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갑장 나리(6)
<소설> 갑장 나리(6)
  • 이기성 기자
  • 승인 2019.12.1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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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한
김영한/소설가
김영한/소설가

그러나 몸은 중노동을 한 것처럼 무겁고 나른했다. 그리고 귀중품을 잃은 듯 허전하면서 그와 이렇게 헤어지면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은연중에 몰려왔다. 성치 않은 몸에 술까지 취한 그를 혼자 보냈다는 자책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괴롭혔다. 게다가 삶을 포기한 듯 아무렇게나 지껄이던 말이 환청처럼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가 왜 갑자기 나타났을까? 단순히 술 몇 잔 마시러 온 것이 아니라면 그 이유가 뭘까? 혹, 어려운 사업을 상의하거나 위로받으러 왔다면 그건 처음부터 잘못된 계산착오다. 

나는 사업의'사'자도 모를 뿐 아니라, 그가 온다고 할 때 마침 집필중이라 조금은 귀찮게 생각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랐다. 무례하지만 정이 넘치는 저런 진국을 왜 진작 몰랐는지 아쉬웠다. 

이튿날 오전,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사업하는 사람이 항상 바쁠 것이라는 생각에서 바로 종료 버튼을 눌렀다. 
열흘 뒤, 나는 뜻밖의 우편물을 받았다. 갑장이 보낸 특수우편물속엔 거액의 온라인 환증서가 들어있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큰 액수였다. 
나는 즉시 그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여러 번 통화를 시도한 끝에'고객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소리 후에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된다'는 자동응답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 녹음대로 짧게 음성을 남기고 기다렸다. 아니, 조급한 마음에 다시 또 통화를 시도했으나 같은 녹음만 반복해서 나왔다. 나도 애가 타는 음성을 거듭 사서함에 남겼으나 응답이 없었다. 

이튿날엔 아예'고객의 요청으로 통화가 중지되었다'는 녹음으로 바뀌었다. 그때 문득 머리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여름에 받은 명함이었다. 그러나 그걸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진종일 애타게 찾다 보니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이튿날 아내까지 나서서 부산을 떤 끝에 겨우 알아낸 것이'K전자'라는 그의 회사 상호였다. 
그의 아내와 통화가 되었을 때, 나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뭐라고요? 갑장 아니, 임 사장이 세상을 떴다고요? 언제…?”

그의 아내의 말은 내일이 초재(初齋)라는 것이었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허탈한 심정이란 말이 이럴 때 쓰는 표현 같았다. 초재에 참석하겠다는 말로 전화를 끊은 나는 한참동안 머릿속이 텅 빈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멍하니 바라보는 허공 속엔 갑장과의 짧은 만남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득하게 펼쳐졌다. 그가 호프집에서 괴로워할 때 나는 단순히 과음 탓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니 진작부터 죽음을 예감한 그가 일껏 찾아와 고별주까지 나누며 절박한 심정을 은근히 아니, 노골적으로 털어놨건만 나는 한낱 주정으로만 알고 건성건성 들어 넘겼던 것이 불찰이었다. 

그렇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사귄 시간은 짧았다. 그러나 그동안 내게 베푼 그의 알뜰한 정이 이렇게 가슴을 아프게 할 줄이야!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화두를 던져놓고 떠난 그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그의 절박함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튿날 아침,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러나 북한산 중턱에 있다는 법흥암(法興庵)이 초행인데다 가파른 바위와 너덜길이 길어 초재가 시작될 때 겨우 일주문에 이르렀다. 땀에 젖은 옷깃을 여미고 경내로 들어서니 절벽에 제비집처럼 매달린 산신각이 먼저 눈에 띄었다.
대웅전에서 거행된 초재의 분위기가 얼마나 경건하고 엄숙한지 마치 물속 깊이 가라앉은 듯 무겁게 느껴졌다. 싸늘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부처님 양옆으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나란히 모신 상단에 먼저 예불을 마친 노스님이 영단(靈壇)쪽으로 한발 다가섰다. 간소한 제물 앞에 정좌한 노스님이 가볍게 요령을 흔들자, 젊은 바라지스님이 목탁을 치며 염불을 시작했다.   

나무극락도사 아미타불 나무관음세지 양대 보살, 
나무 접인 망령 대성인로왕보살…….
은은한 향연(香煙)이 감도는 법당에서 한 시간가량 이어진 장엄염불이 끝날 때 나는 갑장의 위패가 놓인 영전(靈前)에 향을 피웠다. 삼배를 올리며 왕생극락을 빌면서도 그의 죽음이 조금도 실감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8절지만한 액자 속에서 생시처럼 활짝 웃는 그 모습이 너무도 천연덕스러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초재가 끝나자 법당에 있던 사람들이 대웅전 아래에 있는 요사(寮舍)로 내려갔다. 나는 법당에서 먼발치로 눈인사만 나눈 그의 아내에게 다가섰다. 여름에 본 후로 처음인 그의 아내가 초췌한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폐 끼치는 걸 질색하는 그이가 생전에 아무도 알리지 말라는….”남편의 유언에 따라 부음을 전하지 못했다는 그의 아내에게 나는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라 그냥 목례로 상례(喪禮)를 대신했다. 

가을볕을 손차양으로 가린 그의 아내가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이가 아끼던 만년필이에요. 주로 원고 쓸 때만 사용하던 건데 선생님께 드려도 결례가 안 된다면 아마, 그이도 저승에서 좋아할 거예요.”
그의 아내가 내민 만년필은 시중에서 보기 드믄 고급제품이었다. 투명한 케이스에 새것처럼 라벨이 그대로 붙어있는 그의 유품을 나는 넙죽 받기가 부담스러웠다. 잠시 머뭇거리다 받아들고 물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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