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퍼스와 하이데거
야스퍼스와 하이데거
  • 김광부 기자
  • 승인 2019.05.21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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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고전13:6) 2019.05.21

(2019.4.27 홍도) 사진: 김광부 기자
(2019.4.27 홍도) 사진: 김광부 기자

“야스퍼스는 대전이 끝난 후, 하이데거와는 달리 독일에서 영웅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양심선언을 한다.  그는 독일인들을 향하여 말하길, 우리 모두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커다란 죄책을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유대인 친구들이 줄줄이 끌려나갈 때 또 나치가 독일을 완전히 파멸시킬 때까지 대부분의 독일인이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음을 통탄했다.”

이순성 저(著) 《오늘을 읽는 철학》 (마리서점, 2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독일의 칼 야스퍼스는 법학과 의학까지 전공을 한 정신의학 의사였습니다.  건강이 악화되어 의사직을 포기하고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1921년에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철학과 교수가 되었고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의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대학에서 해직되었습니다.  그는 나치 정권에 영합하지 않는 소신 있는 연구와 학설을 제시한 유대인 동료 학자들을 변호했습니다.  또한 그의 아내 게르투르트가 유대인이었습니다.  

나치는 야스퍼스에게 유대인 부인과 이혼하면 교수직을 계속 허용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독일을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야스퍼스는 교수직을 내려놓고 부인과 함께 스위스로 망명을 결심하는 실존적 결단을 내렸습니다.

동료인 하이데거는 나치에 협력하여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이 되었습니다.  나치 완장까지 팔에 둘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해서 야스퍼스와 하이데거의 우정은 단절됩니다.  야스퍼스는 이 고난의 시기에 1,2 ,3 권으로 나누어진 자신의 대표작 《철학》을 집필합니다.

야스퍼스는 전쟁 후 독일과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말처럼 사는 사람,  자신의 시처럼 사는 시인,  자신의 설교처럼 사는 목사는 아름답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17)

 

한재욱 목사
강남 비전교회
서울시 강남구 삼성2동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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