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여우를 이긴 두더지
<수필> 여우를 이긴 두더지
  • 신향금 기자
  • 승인 2019.11.27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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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림

 

신이림
신이림

두더지들이 땅 속 마을회관에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삼일마다 우리 두더지가 한 마리씩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게.”
안경 낀 두더지가 벌떡 일어나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뚱이두더지도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상하고말고요. 이건 분명 누군가가 우리 두더지들을 납치해가는 거라고요.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래서야 어디 마음 놓고 밖에 나다니기나 하겠어요?”
뚱이두더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을회관은 장터처럼 소란해졌습니다. 저마다 의견들을 내놓으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종된 두더지만도 벌써 여섯이에요. 그 다음이 내가 아니란 보장이 어딨겠어요?”
“맞아요, 맞아.”
“무슨 대책이든 빨리 세웁시다.”
두더지들은 좀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습니다. 잠자코 듣기만 하던 이장두더지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여러분, 우리 두더지들은 공동생활을 하지 않고 혼자서 생활하다 보니 실종이 되어도 금방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서로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두더지주민들을 위해서 청년회 두더지들이 이 사건을 맡아 조사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장두더지 말이 끝나자 청년회 회원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찬성의 뜻을 밝혔습니다.
청년회에서는 실종된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보초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둘씩 짝을 짓고 순번도 정했습니다.
보초를 선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보초 당번이었던 안경두더지가 헐레벌떡 마을회관으로 달려왔습니다.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크, 큰일났어요! 같이 보초를 서던 뚱, 뚱이를 여우가 잡아갔어요!”
“여, 여우가?”
흥분한 이장두더지도 덩달아 말을 더듬으며 되물었습니다.
“그, 그렇다니까요!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안경두더지는 틀림이 없다며 앞 발톱으로 자기 눈을 툭툭 쳤습니다.
소식을 들은 두더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모두들 두려움과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었습니다. 여우로 말할 것 같으면 숲 속에서도 교활하고 사납기로 소문난 동물이었으니까요.
“그때 본 것을 자세히 말해 보게나.”
이장두더지가 턱을 쓸어 올리며 말했습니다. 긴장할 때마다 하는 버릇이었습니다. 안경두더지가 안경을 고쳐 썼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한 시간 전쯤이었겠죠? 잡혀간 뚱이가 말했어요. 둘이서 함께 멀뚱히 있느니 한 쪽은 보초를 서고, 한 쪽은 주변 정찰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그래서?”
“생각해 보니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 그러자고 했죠. 그런데 정찰을 하겠다며 십 미터쯤 걸어 나가던 뚱이가 갑자기 위로 끌려올라갔어요. 놀라서 보니 이미 여우의 두 발이 뚱이를 꽉 움켜잡고 있더군요.”
안경두더지가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거긴 큰 바위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 땅 가까이 우리들이 다니는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교활한 여우가 그걸 노린 모양입니다. 흙이 들썩이는 것을 보고 우리가 지나다니는 걸 알아챈 거죠.”
조용하던 두더지들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두더지들은 더 이상 그 길로는 다니지 말고 새 길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땅에서 멀리 떨어지게 깊이 길을 파자고도 했습니다.
“잠깐만요!”
두더지들이 새 길을 만드는 일에만 입을 모으자 안경두더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놀란 두더지들이 웬일인가 하여 안경두더지를 보았습니다. 안경두더지가 손가락으로 안경을 추슬렀습니다.
“정말 답답들 하십니다. 새 길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여우에게 복수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두더지들은 그제야 죽은 두더지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린 덩치도 여우보다 작고 밝을 때는 밖에 나갈 수도 없는데 어떻게 복수를 하나?”
한 두더지가 힘없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어린두더지가 발딱 일어서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우가 사는 동굴 앞에 구덩이를 파요. 그러면 여우가 동굴을 나오다 풍덩 빠지겠죠? 그때 우리가 가서 여우를 혼내주면 돼요.”
