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상전벽해
<수필>상전벽해
  • 이기성 기자
  • 승인 2019.12.2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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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중 / 성동문인협회 이사
윤백중 / 성동문인협회 이사
윤백중 / 성동문인협회 이사

1970년대, 정부가 강남을 개발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여러 가지 기반시설을 갖추어 놓아도 이사 가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허허벌판인 강남으로 이사하는 것은 직장의 출·퇴근 시간 비용 등 여러 가지 불편함이 뒤 따르고 당시에는 전철도 개통되기 전이라 더욱 어려움이 많았다. 강남을 개발하면서 강북개발은 생각도 못하고 강남으로 이사를 권유하던 때였다.

서울시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몇 가지 유인책도 썼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회사인 한국 전력의 본사를 강남으로 이전시켰다. 그래도 시민들이 강남으로 이사를 안 가니 경기고등학교와 경기여고를 강남으로 옮겼다. 그렇게 해도 사람들은 강남을 가지 않았다. 이때 처음 강남으로 이사한 사람 중에는 잘 사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강북에 살면서 전세나 월세로 사는 사람들이 조금씩 강남으로 이사 가서 넓은 집이나 벌판에 맨땅 지켜주며 무상으로 살아온 사람도 꽤 많았다. 대체로 어려운 사람들이 먼저 이사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또한 일부 지방공무원들이 정부 시책에 따르는 정도였다.

상·하수도와 도로를 완벽하게 시설 해 놓아도 강남을 찾는 시민은 비교적 적었다. 시장은 또 대책을 세웠다. 버스터미널을 강남으로 옮기고 시청 공무원도 가능한 한 강남으로 이사하도록 했다. 1980년대 대부분 일간지의 기사내용 들이다.

나는 1972년 1종 운전면허를 따려고 강남에서 주행 등의 연습을 했다. 지금 코엑스 자리와 탄천 근처에 얼마 전 매매된 한국 전력 본사 자리에서 운전 연습을 했다. 탄천의 위험표시도 허술했던 때라 사고가 나기도했다. 허허 벌판에 사방을 둘러봐도 북쪽으로 봉은사만 있고 건물이라곤 없었다. 봉은사 뒤에 신축 중인 경기고등학교가 유일하게 보일 뿐이었다.
얼마 전에 전직 장관이 쓴 글을 보았다. 그는 지인의 소개로 1950년도 초에 압구정동 땅을 샀단다. 어쩐지 오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조선왕조에서 영의정을 지낸 한명희 별장이 있는 언주면 구정리가 좋다하여 가보니 모래밭인데 열리지도 않은 작은 배나무가 널려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몇 년생은 되어 보이는 배 밭을 평당 5원을 주고 샀는데 몇 년이 지나도 가격이 오르지 않고 그대로여서, 산 땅을 못 팔아 애를 먹었다는 기사였다.

압구정동이 지금은 금싸라기 땅이지만 60여 년 전에는 볼모지로 별로 쓸모없는 경기도의 논밭이었을 뿐이다. 그때 왕십리는 조선 기와집에 노선버스도 있는 4대문 바로 밖에 있는 도시였다. 혹자는 조선시대 시체를 내다 버리는 시구문이 옆에 있는 줄로 아는데 그 문은 을지로 6가 부근 광희동에 있다. 시체가 나왔다는 곳은 신당동쪽이다.
조선 건국 초기 정도전이 왕십리에 와서 어떤 노인을 만나 여기가 도읍지로 어떠냐고 물었는데 노인은 서쪽을 가리키며 “왕십리(往十里)”하더란다. 서쪽으로 십리를 더 가라는 뜻이다. 지금의 경복궁을 말한 것 같다. 이와 같이 왕십리는 오랜 역사 뿐 만아니라 조선왕조 건국의 의미도 가진 곳이다.

6.25전쟁 때 난민들이 살았던 판자촌에는 대소변을 그대로 개천에 버려 위생이 엉망이었던 가난의 대명사인 청계천도 왕십리에 접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청계천은 개천 양 옆으로 숲이 우거진 사이에 적당한 물이 흘러 도심가운데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두루미 황새 백로와, 비둘기 참새 멧새 등 여러 종류의 새들과, 냇물에는 다양한 고기가 자유롭게 노닌다.

월척 이상 되는 큰 물고기 사이로 날피리 송사리 같은 작은 물고기들이 어울려 개천 중앙으로 물살을 가르며 노닌다. 큰 물고기들은 자기를 잡는 천적이 없으니까 마음 놓고 놀고 있다. 양쪽 혹은 한쪽 도로는 광화문 근처에서 신호 없이 응봉교 아래 한강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아침저녁 청계천을 산책하는 많은 시민들이 떼 지어 다니는 고기들과 새들과 숲을 보면서 건강을 위한 산책을 즐긴다. 이제 청계천은 서울 한 복판의 심장부가 된 것이다.

상왕십리도 뉴 타운으로 개발 되어 5천여 세대의 대단지로 2호선 전철역이 아파트 3단지에 바로 연결되어 있다. 왕십리 전철역은 걸어서 십여 분 거리에 3개의 전철 노선과 국철이 있어 서울에서 상당이 편리한 4통 8달의 교통 요지가 되었다.

왕십리와 압구정동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 논 밭 과수원 임야였던 압구정동이 아파트 숲으로 변했고, 오래된 집과 판자 집이 많던 상왕십리가 대형 뉴 타운으로 변했다. 상상도 못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큰 변화를 실감하며 살고 있다.

새로운 해가 오려고 준비하고 있다. 내가 사는 왕십리가 또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르겠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면 누군가가 또 상전벽해를 이야기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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