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팔려간 수탉
<수필> 팔려간 수탉
  • 이기성 기자
  • 승인 2019.12.11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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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석 / 성동문인협회 이사
이규석 / 성동문인협회 이사
이규석 / 성동문인협회 이사

오늘 11년 여를 타던 승용차를 팔았다. 한식 때 고향을 다녀온 후에 팔리라 마음은 먹고 있었다. 그간 차가 눈치 못 채게 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시동을 걸 때마다 차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곧 헤어지게 된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허전하기도 했다. 

마침 후배가 지난 2월 차종 불문 신차 구입과 헌차 매매를 도와드린다는 메시지를 보내온 생각이 나서 그에게 의뢰했다. 
우리 문중은 4월 첫째 일요일은 한식, 9월 첫째 일요일은 금초, 11월 첫째 일요일은 시제로 정해져 있어서 한식날 고향 선산에 차를 몰고 다녀왔다.

다음날 후배에게 전화하니 바로 오늘 아침 8시 후배와 감정사가 집으로 와서 감정 후 그 자리에서 폰뱅킹으로 대금을 입금하고 차를 가져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하루 종일 허전했다. 추적추적 봄비는 내리고 오늘따라 인터넷 연구회 모임이 그것도 우리 사무실에서 개최된 것 외에는 다른 일이 없다. 그 흔한 저녁 약속도 없어서 일찍 퇴근해 곧장 귀가했다. 뭔가 소중한 것을 잃은 기분에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초등학교 때 어떤 장날 우리 집 장 닭을 팔러 갔던 생각이 났다. 6·25가 끝나던 해에 아버님이 사고로 일찍 세상을 하직하시면서 하시던 사업이 풍비박산되고 우리는 정말 어렵게 살았다. 

그 시절 누구나 살기 어려웠지만 우리는 정말 어려웠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빚은 없었는데, 아니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빚쟁이들이 닥쳐들어 땅이 넘어가고 고리채도 떠안게 되었다. 그래도 빚쟁이들이 양심은 있었는지 먹고살라고 우리 정미소 하나는 남겨 놓았단다.
그 당시 정미소 하나만 있어도 부자였다. 그러나 빚더미에 앉은 우리는 아끼고 또 아끼며 무서운 빚부터 갚아야 한다고 이를 악물고 살았다.
먹을 것이 늘 부족했고, 있어도 먹는 것을 줄이기 위해 죽을 쑤어먹는 것은 기본이었고 보릿겨, 들나물, 산나물을 닥치는 대로 챙겨다 먹었다. 이것까지는 이웃들도 거의 모두가 같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을 했는데 그건 닭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해마다 이른 봄 세 마리 정도의 암탉이 각각 20개 정도의 알을 품게 하여 성공적으로 부화된 50여 마리의 병아리를 길렀다. 약병아리 때 시장에 내다 팔고 못 먹어서 영양실조로 얼굴에는 버짐, 머리에는 기계총이 덕지덕지 한 우리에게 그 비싼 약병아리 한 마리씩을 잡아서 요리해주셨다.  한 번도 아니고 해마다 그랬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나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풀이 나기 무섭게 풀을 뜯어와 썰어서 쌀겨와 섞어 닭에게 주었다. 잡아먹고 팔고 한 다음 20여 마리를 1년 내내 길렀는데 수탉 2마리와 암탉 20마리 정도였다. 5일 장마다 다른 사람들은 곡식이며 채소를 이고지고 장에 나가 팔아서 생활을 해 갔지만 우리는 장마다 계란을 팔았다. 

20마리가 5일 동안 알을 나면 8꾸러미(80개)정도를 볏 집에 싸서 장에 가지고 가셨는데 당시 계란 값이 비싸서 이 정도면 쌀 1말보다 훨씬 비쌌다. 

동네 어느 집에 손님이 오면 손님께 계란 드린다고 쌀을 가져와 바꾸어 가기도 했다. 수탉은 언제나 2마리였는데 3마리인 적이 몇 년간 있었다. 짙은 수수 빛 깃털이 멋진데다 윗 벼슬도 큰놈이 불뚝 솟았고 아래 벼슬은 황소 부랄처럼 크게 축 늘어진 장 닭인데 이놈이 싸움을 잘 하는 것이었다. 

밖에 나가서 홰를 치면 근처에 수탉들이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갔고 미쳐 도망 못간 놈은 우리 집 수탉이 옆으로 지나가면 꽁지와 머리를 내리고 있었다. 우리 집 수탉은 그럴 때 그냥 지나지 않고 지나면서 그냥 한번 부리로 툭 치면 그 수탉은 죽는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못 팔게 우리 형제들이 말리는 통에 어머님이 결국 몇 년 더 길러 아마 3년여를 함께 있었던 같다. 그래서 수탉이 3마리까지 되었는데 그 장 닭은 언젠가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 일을 저질렀다. 

