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영 숙 / 시인
라스코 벽화
정 영 숙
어둠을 업고 동굴 벽을 기어 다니는 도마뱀
내게 남은 한 줌 햇빛을 담보로
당신의 모든 기억을 샀지요
당신과 보낸 빛나던 순간을 위해
몸 안에 긴긴 어둠을 들여 놓았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유성처럼 꼬리를 물고
어김없이 땅의 기억을 되물어오고
내 몸은 샴쌍둥이처럼 다시금 그 기억들을 하늘에 낳지요
당신의 젖은 속눈썹, 한 올 한 올에 빛나던 별빛을 모아
내 다섯 손가락 마디마디에 불을 붙이지요
한번 꿈틀댈 때마다 동굴 벽에 투명하게 그려지는
붉은 단면도
단풍빛 다섯 개의 불꽃은 풀무불처럼 타오르던 우리의 심장
내가 만지던 그 기억들이 손가락에 빠져나가지 않게
어둠을 목숨처럼 붙들고 놓지 않습니다
어둠인 내 몸에 기름을 부어 세상에 없는 단 하나,
화석에 새겨질 그림을 그립니다
몇 세기가 지나도 한 점, 빛으로 서 있을 불꽃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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