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 안개
<최은하>
날이 훤히 든 *진포리 하오의 반공엔
솔개 하나 맴을 돈다.
비기는 구름 저 편에서
거의 날마다 까마득히
높이 떠 무얼 지키는 것이겠지
한가롭지만은 않다.
어쩌다가 잘못 날아든
한 마리 나비는 아직도
무우 배추나 미나리 밭을 기억해 찾는 걸까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곳곳엔
말뚝이 박혔던 자리
별이지 않은 삼김이 어디 있는가.
별들은 갖가지 제 운행과 반짝임으로 사위어가고
그런 날이면 조석으로 자욱한 안개가 돌아내려
지척을 헤아릴 수가 없구나.
매어 사는 발길로
떠나지 못하는 왕십리
휘젓는 목에 물음만 첩첩 막히고 쌓여
누군가, 무언가를 짚어 지내느라 숨이 가쁘다
<※진포리 : 지금의 왕십리 기차역 앞마을의 옛이름>
∎ 최은하 poetchoiii@hanmail.net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 1959년《自由文學》시 추천(金珖燮 선생) 등단.
경희문학상, 한국현대시인상, 한국문학상, 기독교문화대상, 한림문학상 성동문학상 등 다수 수상. 한국현대시인 협회, 한국기독교문인 협회, 성동문인 협회 회장 역임.
현재 (사)한국문인협회 고문, (사)한국현대시인 협회 고문(평의원), (사)국제 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기독교문인협회 고문(평의원), 성동문인협회 고문, 계간〈믿음〉발행인.
시집《너와의 최후를 위하여》《최은하 시전집》(1999) 증보판《최은하 시전집》(2014) 등 20권. 수필집《그래도 마저 못한 말 한마디》《바람은 울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