都正宮(도정궁) 慶原堂(경원당)을 보며 태종의 낙천정 이궁을 떠올리다.
都正宮(도정궁) 慶原堂(경원당)을 보며 태종의 낙천정 이궁을 떠올리다.
  • 성광일보
  • 승인 2018.11.1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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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수 / 건국대 사학과 교수
한정수 / 건국대 사학과 교수
한정수 / 건국대 사학과 교수

고택(故宅)이라 함은 옛 선현들이 짓고 살았던 가옥을 일컫는다. 더불어 그 원형을 유지하여 문화적 가치가 있으면 더욱 좋다. 전주하면 떠올리는 것은 전주 한옥마을이다. 하회하면 저절로 연결되는 것이 하회역사민속마을이다. 안동하면 각 종택과 재실이 있는 양반 마을을 연상하게 된다. 이를 보면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삶 가운데서도 옛 고택에 대한 남모를 향수가 있어 전통시대 마을 혹은 양반가옥을 추억하는 우리의 유전자성향이 읽혀진다.

그러면 광진구에는 고택이라 할 수 있는 양반가옥이 있을까? 필자의 견문이 좁아서인지 몰라도 한마디로 '없다'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그만큼 광진구는 20세기와 21세기 급변하는 문명사회에 적극 따랐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광진구의 역사에 기인하는 면도 있다. 조선시대로 말하자면 도성 밖에 있었던 데다가 목마장이 있었던 지역이었고, 광주로 통하는 나루인 광나루가 있어 한강 수계를 통한 조운물품이 하역되어 운반되는 마을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태종-세종, 세조대에는 그나마 낙천정 이궁(離宮)과 화양정이 있어 성세가 유지되었을 듯하다. 낙천정은 그나마 이전 복원되어 그 모습을 약간이나마 전해주고 있지만 태종과 세종의 체온이 서린 낙천정 이궁은 전혀 알 수 없다. 화양정 역시도 마찬가지로 정자 형태를 갖추고는 있으나 원래의 모습이라 할 수는 없다.

그나마 고택이라 부를 수 있는 건물이 건국대학교 내에 있다. 도정궁 경원당이 그것이다. 원래의 명칭 가운데 하나는 사직동 정재문가고택이다.  본래 위치는 종로구 사직동 262-85번지였다. 현 인왕산자락 사직공원 일원에 있었던 셈이다. 이 고택은 1979년 7월 4일 성산대로 건설 도시계획으로 인해 건국대학교에 이전되었다. 정재문씨가 기증한 것이었다. 건물 자체도 사실 완전하지 않은 사랑채에 해당하는 'ㄱ'자 건물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1913년 12월에 화재로 150칸이나 되었던 건물이 불타고 소실된 뒤 다시 지어진 결과라 한다.

이 가옥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도정궁(都正宮)'이라 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 실마리로서 도정(都正)+궁(宮)으로 이루어진 명칭을 추적할 필요가 있다. 본래 도정이라는 말은 조선시대 종실사람으로 종친부와 돈녕부 등 정3품 당상관 관직을 칭하는 것이었다. 또한 궁의 호칭은 국왕과 관련될 때에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도정직을 가진 종친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도정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공식명칭을 '도정궁'이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도정궁이라는 명칭이 나오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도정궁이라 한 데에는 뭔가 특수한 사정이 반영된 것이라 추측된다. 일단 '도정궁터'라는 표지석이 종로구 사직동 261번지에 있는 것이 확인된다. 그리고 그 설명문을 보면 조선왕조 14대 임금인 선조(宣祖)의 생부이자 중종의 9남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1530-1559)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라 하고 있다.

덕흥대원군은 조선왕조 역사상 최초로 왕의 생부로서 대원군이 된 분이었다. 본래 선조는 생부를 왕으로 추존하고자 하였지만 대신들의 반대로 대원군 칭호를 올리는데 그쳤다. 대신에 덕흥대원군의 3남이었던 선조는 생부인 대원군의 제사에 각별한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한 조치 중의 하나가 제사를 받드는 후손을 지정하는 것이었다.