어느 날 동네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 집 바깥마당에 나타나자 수탉이 괴성을 지르면서 쏜살같이 달려가 공격을 한 것이다. 그 아주머니가 혼비백산 한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옆에 있던 싸리 빗자루로 닭을 공격해서 싸움이 벌어졌다. 
주인을 알아보던 그 닭은 주인의 호통과 작대기 질에 도망갔지만 이런 일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다른 어른이 이놈의 닭이 사람에게 덤빈다고 발길질을 하면 남정네에게도 쏜살같이 덤벼들어 혼을 내주는 것이었다. 
감히 존엄하신 인간에게 위협을 가한 것이다. 그리고 이웃집 수탉이 미처 도망을 못하고 공격권 내에 오면 가차 없이 반은 죽여 놓았다. 이 장 닭은 나와 내 동생들에게는 자랑이었지만 사람들에게 겁을 준 이후로는 불안의 대상이기도 했다. 모이를 주면 주변에 암탉들을 구수한 소리로 불러들여 먹이를 먹게 하고 자기는 큰 날개를 마음껏 펼쳐 보이는 모습도 멋지고, 겨울철 수리가 동네에 나타나 하늘을 빙빙 돌면 비록 머리를 처박고 숨기는 했어도 엄청나게 큰 소리로 비상사태를 알린 다음에 숨었다. 

지금도 이유는 모르지만 어떤 날에는 담장이나 지붕 위로 날아올라 탁탁 홰를 치며 멋지고 길게 '꼭 끼오~'를 소리쳤다. 동네 사람들도 이 닭은 알아보았고 그만큼 도도하고 멋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덤벼드는 닭을 못마땅해서 혼내주려던 동네 사람들이 어머니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자식들이 좋아하는 닭이라 좀 더 기르고 싶었으나 감히 사람을, 그것도 동네서 방귀께나 뀌는 사람에게만 달려드는 닭을 어머니는 끝까지 싸고돌 수는 없었다. 

사실 수탉은 사람들이 그냥 조용히 지나가면 아무 일도 없는데 발을 구르거나 인상을 썼던 사람을 기억했다가 예외 없이 덤벼들어 체면을 손상시켜 놓는 것이었다. 

어느 날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저 수탉을 장에 내다 팔아야 하겠다고 어머니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드디어 불안해하던 상황이 닥쳐온 것이다.
아마 여름 방학 때였을 것이다. 수탉의 날개와 발을 단단히 묶어 큰 보자기에 싸서 그걸 나에게 들려가지고 어머니는 계란을 머리에 이고 장날 팔러나갔다. 
더운 날씨라서 보자기 사이로 수탉은 머리를 내밀고 입을 벌려 헐떡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애처롭게 쳐다보곤 했다. 무겁고 힘들었는데 다행히 버둥거리지는 않았다. 

내가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한강 나룻배를 타기 전에 그곳에 나온 중간 상인에게 그 닭을 팔았다. 동네서 나루터까지 시오리 그러니까 3km, 닭을 팔 수 있는 시장까지는 1.5km는 더 가야 하니까 중간 상인이 팔려는 사람의 힘든 과정을 줄여주는 대신 좀 싼값으로 사가는 것이다. 
팔도 아프고 힘들다가 닭을 건네주고 나니 빈 몸이어서 날아갈듯 싶었다. 노를 저어 다니는 배는 이쪽으로 건너오고 있는 중이다. 땀이 흐른 얼굴과 팔다리를 씻으니 강바람이 더욱 시원했다. 

시장에 들러 계란을 팔고 어머니가 됫박성냥, 설탕, 미역, 국수, 고무줄 등 많은 종류의 물건을 사셨다. 그리고 잠시 그늘에서 쉬는데, 그 수탉이 어머니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강 건너에서 샀던 그 사람이 시장 한 귀퉁이에서 다른 사람에게 다시 팔기 위해 많은 닭을 매놓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군계일계인 그 수탉이 지쳤지만 강한 눈빛으로 애절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어머님께 '저거 저 닭 좀 보세요' 했더니 어머니는 흘끔 보실 뿐 더 더워지기 전에 빨리 집에 가자하면서 부지런히 앞서 가셨다.
당당한 저 수탉의 운명은 어찌될까. 그리고 저 형형한 눈빛과 애처로워 보이는 표정. 오늘 아침까지 누렸던 영광은 재현될 수 있을까. 장국밥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시는 어머니께 침이 꼴깍 넘어갔지만 아무소리 않고 따라갔다. 

시장 어느 곳에 채소, 파 등 농산물을 펼쳐놓고 난장을 하다가 늦은 점심때가 되면 장국밥 사먹고 오라고 꼬깃꼬깃한 돈을 쥐어주던 때가 있었지만 오늘은 아직 이른 점심때고 이제 4, 5km만 그것도 무겁지 않은 장바구니만 집까지 가져가면 되는 것인데 사주실리가 없었다. 
집에 돌아오니 동생들이 쪼르르 내게 와서 닭은 어찌됐느냐고 묻는다. '팔았다'. 힘없이 말하는 나보다 더 실망하는 동생들에 눈에는 눈물이 보였다. 

저녁 모이를 줄때도, 다음 날 아침에 닭장 문을 열어 줄때도 그 수탉은 안보였고, 조용한 한나절에 들려오는 듯한 그 장 닭의 울음소리가 몹시 듣고 싶고 그리웠다. 

오늘 자동차를 팔고 나서 허전한 마음에 떠오르는 그 수탉의 일생이 어머님의 손길과 함께 간절하게 떠올랐다. 수탉이나 자동차나 인생이나 회자정리의 쳇바퀴에 함께 있다. 아직 내게 깊은 그리움과 슬픔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위안도 된다. 지금 밤 10시 가까운 시간인데 창밖에는 봄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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