞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회원들
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회원
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회원
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회원들
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회원들
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회원들
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회원
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회원
단종릉 아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성광문화기획단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성광문화기획단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성광문화기획단
장릉의 유래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성광문화기획단
정자각을 둘러보는 성광문화기획단
단종릉 앞에서 예를 갖추는 성광문화기획단
단종릉 앞에서
단종릉 앞에서
영천(靈泉): 단종제를 올리는한식때 제정(祭井)으로 사용했던 우물이다.
장릉 관람을 마치고
청령포
가까운거리지만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단종의 어소쪽으로 가지를 틀어 담을 뚫고 들어온 충절의 소나무
거북등 같기도하고 장군의철갑같기도한 소나무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 내에 있는 어가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성광문화기획단.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 내에 있는 어가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성광문화기획단.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 내에 있는 어가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성광문화기획단.
가까운거리지만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김삿갓 묘소
김삿갓 묘비
김삿갓 묘소 앞에[서 해설을 듣고 있는 성광문화기획단
김삿갓 문학관 앞에서
문학관에서 김삿갓의 일생을 그린 영상을 관람하고 있는 문화기획단
문학관을 둘러보는 회원들
문학관을 둘러보는 회원들
문학관을 둘러보는 회원들
문학관을 둘러보는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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