선조는 1577년(선조 10) 5월에 대원군의 제사를 받드는 후손으로 4대 뒤부터는 도정을 제수토록 하자는 의견을 받아들였고, 이에 따라 선조는 제사를 받드는 후손에게 도정을 세습도록 하였다. 이를 근거로 인조 대부터는 제사를 받드는 봉사손은 '세습도정(世襲都正)'으로 특별대우를 받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덕흥대원군은 누대에 걸쳐 신주를 옮기지 않는 '불천지위'가 되었으며, 제사는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제사공간은 본래의 덕흥대원군 사저에 두어졌는데, 덕흥대원군사우(德興大院君祠宇)라 불려졌다. 다른 호칭으로는 '덕흥궁(德興宮)'이라 한 사례도 확인된다. 한양 도성 서부 인달방(仁達坊) 사직단 옆에 있던 덕흥대원군 사저와 사당의 긴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덕흥대원군 제택 혹은 사우, 덕흥궁 등은 일제강점기에는 신문자료로 볼 때 도정궁으로 불리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이해춘(李海春)이라는 인물이 이하전(李夏銓;1842~1862)의 친자라면서 이하전의 부인 서씨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던 데에서 나온다.

동아일보 1922년 11월 26일자에 기록된 경성지방법원에서의 판결은 원고 패소였다. 또한 일제는 1931년에 이르러서는 현 사직공원에서 사직터널에 이르기까지 있었을 도정궁 터를 200여 필지로 분할하였고, 결국 도정궁 터는 주택가로 변모하였다. 선조의 7남 인성군의 10대손으로 국회의장을 지낸 바 있는 운경 이재형은 도정궁 터 중 본채에 해당하는 곳을 사들였고, 건물 일부를 복원하였다. 이후 이는 운경기념관에 기증되었다.

그런데 이 건물의 명칭이 앞서도 언급했듯이 도정궁 경원당이다. 도정궁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했지만 경원당은 왜 붙여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정궁은 덕흥대원군 봉사손이 덕흥대원군 저택에 살면서 그 사당에 제사를 올림으로써 유지되었던 건물군이었다. 최근 발견된 1900년 초 도정궁 사진 모습을 보면 그 규모가 굉장함이 느껴진다.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자락이 한 눈에 보인다 할 정도로 왕기가 서린 터라고도 이르는 것을 보면 명당 중 명당에 해당하였던 듯하다. 때문에 실제로도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이 명종의 후사로 즉위하기에 이르렀고, 선조 이후의 왕실혈통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경원당 건물은 그 부속 건물로 지어졌다 여겨지는데, 아마도 1913년 화재 이후 지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경원당의 명칭은 경원군(慶原君) 이하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하전은 헌종 사후 뒤를 이을 왕재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안동 김씨세력의 반대로 무산되고 철종이 즉위하면서 이하전은 안동 김씨의 감시 속에 있다가 김순성(金順性)과 이긍선(李兢善) 등이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무고로 인해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그러한 그를 다시 신원한 것은 흥선대원군이었다.
1864년 7월 고종은 이하전의 관작을 회복시켰고, 1908년 융희 2년에 순종은 이하전으로 하여금 덕흥대원군의 적장손 자격으로서 경원군(慶原君)의 작위를 이어받게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경원당은 경원군 이하전의 군호(君號)에서 유래된 당호(堂號)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도정궁 경원당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담고 있으며, 그 역사만큼이나 기구하게 현재 건국대학교 내로 옮겨졌던 것이 확인된다. 본래의 도정궁 본채가 있던 곳에는 현재 운경재단 운경기념관에 선조가 독서를 하였던 것으로 알려진 긍구당(肯構堂)이 복원되었다. 물론 현재 건국대학교에 있는 경원당을 토대로 일부 건물도 복원되어 있기도 하다. 그나마 이렇게 기구한 역사를 담은 경원당이 건국대 내에 자리잡음으로써 덕흥대원군으로부터 시작된 조선왕실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데 대해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글머리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사직동 쪽에서 가져온 것이 아닌 광진구에 있었던 궁궐이 있다. 바로 낙천정 이궁이 그것이다. 현재 낙천정이 본래 있었던 곳과 낙천정 이궁이 있었던 곳은 본격적으로 확인해봐야 하지만 광진구에 조선의 2대 정종, 3대 태종, 4대 세종이 함께 모여 낙천의 즐거움을 누렸던 '하늘이 만든[天作]' 명승지에 세운 낙천정과 태종이 머물렀던 낙천정 이궁터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도정궁 경원당이 이제는 광진구의 대표적 고건축물로 소개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지위면으로나 역사적 의의면으로나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는 낙천정과 그 이궁을 본격 조명하여 광진구의 대표적 역사유적지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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