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 옛 유릉(裕陵) 고(考)
능동 옛 유릉(裕陵) 고(考)
  • 성광일보
  • 승인 2018.07.1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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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수/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정수/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정수/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광진구에는 ‘능동(陵洞)’이라는 행정동이 있다. 동명에 왕릉을 뜻하는 ‘능’이 붙어 있다. 동네사람들이야 그 이유를 안다지만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 이유를 눈으로 보고 확인하려면 일단 서울 어린이대공원 정문으로 들어서봐야 한다. 100미터 쯤 들어가다가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바로 왼쪽으로 왕릉에서나 볼 수 있는 곡장(曲墻)과 석물(石物)이 모아져 있다. 그리고 그 설명문을 보면 ‘아하 그래서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제목은 ‘순명비 유강원 석물’이다. 유강원(裕康園)이 있던 곳이고, 사람들 생각으로는 능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해 능동이라는 동명이 생겨난 것으로 여겨지는 면이 있다. 그렇지만 좀 더 살펴보면 유강원이 유릉으로 격상된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유강원으로 불린 역사보다 유릉의 역사가 더 길다.

이를 위해 순명비(純明妃)가 누구인가를 보자. 공식 호칭은 순명효황후 민씨(1872~1904)이다. 1882년(고종 19) 1월 초간․재간․삼간택의 과정을 거쳐 고종이 세자빈으로 낙점하면서 왕실에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 간택과 관련한 내용을 보면 도성에서 간택단자를 들인 것이 겨우 9건 밖에 되지 않아 한성 판윤에 대해 죄를 물으라는 상황이 있기도 하였다. 아마도 둘 중의 하나였으리라 생각된다. 이미 내정되어 있지 않았을까 라는 것, 또 하나는 험난한 궁궐 생활에 대한 기피 등이라 할 수 있었다.

결국 세자빈은 좌찬성 민태호의 딸로 정해졌다. 민씨가 뽑히자 납채․납징․고기․책빈․친영․동뢰연까지 여섯 가례의 길일이 정해졌고, 1882년 2월 21일 오시(午時)에 신부와 신랑이 술잔을 나눠 마시는 동뢰연이 치러졌다. 동뢰연을 행한 곳은 창덕궁 중희당이었다. 순명비는 세자빈으로 뽑혀 들어올 때 지니고 온 것이 화장품함과 《소학》뿐일 정도로 검박함을 보였다. 또한 세자빈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스승을 가르친다”라는 말을 거론할 정도 총명함이 뛰어났던 듯하다. 여기서 말하는 고종의 왕세자는 바로 우리가 아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황제(1874~1926)였다.

부친 민태호(閔台鎬, 1834~1884)는 고종 재위기간 민씨척족세력의 중진역할을 하였는데, 결국 1884년 12월 갑신정변 때 경우궁(景祐宮) 입궐 중 참살되었다. 세자빈 민씨는 입궁한지 2년 만에 근대사의 비극 현장에 서 있게 된 것이다. 1897년(광무 1) 양력 10월에 이르러 순종이 황태자로 되자 황태자비로 책봉되었으며, 1904년 11월 5일(음력으로는 9월 28일)에 경운궁(덕수궁) 강태실에서 훙하였다. 33세의 나이였다. 순종과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황태자비가 죽자 그에 따른 호칭과 산릉을 정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1904년 11월 10일에는 시호를 순열(純烈)로, 빈전의 전호는 의효(懿孝)로, 능원 관련 원호는 유강(裕康)으로 정하였다. 그리고 상지관(相地官)의 의견을 들어보고 용마산(龍馬山) 내동(內洞)에 산릉을 정하기에 이르렀다. 시호의 경우 다시 정하였는데, 당시 기록에 보이는 내용을 보면 “적중하고 바르며 정밀하고 순수하다는 뜻으로서 ‘순(純)’을 정하고 온 나라를 밝혔다는 의미에서 ‘명(明)’으로 한다.”라 하였다. 합쳐서 ‘순명(純明)’이라는 시호가 정해지게 된 것이다. 때문에 고종황제가 직접 쓴 묘지문(墓誌文)에서도 순명비라 호칭한 것이 보인다. 순종도 묘지문을 쓴 것이 확인된다.

