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링거 맞는 은행나무
<수필> 링거 맞는 은행나무
  • 이기성 기자
  • 승인 2019.10.10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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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학 용/수필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최 학 용/수필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최 학 용/수필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우리 아파트 단지에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아파트 단지를 재개발 할 때 이 나무를 보존한 게 아주 잘한 일이라 여겨진다. 시간만 나면 은행나무 아래에 가서 몇 바퀴 돌며 기를 받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고령의 나무를 우리가 가지고 관리함이 자랑스럽다.

지난 해에는 주민 축제로 “은행나무 축제”라 칭하고 주민들이 모여 쪽지에 마음의 소원을 써서 나무 밑에 매어 놓은 줄에 걸어놓는 행사를 했었다. 입주 후 처음 가진 주민 친목 행사라 했다. 아이들이 재미있어 했던 뜻 있는 행사였다. 어디 가나 새싹, 즉 아이들이 많은 곳이 특히 활기 넘치는 곳이 아닌가!

열매는 안 열리는 은행나무라 했다. 이 동네 토박이 86세 할머니의 말씀이다. 암컷 나무가 아닌 셈이다. 그래서 심한 가뭄에도 씩씩하게 버티고 지탱하는지도 모르겠다. 남성상을 보여주듯 우뚝 선 모습이 거대한 장군 같기도 하고, 주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차원의 나무인 것 같다. 서 있는 자리도 명당이다. 적당한 높이의 땅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그늘엔 운동 기구도 있고 어린이 놀이터도 있다. 아이들이 놀며 나무의 웅장함에서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자랄 것 같다. 그래서 고마운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름 심한 가뭄 때 은행나무도 극심한 수분 고갈 상태였는지 링거주사를 맞고 있었다. 주사는 잘 들어가고 있는지? 그 후 달라진 점은 있는지? 자주 가서 살피며 신경이 쓰였다. 영양을 잘 받아 늘 푸름을 자랑하고 가을엔 풍성한 노란 단풍으로 빛나기를 빌어본다.

뿌리 부분에는 커다란 웅덩이가 파여 있다. 빗물이 고이게 하려는 방법일 거다. 그리고 땅속에 묻힌 넓은 원통의 파이프는 때에 따라 물을 공급해주는 관으로 보인다. 성동구청에서 이 은행나무 관리에 많은 신경을 씀에 감사한다.

오래된 나무 원기둥엔 시멘트로 땜질한 흔적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높은 가지엔 가지끼리 서로 의지하도록 철근 굵기의 철사로 매어놓았다.
사람도 늙으면 병들고, 고치며 사는 이치와 다를 바가 없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삶과 무엇이 다르랴!
그래도 굳이 다르다면 나무이기에 이렇게 400년이나 동네를 지킬 수 있는 게 아닌지? 400년, 길다면 길지만 순간일 수도 있겠다.

이번 여름 피서지에서 용문산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를 다시 보고 왔다. 수령에서부터 우리 동네 은행나무와는 비교가 안 되는 웅장한 나무다. 수령 1100년.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정해진 은행나무다. 동양 최대의 용문사 은행나무에 얽힌 얘기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장자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 고도 전해지고, 신라의 고승 의상 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이 지팡이가 뿌리를 내려 성장 한 것이라는 설도 전해진다.

이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전란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나무라 하여 천왕목이라고도 불렸고, 조선 세종 때 정 3품 이상 해당하는 벼슬인 단상 직첩을 하사받았다.
정미 년 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절을 불 태웠으나 이 나무만 화를 면 했으며, 이 나무를 어떤 사람이 자르려 톱을 대는 순간 피가 쏟아지고, 하늘에서 천둥이 요란 했고,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에는 이 나무가 소리를 내어 그것을 알렸으며, 조선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고 한다.

가까이 가보니 은행이 가지가 쳐질 정도로 많이 달려있었다. 1100년이나 된 은행나무에 이렇게 많은 열매가 맺히다니, 그것도 매년 여덟 가마니씩이나 열매를 수확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사람으로 치면 몇 세까지 자손을 번성시킨다는 말일까? 답이 나오질 않는 일이다.

용문사의 1100년 된 은행나무는 그 고을은 물론 우리나라를 지키는 나무이고, 우리 단지의 은행나무는 400년의 고령을 자랑삼아 주민들을 잘 지키는 모두의 기를 살리는 건강한 나무이기를 빌어본다.
우리 마을 은행나무 옆에 이런 표지판이 서 있다.

<보호 수>
고유번호 : 서 4ㅡ4
수종: 은행나무
지정일자: 1982. 10. 30.
수령: 400년 (지정일 기준)
수고: 17미터
나무둘레: 425센티미터
소재지: 성동구 왕십리동 72외 2필지
관리자: 성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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