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과 풍수(118) 동양오술 (배달국9)
동양학과 풍수(118) 동양오술 (배달국9)
  • 성광일보
  • 승인 2019.08.1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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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老泉)김흥국
광진투데이 편집위원장
삼오지리학회장역임
현재 한국현공풍수학회장
신화씨엠씨(주)대표
김흥국
김흥국

오늘은 치우천황의 자취를 찾아 중국대륙을 벗어나 한반도에서의 근거를 찾아보자. 우리는 동이족의 후손으로 배달국의 14대 자오지환웅인 치우천황의 직계자손이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기록과 그림에는 친우천황을 상징하는 모티브가 곳곳에 등장한다.

지금의 뚝섬유원지 전철역의 뚝섬이란 명칭은 본래 치우천황의 둑기를 모시는 사당으로, 일 년에 2차례 치우제를 모시는 행사에서 비롯한 명칭이다.
이제 당대의 그림을 하나하나 보면서 둑기에 대해 이해해 보자.

지난 호에 우리는 정조대왕의 행차도를 보았다. 오늘은 행차도의 둑기만 확대해 보자. 그림①에 보인 둑기와 기효신서③에 있는 둑기의 그림이 머리 부분이 틀린 걸 알 수 있다. 그럼 같은 후손의 일족으로 몽골의 둑기②를 보자 우리의 둑기와 구별이 안 되게 똑 같이 생겼지만 이들은 징키스칸의 전승기라고 부르며 그들의 말로는 '여순 훌트 이흐 차간 토그(Есoн хeлт Их цагаан туг)'로 전쟁의 승리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그림은 몽골 국회의사당 입구에 게시되어 신성하게 모셔져있다.

그림은 ①②는 정조대왕시대의 둑기 그림과 몽골의 둑기의 비교그림이다. 삼지창의 형태가 같은 모양새이다.
그림 ①②와 같이 본래의 둑기 머리 부분은 삼지창으로 디자인 되어 있다. 하지만 그림 ③은 지난시간에 본 중국인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의 책자그림과 현재 뚝섬유원지의 세종오례의 독에 그려진 둑기의 그림이다. 이상하게 둑기의 머리 부분인 영두(纓頭)가 삼지창이 아니다.

하지만 정조대왕의 훨씬 이전의 숙종대왕 시절, 일본에 보낸 조선통신사의 둑기④는 그림 ①의 행차도와 같은 삼지창이다.

필자의 생각으로 둑기는 치우천황의 상징이며 둑기의 끝이 삼지창인가? 아님 그냥 일자 형태인가는 치우천황을 상징하는 의미에 훼손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숙종대왕④이나 정조대왕 때의 그림②에는 모두 삼지창이었으며 심지어 몽골의 둑기②에도 삼지창이 있는데 어떻게 조선의 말기에 와서 삼지창의 강력한 살성이 봉오리 같은 일지로 바뀌었는지 우리는 이 부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그림③④번 속의 한자는 독纛자로 깃발의 머리 부분을 뜻하지만 치우천황의 둑기纛旗를 말할 때는 둑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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