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에게 묻는다. 의사가 진정 의사일 때,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의사 자신인가, 아니면 그가 돌보는 환자인가? 만약 그가 환자를 위하는 마음보다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되어 교묘하게 거짓말을 한다면, 그는 의사인가? 의사의 탈을 쓴 강도가 아닌가? 정말 의사라면 그는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환자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며 그들을 치료하는 데에 혼신의 힘을 다 쏟을 것이다.
통치자나 정치가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통치를 받는 사람들의 행복과 정의를 위해 법을 세우고 집행하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에 더 마음을 둔다면 그들은 진정 통치자도, 정치가도 아니다. 그런 가죽을 쓴 가장 위험한 강도다. 진정한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을 돌보는 대신 정의로운 통치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것이다.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 자신의 이름값과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정의다. 정의는 훌륭한 사람의 미덕이다. 정의로운 사람은 그 영혼이 참된 앎과 진정한 용기와 절제로 조화를 이루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정의로운 국가를 꾸리며 모두의 행복에 힘쓴다.
소크라테스는 정교하고 놀라운 논리를 통해 이 주장의 진정성을 증명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것은 2500여 년 전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옛 그리스의 고전이 우리의 현재 모습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읽어내고 있어서가 아닐까?
김헌 저(著)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정의란 무엇인가? 18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