어린두더지 말에 어른 두더지들은 정말 좋은 생각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구덩이 파는 일은 다음날부터 바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모두 제 일은 제쳐두고 구덩이 파는 일에 동참하였습니다. 뾰족하고 긴 주둥이로 구멍을 뚫고 삽처럼 생긴 발가락으로 흙을 밖으로 들어냈습니다. 물론 여우가 눈치 채지 못하게 땅 밑에서부터 위로 구덩이를 파나갔습니다.
드디어 구덩이가 완성되었습니다. 일을 끝낸 두더지들이 흐뭇한 표정으로 구덩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깊이라면 여우가 절대 못 빠져 나가겠지요?”
“당연하지. 누군가가 꺼내주기 전에는 절대 못 빠져나갈 걸?”
“그래도 불안해. 워낙 영악한 놈이라서.”
두더지들은 걱정을 뒤로 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이면 구덩이에 빠져 있을 여우를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다음날이었습니다. 잠에서 막 깨어난 여우가 길게 기지개를 켜며 동굴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아침햇살이 동굴 밖을 환히 비추고 있었습니다.
“아흠, 날씨가 무지 좋군. 오늘은 먹다 남긴 두더지고기가 있으니 먹이 걱정은 안 해도 되고…. 계곡에 가서 바람이나 쐴까?”
여우는 느린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귀는 쫑긋 세우고 두툼한 꼬리도 몇 차례 흔들어 낙엽을 털어냈습니다.
여우가 동굴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흙이 허물어지면서 여우는 그만 구덩이 속으로 쿵!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어이쿠!”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된 여우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구덩이 속에서 보이는 거라곤 파란 하늘과 둥둥 떠다니는 구름뿐이었습니다. 여우는 씩씩거리며 구덩이 안을 뱅글뱅글 돌았습니다. 붙잡고 올라갈 만한 것을 찾았지만 그 흔한 나무 뿌리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우는 곰곰 생각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이 가끔 덫을 놓거나 해서 동물들을 잡아가기는 하지만 구덩이를 파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맞아! 두더지들이야!”
그때 두더지들이 기다렸다는 듯 떼로 나타나 여우를 빙 둘러쌌습니다. 여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크르릉거렸습니다.
“못된 여우! 이제야 생각이 난 모양이군.”
이장두더지가 여우를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 교활한 놈을 당장 죽입시다. 죽은 동료들을 생각하면 저 놈을 살려둘 수가 없습니다.”
안경두더지 말에 두더지들은 더 바짝 여우를 에워쌌습니다.
“자, 잠깐만. 잠깐만 내 말을 들어보시오.”
여우가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여러분들의 동료를 잡아먹은 건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생각해 보시오. 두더지 당신네들도 배가 고프면 개구리나 달팽이를 잡아먹지 않소? 나또한 살려고 그런 것인데 어찌 그걸 가지고 복수를 한다고 그러시오. 그리고 당신네들은 나를 죽인들 나를 먹을 수도 없는데 죽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러니 제발 나를 놓아주시오.”
여우가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몇몇 두더지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했습니다. 여우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니 죽일 필요까지야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혼쭐만 내주고 살려주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저 교활한 여우 말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죽은 우리 동료들의 복수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저 놈을 죽여야 합니다. 자, 다 같이 저 여우를 죽입시다!”
안경두더지가 앞발을 높이 쳐들었습니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이장두더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안경두더지 심정도 이해하지만 우리가 저 여우를 죽이면 우리 또한 저 여우와 다를 바가 뭐가 있겠습니까? 당장은 속이 후련할지 모르지만 저 여우를 용서해주도록 합시다. 우리도 힘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으니 여우도 다시는 우리 두더지들을 얕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혼쭐만 내주고 살려주도록 합시다.”
안경두더지는 이장두더지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두더지들이 이장두더지 말에 손뼉을 쳤으니까요.
두더지들의 용서로 풀려난 여우는 그 후 다시는 두더지마을 주변을 얼씬거리지도 않았답니다.

 

◇신이림 약력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2011년 '황금펜아동문학상' 동시 당선
·동화집<염소배내기>외 동화집 공저 다수.
·동시집<발가락들이 먼저><춤추는 자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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