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행하고 동시에 공의도 행할 수 있을까?
사랑도 행하고 동시에 공의도 행할 수 있을까?
  • 김광부 기자
  • 승인 2019.09.02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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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고전13:6)2019.08.30

(2019.8.24(토) 삼척 용굴 촛대바위) 사진: 김광부 기자.
(2019.8.24(토) 삼척 용굴 촛대바위) 사진: 김광부 기자.

“어떤 왕이 새로운 법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그 범법자는 누구든지 벌로 두 눈을 빼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던 어느날 부하들이 범법자를 체포 해왔다.  그는 다름이 아닌 그의 아들이었다.  왕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의 죄를 묵인하자니 국민들 앞에 명분이 서질 않을 것이요 아들의 두 눈을 뽑자니 아버지로서 차마 못할 짓이었다.  고민을 하던 왕은 결국 아들의 눈 한쪽과 자신의 눈 한쪽을 뽑았다고 한다.”

이의용 저(著) 《고독이라는 교만》 (대림기획, 12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그렇게 해서 왕은 스스로 법도 지켰고,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공의와 사랑을 다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서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그 징벌의 절반은 나에게 집행하고 나머지 절반은 죄인에게 집행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두 눈을 다 빼주셨습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죽어야 할 십자가에 자신이 달리셔서 우리 대신에 죄를 치루셨습니다.

“나의 두 눈을 뽑아내라.  나를 십자가에 달아서 못을 박아 죽이라. 내가 그 모든 죄를 감당하겠다.  그리고 죄인에게는 자유를 주노라.”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하나님의 속성을 대표하는 두 기둥입니다.

불완전한 우리 인간에게 그 사랑과 공의의 조화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모릅니다. 공의를 생각하다보면 사랑을 놓치고,사랑을 생각하면 공의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ㄴ다. 사랑을 결여한 공의는 무자비한 폭력이 될 수 있고,

공의를 상실한 사랑은 무책임한 방치가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하나님의 기막힌 지혜와 은혜였습니다.  죄인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는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2:16)

 

한재욱 목사
강남 비전교회
서울시 강남구 삼성2동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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