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대디의 짐을 나눠 지는 적십자
싱글 대디의 짐을 나눠 지는 적십자
  • 성광일보
  • 승인 2019.04.17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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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를 가진 두 아이를 홀로 돌보는 아버지
- 적십자, 삼양그룹의 후원으로 매주 밑반찬 전달
혁규씨의 소중한 아이들
혁규씨의 소중한 아이들

리모콘을 들어 TV를 끈 혁규 씨(만 46세/가명)는 손에 들고 있던 리모콘을 TV 옆 선반에 줄을 맞춰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책을 주워 리모콘 옆에 꽂았다. 지적장애 1급인 큰 아들 진이(만 10세/가명)가 보면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혁규 씨의 집에서는 모든 물건을 제 자리에 둬야 한다.

‣아픈 두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아버지

체육대학을 졸업한 혁규 씨는 직접 운동을 하는 것 보다 가르치는 쪽에 재능이 있었다. 골프 강사로 일하던 혁규 씨에게 선배가 중국에서 골프 개인레슨을 하기를 권했다. 중국에서 시작한 개인레슨이 인기를 끌면서 혁규 씨는 관련 사업을 시작했고,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그 사이 혁규 씨는 중국인 아내를 만나 아들 진이와 딸 다미(만 8세/가명)도 얻었다.

사업이 바빠 오랜만에 유치원에 아이들을 데리러 갔던 어느 날, 유치원에서 한 학부모가 혁규 씨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굉장히 조심스럽게 우리 애들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기를 권하더라고요. 많이 망설였는데, 같은 부모로서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고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은 엄마에게 맡겨두고 신경을 많이 못 썼어요. 그래서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더라고요.” 그 길로 유치원에 아이들의 평소 모습에 대해 상담했지만, 아무 문제도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상하게 생각하던 때 유치원의 보조교사가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 보라고 권했다. “그 당시에 굉장히 고가의 유치원을 보내고 있었어요. 알고 보니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면 치료를 위해서 더 이상 유치원에 다니지 않을까봐 말을 해주지 않았던 거였어요. 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병원 검사 결과 아들 진이는 지적장애 1급, 딸 다미는 자폐 2급이라고 했다. “사업에 매달리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것을 후회하고, 반성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춰 생활을 바꿔갔죠.” 그러나 가정에 집중하게 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아내가 아이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집안일을 도와주시던 가사도우미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아내가 아이들을 집에 두고 매번 외출을 해서 본인이 가사 일을 하면서 아이들까지 돌보기가 힘들다고요. 결국 이 문제로 이혼을 하고 아이들은 제가 키우게 됐어요.”

▢ 세 식구의 생활에 익숙해졌을 무렵 이번에는 한국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혁규 씨는 중국의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 뒤 혁규 씨는 두 아이를 돌보고, 아프신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는데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새벽에 5시쯤 어머니 병원에 가서 돌봐드리고, 집으로 와서 아이들 챙겨 학교 보내고 다시 병원으로 갔어요. 그리고 아이들 하교할 시간에 맞춰 학교에 데리러 갔다가 저녁 먹이고 또 병원으로 가는 생활이었죠.” 그렇게 2년을 넘게 생활하자 우울증이 찾아왔다. “우울증인건 알았지만, 저는 아플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아프면 우리 아이들은 누가 돌보겠어요. 잠자는 시간을 쪼개 지인들을 만나며 그 시간을 견뎌냈어요.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투병 끝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혁규 씨는 앞으로의 삶을 고민해야 했다. “중국에서 벌었던 돈은 2년 반 동안 생활비, 병원비로 모두 사용했고, 다시 일을 시작하자니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어요. 더군다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니까요.” 기초생활수급비 109만 원과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장애연금 40만 원이 세 가족의 한 달 생활비였다. 아이들의 치료비로 60만 원을 빼고 나면 월세와 생활비로는 항상 모자랐다. “낮에는 시간이 없으니 밤에 대리운전을 했었는데, 어느 날 집에 들어왔더니 집이 엉망이 되어있더라고요. 자고 있던 진이가 깨서 아빠가 없으니 불안증세가 나타났던거죠. 그 날로 대리운전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 무거운 짐을 덜어 주는 적십자와 이웃들

혁규 씨는 현재 국가 장학금으로 인천대학교에서 운동건강학을 공부하고 있다.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졸업하게 되면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위한 활동보조사로 일할 수 있다고 한다. “활동보조사는 일정 조절이 비교적 자유로워요. 아이들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이고, 제 적성을 살릴 수 있어서 선택하게 됐어요.”

혁규 씨가 아이들을 돌보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도움 덕분이었다. 혁규 씨 혼자 두 아이의 부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한 이웃이 적십자 희망풍차 결연에 대해 소개해줬다. “이웃분의 지인이 적십자 봉사원으로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다고 하시면서 희망풍차 결연에 대해 설명해 주셨어요. 괜찮으면 이야기를 한 번 해보시겠다고요. 그래서 부탁을 드렸고, 필요한 절차를 거쳐 희망풍차 결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 적십자와 희망풍차 결연을 맺은 후 혁규 씨네 집에는 주기적으로 대한적십자사봉사회 동작지구협의회 봉사원들이 방문한다. 봉사원들은 삼양그룹의 후원을 받아 매주 한 번 적십자 맛나눔터에서 직접 밑반찬을 만들어 혁규 씨에게 전달하고 있다. “아이들 챙기고, 집안일 하려니 사실 힘에 부쳐요. 그래서 밑반찬 만들어 가져다주시는 게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봉사원님들이 직접 만드셔서 믿고 먹을 수 있고요. 아이들도 맛있어 해서 매번 기다립니다.”

주변 지인들도 혁규 씨를 도와주고 있다. “SH임대주택 입주자로 선정되었는데 입주까지 더 기다려야 해요. 다행히 그 동안 지내라며 지인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무료로 빌려주셨어요. 덕분에 생활비 걱정을 덜고 대학교 편입이라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죠.”

앞으로 자신의 인생 모든 계획은 아이들에게 맞춰 나갈 예정이라는 혁규 씨. “2021년 2월에 졸업 예정이에요. 나이가 많아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보다 두 배, 세 배 노력해야 하지만, 아이들을 돌보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들어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를 도와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시다는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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