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기고) 4·19혁명 60주년을 1년 앞두고
(독자 기고) 4·19혁명 60주년을 1년 앞두고
  • 성광일보
  • 승인 2019.04.1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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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보훈청 보상과 장은순
서울지방보훈청 보상과 장은순

엘리어트가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표현한 것은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싹들이 황무지처럼 황폐한 죽은 땅을 뚫고 움트기 위해서 온갖 역경과 고통을 겪어야만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잔인한 4월의 의미가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너무나도 잘 투영되고 있으니 올해로 59주년을 맞은 4·19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민중의 힘으로 정권을 타도하는데 성공한 4·19혁명은 민주당 후보의 유세를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 1960년 2월28일 대구에서 내려진 등교령에 분노한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살리자” 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전국으로 확산되던 민주화 물결은 3·15 부정선거와 이를 규탄하던 시위 도중 실종된 김주열 군의 시신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바다에서 발견되면서 증폭되었다. 4월18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 후 귀교하던 고려대생들이 정치깡패의 습격을 받아 수십 명이 부상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전 대학생들의 총궐기로 이어져 ‘피의 화요일’로 불린 4월19일, 대학생과 중·고교 학생 및 10만 여명의 서울시민이 시위에 참가해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독재타도를 외쳤다.

결국 4월21일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내각이 물러났고, 4월 26일 오후 2시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6·25전쟁 여파로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입었고, 남북 분단은 기정사실이 되었으며, 사회·경제적 미성숙으로 인한 혼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듯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주화를 이룩하고자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은 황무지에서 온갖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겪어내야 했던 혹독한 과정이요 민주주의의 싹을 피우게 된 밑거름이었다.

올해는 4·19혁명이 일어난 지 59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극복하여 광복을 맞이하였고,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룩하였으며, 이제는 그간 이룩한 평화와 번영을 항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중요한 시기에 직면해 있다.

4·19혁명 60주년을 한 해 앞둔 지금, 세계 3대 혁명에 비견될만한 4·19혁명의 정신을 기반으로 우리는 국민통합, 더 나아가서는 평화통일이라는 싹을 피워내기 위해 실질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4·19혁명으로 발아된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온 국민이 하나 되어 59년 전 이루고자 염원했던 미래가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로 귀결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새로운 시대적 사명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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