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마음 한번 바꾸니
<수필> 마음 한번 바꾸니
  • 신향금 기자
  • 승인 2019.10.10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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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순
·수필가
·광진문인협회 명예회장
·에세이문학작가회 부회장
·(사)해외동포책보내기운동협의회 이사
·이지출판사 대표
·저서 《갈망의 노래》《Colors of Arirang》외

 

콩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여섯 달이 되었다. 처음 왔을 때 6개월이라 했으니 곧 돌이 되는 셈이다. 그동안 병치레 한 번 없이 잘 자라 제법 똘똘해졌다. 말귀도 잘 알아듣고, 식구들의 발자국 소리가 나면 현관으로 달려와 자지러질듯반가워한다. 그뿐이랴.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를 들이밀며 아양을 떠니 피곤하고 언짢은 일이 있어도 금세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니까 여섯 달 전, 이 녀석을 데려오기 위해 아들아이가 애원하다시피 했다. 친구 집에 사정이 생겨 보호소로 가야 하는 녀석을 덜컥 자기가 맡겠다고 하곤 며칠을 두고 졸라댔다. 딱 한 번만 보고 얘기하자고.

나는 절대로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전에도 몇 차례 이런 일로 실랑이를 한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안 되는 이유를 들이대었다. 그런데도 기회만 있으면 얘기를 꺼내더니 이번에는 너무나 간곡하게 부탁하면서, 나중에는“엄마는 인정이 없다”고 비난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이 마음에 걸려 며칠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밤, 아이가 지금 콩이를 데리고 간다고 전화를 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 엄마가 양보하라고. 당황스러웠다. 아직 녀석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는데, 먹일 것도 잠재울 곳도 없고, 또 녀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한 번도 경험이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났다. 언젠가 두 분이 말다툼을 하셨는데, 그 이유가 오늘 우리 집 상황과 똑같았다. 데리고 오겠다는 아버지와 절대로 안 된다는 어머니. 결국 어머니가 판정승을 거둬,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 녀석들과 동거를 해본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편견을 곧이곧대로 믿어 이 녀석들에 대해 일종의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당장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데리고 온 녀석을 내칠 수도 없고 어쩐담. 내가 마음을 바꾸는 수밖에.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콩이를 본 순간 그 이유 없는 편견과 거부감이 싹 지워져 버렸다. 작은 주먹만 한 얼굴에 까만 눈과 코가 무척 귀여웠다. 그리고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신기했다. 병아리도 안지 못하던 나는 아들아이의 품에 안겨 있는 녀석을 덥석 받아 안았다. 마치 멀리 보냈는데 되돌아온 것처럼 미안하고 마음이 짠했다. 녀석도 가만히 안겨 있었다. 이제 제 집을 찾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콩이와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게 되었고, 그 후 우리 집에 커다란 변화가 왔다. 식구라야 셋이 살면서도 일요일 아침 식탁에서야 얼굴을 보곤 했는데, 이젠 콩이 안부를 묻는 전화를 자주 하게 되었으니 대화의 물꼬가 트인 셈이다. 아들아이도 공부에 대한 부담감을 콩이에게 털어놓으며 위안을 받는 듯하고, 아이 아빠도 콩이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아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마음 한번 바꾸니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다정이 지나쳐 병이 되었다. 콩이가 식구들만 보면 반가운 나머지 아무 데나 실례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민망한 장면이 벌어져 동물병원에 가서 상담을 했더니 중성수술을 해 주라는 거였다. 하지만 못할 짓인 것 같아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다. 대신 적당히 못 본 척하며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 생리현상을 조절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잘 안 되었다. 식구들과 눈을 마주치려고 갖은 애를 쓰는 녀석을 외면하지 못해 전혀 효과가 없었다. 결국, 나중에 전립선 때문에 고생을 할 수도 있다는 의사 말을 핑계 삼아 수술을 했다. 하지만 수술자국에 붙여 놓은 반창고를 핥아대는 녀석이 안쓰러워서 한동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런 나를 콩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귀찮다고, 보기 민망하다고 그렇게 해놓고 자꾸 배를 쓰다듬으며 측은해하는 내게 얼마나 서운할까? 이 녀석들은 두 살배기의 지능을 갖고 있다고 하니 느끼고 표현할 수도 있으련만, 변덕스런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 너그럽게 봐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여러 동물 중에서 녀석들은 인간에게 가장 특별한 반려자로 존재해 오고 있다. 우리는 이 특별한 녀석들에게 이름을 붙이곤 하는데, 그것은 서로의 관계를 인정하는 친구로 받아들인다는 뜻일 것이다. 콩일 보고 있으면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 부분이 금발이라 까만 눈동자가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 '까만 콩'이 톡 튀어오를 것만 같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제 집 앞에 꼭 내 신발을 갖고 놓곤 한다. 제 영역에 왜 내 신발을 갖다 놓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 집의 실세(?)임을 아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내가 자식같이 여기는 것을 알고 친밀감을 표현하는 것은 아닌지.

나는 콩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인간의 특별한 반려자로 존재해 온 녀석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제 녀석의 표정과 행동을 보면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 같다. 가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녀석에게 “너 지금 무슨 생각하니?”하고 묻는다. 그러면 대답을 하듯 머리를 들이민다. 복종과 애정의 표현이란다. 녀석, 영리하기도 하지. 녀석들이 자기와 삶을 공유하고 있는 두 다리 달린 인간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답은 우리가 녀석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출근하는 나를 배웅하듯 꼬리를 흔들어 주는 콩이를 보며 녀석들을 경이로운 짐승, 지성적인 동물이라 표현한 디오니게스가 생각나 피식 웃는다. 시닉스(개)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녀석들을 사랑한 그를 흉내 낼 수는 없지만, 내 삶에 새로운 변화를 준 콩이와 인연이 다하는 날까지 잘 지내고 싶다.

 

서용순

·수필가
·광진문인협회 명예회장
·에세이문학작가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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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갈망의 노래》《Colors of Arirang》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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