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의 빈방
(수필) 나의 빈방
  • 신향금 기자
  • 승인 2019.10.23 2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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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춘윤
안춘윤
안춘윤

며칠 전 지인이 교통사고로 외아들을 잃었다. 스물여섯 살, 젊은 나이. 그녀는 울지 않았다. 아니 울지도 못했다. 구석에 쪼그리고 마냥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 신음소리를 토해내곤 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에서 울려나오는 그 소리는 깊은 동굴 속에서 울부짖듯 우리들의 가슴을 찢었다. 육신에서 혼이 빠져나간 듯 무너지고 있었다.

순간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하나도 아니고 어린 자식 넷을 세상에 남겨두고 가야했던 엄마도 언젠가부터 울지 않았다. 말도 없었다. 가끔씩 그렇게 신음처럼 토해내던 숨소리만 들렸다.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기만 하던 엄마, 아줌마들이 수군거렸다.

“아이구 정 떼려나 보네!”
몇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선명하게 생각나는 그날의 기억. 그 마지막 기억이 엄마를 생각하는 시작점이 되어 종종 나를 서성이게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소란스러웠던 쉬는 시간,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만화책에 코를 박고 있던 나는 느닷없이 찾아온 정적이 이상해서 고개를 들었다. 교감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이 나를 보고 있었다. 책상위에 올라섰던 아이들도, 짝꿍과 장난치던 아이들도, 싸우던 아이들도 정지화면처럼 멈추었다.

“집에 얼른 가봐라”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순간 선생님의 눈가가 약간 붉어졌다고 생각했다.

열한살 어린마음에도 무언가 툭 떨어지는 것처럼 가슴이 내려앉았다. 가방을 들고 나왔다. 수업시작종이 울린 운동장은 텅 비어있었다. 가방을 질질 끌며 터벅터벅 걸었다. 발끝에 매달린 긴 그림자가 걸음을 자꾸 붙잡았다.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다리가 점점 무거워지면서 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집에 가기가 싫었다.

언덕위에 있는 학교에서 집으로 가려면 골목을 따라 내려가야 했다. 학교를 나와 나는 언덕 골목 첫 계단에 걸터앉았다. 한눈에 동네가 보였다. 빨리 가야하는데…. 마음과는 달리 한참을 계단에 앉아있었다.

엄마는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장롱을 들이고 그 당시에 드문 커다란 소파세트를 들여놓고 행복해했다. 아픈 몸에도 마당 한귀퉁이 조그만 땅에 봉숭아 채송화와 금잔화를 심고 담장가까이에 파초를 많이 심었던 엄마, 한여름 비가 내리고 나면 붉은 꽃을 감싼 넓은 연녹빛 잎사귀가 더 풍성해지고 싱그러웠다. 탐스러운 잎사귀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아 비오는 날이면 창을 활짝 열어놓고 엄마와 딸이 함께 바라보던 파초.

아침에 집을 나올 때도 엄마는 가쁜 숨을 쉬며 창밖 무성하게 자란 파초를 무심히 보고 있었다. 더 이상 병원을 가지 않게 되었을 때, 마루 넘어 꽃이 보이는 방에 엄마는 누워있었다.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파초의 초록빛이 삶에 대한 의지를 강렬하게 자극했던 것일까, 일어나서 한참씩 파초를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입가에 엷은 웃음도 보이곤 했다. 그럴때면 나는 엄마 곁에 누워 재잘거리며 오빠나 동생들 잘못을 일러바치거나 숙제를 한다고 들락거렸다.

그러다 어둠이 설핏 방한귀퉁이에 깃들고 적막해질 때, 엄마는 가끔씩 어린 나를 끌어안고 살고 싶다고 오열했다. 엄마의 외로운 절망과 어떻게해야 위로가 되는지 몰라 엄마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는 어린 딸의 외로움.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는 울음조차 토해내지 못했다.