1905년 1월 3일에 이르러 순명비는 유강원에 안치되면서 유강원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1907년 8월 27일 돈덕전에서 순종황제가 즉위식을 거행하면서 순명비 민씨는 황후로 높여지게 되었다. 황후로 높여짐에 따라 황태자비의 능역에 맞춰 정해진 유강원이라는 호칭도 격상되었다. 대개 이러한 경우 대상 호칭을 3가지 정도로 추려서 올리게 되어있었다. 이때 올려진 것으로는 유릉(裕陵)·희릉(僖陵)·헌릉(憲陵)이 있었다. 순종은 이 중 첫 번째인 유릉으로 정하였다. 이로써 3년간에 걸친 유강원시대가 마무리되고 유릉시대가 열린 셈이었다.

순종은 1926년 4월 25일 창덕궁 대조전에서 훙하였다. 묘호는 ‘순종(純宗)’이라 하고 황제로서는 ‘효황제(孝皇帝)라 정하였다. 때문에 순명황후는 순명효황후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순종의 능이 요구되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순종의 능은 이미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능이 조성된 현 남양주시 금곡 홍릉 쪽으로 정해져 있었다. 순종 국장을 위한 장의위원회가 조직되었고, 그리고 먼저 순명왕후의 능을 옮기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 중심 역할은 이완용 등이 행하게 되었다. 당시 유릉 지역은 뚝섬에 속해 있었다. 때문에 뚝섬 유릉으로 불리곤 하였다. 1926년 6월 4일에 뚝섬 유릉의 재궁을 실은 가마가 금곡 산릉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였다. 6월 5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순명후 천봉행렬은 2리에 달하였고 이를 보기 위해 온 이들은 수 십리에 달할 정도로 혼잡하였다 보도하였다. 그리고 6월 10일에는 순종의 영여(靈轝)가 금곡을 향해 떠났다. 6월 11일 순종 역시도 안장됨으로써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마지막 군주의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그간 현 능동에 있던 유강원, 아니 유릉은 왕실 능원이 있던 곳이기에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일차적으로 관리가 잘 되었다. 고종은 유강원 내 식목에 대해 장례원 및 내부, 양주군이 힘을 합쳐 거행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따라 특히 소나무가 잘 식재되어 있었으며 이에 대한 벌목은 허가되지 않았다. 그리고 유강원을 관리하며 지키도록 하기 위해 관원으로는 충의(忠義)와 참봉(參奉)이 있었으며, 파수병 40명이 정해졌다.

조선왕조에서는 왕릉 등을 관리하고 제사를 치루기 위해 주기적으로 능역을 살피는 봉심(奉審)하는 관원을 보냈다. 참봉이나 충의, 파수병 등이 있기는 했지만 공식으로 능을 살피고 제사를 올리는 데는 궁에서 파견되는 이들이 그 중심역할을 했던 것이다. 예컨대 봉심하는 각신이 행한 일의 사례를 보면 능 위와 비각(碑閣), 침전(寢殿), 제물(祭物), 제기(祭器), 제정(祭井)을 살피고 제사를 행하는 집사들에 대한 감찰을 행하였음이 확인된다.

이렇다보니 당시까지만 해도 살곶이목장 운영의 흔적과 화양정, 광진원, 군사훈련장 등이 있었던 뚝섬 및 용마산 일대가 좀 더 북적이기 시작했다. 유강원-유릉이 자리잡고, 제향이 행해지면서 나름 보다 번성해 갔을 것이다. 그러던 유릉이 옮겨져 가게 되자 유릉 터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새로운 형태의 개발붐에 휩싸이게 되었다.

본래 왕릉 구역은 왕실 소유지였다. 비록 왕릉이 옮겨갔더라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1929년 5월 26일에 유릉이 있던 자리에 골프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뚝섬 옛 유릉의 넓이는 25만평에 달하였는데 이 중 8만평을 활용해 한국사상 최초 18홀의 골프장이 조성된 것이다. 여기에 이왕직(李王職)에서 골프장 부지뿐만 아니라 비용 상당부분을 부담하였다.

유강원에서 시작된 유릉의 역사는 일단은 이렇게 우리 역사상 최초의 18홀 코스 골프장인 경성 골프클럽 군자리 코스로 전환되었다. 공교롭게도 옛 유릉 터가 한국 골프사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곳이 되었음은 흥미로움을 전해준다. 하지만 순명효황후 옛 유릉 석물을 보면 우리 근대사와 일제강점기 마지막 조선왕조의 모습이 엿보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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