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갑장 나리(1)
<단편소설> 갑장 나리(1)
  • 이기성 기자
  • 승인 2019.10.0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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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문학저널 문인회 소설분과 위원장 /·(사)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 ·(사)한국문인협회 이사
김영한 / 문학저널 문인회 소설분과 위원장/(사)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사)한국문인협회 이사
김영한 / 문학저널 문인회 소설분과 위원장/(사)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사)한국문인협회 이사

구월 중순이면 조석으로 서늘할 때도 됐건만 지구온난화 현상 탓인지 노염의 기승이 대단했다. 팬티 바람으로 선풍기를 강하게 틀어놨으나 후텁지근한 바람만 밀려왔다. 
책상 대용으로 쓰는 교자상에 진종일 붙어 앉아 원고를 쓴답시고 진땀을 빼는데, 진동으로 설정된 핸드폰이 뒤집힌 풍뎅이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덜덜거리는 진동을 무시하자, 이번엔 TV 수상기 옆에 있는 일반전화기가 방정을 떨었다. 막혔던 글이 이제 좀 풀리는가 싶은데 전화벨이 울리니 가시에 찔린 것처럼 신경이 곤두섰다.

“여보, 빨리 전화 좀 받아 봐!”
일반전화를 잘 쓰지 않는 나는 집안 어딘가에 있을 아내에게 소리쳤다.
“샤워중이니까 당신이 좀 받아요.”
욕실에서 아내의 짜증이 날아왔다.
“빨리 전화 안 받고 뭐 하냐?”
수화기를 드는 순간, 상대의 음성이 날카로웠다.
“누, 구, 시더라?”
나의 조심스러운 반문이 도무지 어이없다는 듯, 상대의 짜증이 거칠었다.
“너, 정말 모르는 척 시침 뗄래?”“글쎄, 음성만 듣곤…?”
생소한 음성이 장난질인가 싶어 당장 호통을 칠까 하다가 꾹 참았다.
“오냐, 나 갑장인데….”
“아, 갑장 어르신?”
나는 그제야 상대를 알고 반겼다.
“전화하면 왜 안 받고 빚에 몰린 놈처럼 살살 피해?”
“무슨 소리야? 듣는 이 첨인데.”
그가 몇 번 전화했었다는 말을 아내에게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걸 시인하다가는 구차하게 변명해야 할 것이 귀찮아 아예 시침을 떼어버렸다.
“야, 나와라. 한 잔 꺾자.”
다짜고짜로 나오는 그의 음성엔 벌써 취기가 질퍽하게 배어있었다.
“벌써 꼭지가 돌았구먼, 뭘 그래?”
“잔말말구 빨리 나와!”
갑장은 막무가내였다.
“거기가 어딘데? 뭐, 잠실?”
그가 있다는 술집의 시끌벅적한 소음이 고스란히 수화기로 옮겨졌다.
“혼자야?”
“나오라면 냉큼 나올 것이지 무슨 잔소리가 많아?”
종일 더위에 시달린 터라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했지만 아홉 시가 넘어 잠실까지 간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듯싶어 엉뚱한 말로 뜸을 들였다.
“어떤 자린지 알아야 가든 말든….”
“취한 놈 뒤치다꺼리가 귀찮다 이거지?”
“아는 걸 보니 아직은 덜 취했군.”
“나 친구 많아. 너 아녀도 부르는 즉시 달려올 놈들이 수두룩하다구.”
갑장이 혀 꼬인 소리로 횡설수설했다.
“친구도 친구 나름이지. 취한 놈한테 공술이나 얻어먹는 놈들이 수두룩함 뭘 해? 하나라도 나처럼 눈알이 제대로 박혀야지.”
“오냐. 너, 말 한번 건방져서 좋다. 내 친구 될 꺽, 자격이 충분 꺽!”
갑장이 딸꾹질을 계속했다.
“취했으니까 그만 집에 들어가. 마누라 속 썩히지 말고.”
취한 갑장과 입씨름하기가 싫었다.
“그래. 나, 취했다. 꺽! 그래서 귀찮다, 이거지 꺽!?”
“몸도 안 존 사람이 술독에서 허우적대니까 하는 말이야.”
병명은 모르지만 그가 석 달 전에 대수술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냉큼 달려와서 건져줘야 될 꺽, 아니야 인마, 꺽!”
갑장의 말투가 갈수록 거칠어졌다.
“가만, 네 집이 어디야? 당장 쳐들어갈 테니까.”
이 시간에 잠실까지 갈 일이 까마득했던 나는 옳다구나, 싶어 얼른 우리 아파트와 근처의 전철역을 자세히 가르쳐주었다.
“알았으니까, 꼼짝 말고 기다려.”
취한 사람이 늦은 시간에 전철을 두 번씩 갈아탄다는 게 쉽지 않을 터라, 내가 가던지 아니면 택시를 타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택시비나 두둑이 갖고 나와.”
나는 전화를 끊고 그가 올만한 장소로 나가면서도 꼭 오리라곤 믿지 않았다. 아니, 택시를 탄 김에 바로 그의 집으로 가길 바랐다.

갑장을 처음 만난 건 칠월 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달포 전, 더위가 한창일 때 아내가 뜬금없이 피서 이야기를 꺼냈다. 여고 동창 하나가 지인들과 부부동반으로 피서를 가는데 우리도 묻어가자는 것이었다. 아내와 피서를 갔던 기억이 까마득한 나는 사실 여름만 되면 빚진 죄인처럼 주눅이 들던 터라 은근히 귀가 솔깃했다. 그러나 낯가림이 심한 데다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별난 성격으로 선뜻 대답을 못 했더니 이튿날 아내가 덜컥 예약을 했다는 것이었다. 3박4일의 경비가 1인당 십육만 원이면 실속이야 어떤지 모르지만 결코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었다.
아내와 나는 새벽부터 서둘러 약속장소에 대기한 관광버스에 탔다. 먼저 온 사람이 많아 중간에 앉았다. 버스가 도시의 어둑한 변두리를 돌아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남자처럼 바짝 쳐올린 오십 대 초반의 여인이 마이크를 들고 통로 중간에 버티고 섰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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