엄마는 오랜 시간 병원과 집을 오가며 살았다. 나에게 병원은 언제나 편안한 놀이터였고 또 하나의 집이었다. 병원 의사도 간호사도 일하는 아주머니도 가족같이 지냈다. 학교에서 병원으로 가기도하고 엄마가 퇴원하면 집으로 다시 가기도했다. 엄마는 때로 항암치료를 하러 서울의 큰 병원에 한두달씩 가 있기도 했다. 그럴때면 동네아줌마들과 도우미 언니가 우리를 돌보았다. 어느 집에 가던 때가되면 밥을 먹이고 씻겨주고 학교수업까지 챙겨 주시던 동네아줌마는 우리에게 동네엄마들이었다. '삼팔따라지'라고 자조하면서 이북이 고향인 실향민들이 모여 살던 동네, 친 형제자매보다 더 깊은 정으로 맺어진 또 다른 가족이었다.

마흔 넘어 늦은 나이에 낳은 막내, 세살 막내는 그때까지도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주위의 걱정스러운 시선에도 우리 사남매는 싸우기도하고 놀기도하면서 잘 지냈다. 엄마의 오랜 투병생활로 인한 부재가 어느덧 익숙해지면서 동네엄마들의 애틋한 사랑과 눈물이 그 틈새를 채웠다.

집에 도착하니 거실은 친척이며 이웃들로 꽉 차있었다. 엄마가 있던 방에 들어가니 방바닥에 검붉은 피가 한귀퉁이에 고여 있었다. 멍하니 서있는 나를 누군가 달려와 눈을 가리며 끌어안았다. 그 다음부터 일어났던 일들은 슬로우비디오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뿌옇게 흐린 잔상으로 남았다. 동생들은 사람들이 오니 좋아서 웃으며 뛰어다녔다. 막내가 뒤뚱거리며 재롱을 피울 때 이모들은 또 오열했다. 

너무도 어린 상주들을 바라보던 사람들 속에서 깊은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계속 우리들을 끌어안고 또 끌어안기만 했다. 큰 상주인 오빠가 15살이라 집안 어른들께서 회의 끝에 종갓집 장손을 상주로 세워 장례를 진행했다. 동생들은 머리에 삼베보자기에 끈을 두르고 상복을 입은 채 뛰어놀았다. 그러다 싫증나면 칭얼거리며 엄마를 찾곤 했다.

상여는 화려하게 꽃으로 치장을 했다. 생전에 옷 한 벌 못해준 아버지의 원이었는가, 환하게 웃는 사진 속 엄마는 생의 마지막 인사를 고하며 집을 떠났다. 집둘레를 돌며 미련을 거두고, 골목을 돌아 큰길을 지나며 인연의 끈을 풀어버렸다. 그리고 철길을 따라 꽃상여 행렬이 이어졌다. 오빠는 장남답게 의젓하게 끝까지 걸어갔지만 숨이 차오르던 나는 주저앉았다. 더위에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어린 나에게 죽음은 혼자 떠나가는 엄마와 그냥 남겨지는 나와의 아득한 거리, 그리고 쓸쓸함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도 떠나고 엄마의 물건도 모두 치워버린 텅 빈방. 어두운 방에 혼자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그때부터 내 가슴 깊은 곳에도 빈방 하나가 자리 잡았다. 앞뜨락의 파초는 며칠사이 키가 훌쩍 자라고 곧게 뻗은 잎사귀는 여전히 초록으로 눈부셨다. 주인도 없이 혼자 화려하게 붉은 피를 토하듯 꽃을 피웠다. 문득 엄마가 이 세상에 정말 없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아버지는 일찍 재혼을 했다. 엄마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아이가 없는 새엄마는 우리에게 정성을 쏟았다. 긴 투병생활로 오랫동안 부재중이었던 엄마의 자리는 집에서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는 새엄마의 미소로 채워졌다.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사남매의 기억 속에서 엄마의 얼굴이 희미해져갔다. 나는 사과처럼 통통하고 붉은 뺨에 주근깨가 콧등에 가득한 웃음 많은 아이로 자랐다.

그러나 가끔씩 가슴 속 그 빈방 앞에 나는 서 있었다. 무엇이 어린 나를 방문 앞에 서성이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갈 때마다 그 방에 들어가 웅크리고 앉았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졌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서는 그리움도 외로움도 소중하다 여겨졌던 것들도 의미를 잃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을, 나는 나의 빈방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면서도 생각의 끝에 다다르면 나는 언제나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났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

◆안춘윤프로필
·행정학 박사
·광진구립도서관장 역임
·나루아트 극장장 역임
·광진문인협회 부회장
·에세이문학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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