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뻐꾸기시계
<수필> 뻐꾸기시계
  • 이기성 기자
  • 승인 2019.12.2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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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금 / 시인

 

박종금 / 시인
박종금 / 시인

우리 집 뻐꾸기시계는 삼십년이 훨씬 넘었다. 뻐꾸기도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셈이다. 묵직한 세 개의 추를 매단 가는 줄이 끊어질 듯 낭창거려도 새의 발목이 묶여있는 모양이다. 탁란(托卵)을 하는 뻐꾸기. 자신의 알이나 새끼를 보살필 수 없으니 시계 속에 들앉아 시간을 알리는 새가 되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문을 열어젖히고 나와 창밖을 향해“뻐꾹뻐꾹~" 구슬피 운다. 새끼를 향한 그리움일까? 울다가 먼 허공을 바라보며 문을 닫는다.

도시, 그것도 집 안에서 뻐꾸기소리를 듣는 다는 것이 내게는 기쁨이었다. 오랜 세월 함께 지내다 보니 정이 들은데다, 빈집을 지키며 가족을 기다리는 나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서로 적적함을 나누는 오랜 친구 같아서다.

내게는 밤늦게라도 들어올 가족을 기다린다지만 허공을 바라보며 우는 새의 울음은 무슨 의미일까. 외로움 허기 아니 그리움이지 싶다.
고교시절 산길을 가로 질러 학교에 다녔다. 이끼 냄새가 촉촉이 젖어드는 오솔길이 있고 뻐꾸기의 울음이 온 산을 울리는 길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나뭇잎에 맺힌 이슬이 햇살에 반짝였다. 친구들과 조잘대며 소나무 사이를 걸어갈 때면 잠이 덜 깬 뻐꾸기가 화들짝 놀라 뻐꾹뻐꾹 다른 산을 부르며 날아가곤 했다. 그때마다 보석 같은 이슬이 우두둑 떨어졌다. 말끔히 다려 입은 교복이 젖어도 기분은 상쾌했다. 그때부터 뻐꾸기가 울면 맑은 이슬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뻐꾸기 소리가 예전만큼 맑지 못했다. 배터리를 새 것으로 바꿔도 시간마저 조금씩 늦어졌다. 마치 장거리를 달려온 바퀴가 방지 턱을 넘을 때처럼, 힘겹게 돌아가는 바늘을 보고 있으면 내 삶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은 빠르게 지나가는데 팔다리는 느려지고 몸은 둔해지니 말이다.

나도 한때는 꿈을 꾸며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무엇이든 마음먹으면 다 이루어질 것 같은 자신감으로 가득 찬 때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내 마음 속은 옛날이 가는 게 아니고 자꾸만 오고 있다. 젊은 시절 외면했던 가치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제야 깨닫고 있다. 귀찮을 정도로 아이들이 엄마, 엄마 하며 치맛자락을 잡고 내 곁을 맴돌던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 옆에만 있으면 행복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행복의 가치도 바뀌는 걸까? 자식이 장성하면 떨어져 살아야 한다지만 자식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싶다. 행복은 물질보다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자식들은 모를 것이다.

엄마가 되고 보니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밥 먹을 때에도 자식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맛있는 반찬을 서로 밀고 당기고 싶다. 단순히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끈끈한 정으로 마음을 채우고, 넘어지면 팔 뻗어 잡아주고 싶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내 바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자식을 보면 반갑고 심장이 뛰는 걸 어쩌랴.
자식들은 내가 했던 것처럼 즈네 새끼들을 그렇게 거두고 있다 아니 나보다 더 진하게 사랑한다. 내가 젊었을 때는 삶에 쫓겨 아이들과 마주하고 웃어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일까 지금 나는 그때 사랑을 손주들과 나누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젊음이 늘 머물러 있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 자라는 속도를 보면 내가 달려온 속도를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밥을 먹고 살았다기보다 시간을 먹고 산 것 같기도 하다.
다행이도 세월이 헛되이 지나간 것만은 아니었다. 많은 것을 변화 시켰다. 가진 게 많은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는 나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주저앉히고, 내 자리를 좁게 만드는 걸 알려주었다. 또한 그동안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 나를 들여다보게 한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아는 것은 아는 대로 살아왔을 뿐이다.

통나무 속이지만 이제 뻐꾸기에게는 그곳이 숲이고 산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지옥이었고 때로는 천국이기도 했던 결국은 내 삶의 가치와 보람을 안겨주는 나의 집, 나의 가족이 내 푸르른 숲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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