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과 풍수(127) 동양오술 (배달국18)
동양학과 풍수(127) 동양오술 (배달국18)
  • 성광일보
  • 승인 2020.02.1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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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국(광진투데이 편집위원장/삼오지리학회장역임/현재 한국현공풍수학회장/신화씨엠씨(주)대표)

우리는 지금 치우천황이 어째서 도깨비로 변신하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으며, 그 과정에 배달국의 역사를 되짚어 보았고 한편으로 치우천황과 황제와의 전투를 우리역사 시각에서 밝혀도 보았다.

이렇게 도깨비로 변신한 원인을 캐기 위해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전쟁놀이의 잔재인  각종 민속놀이에서 다양한 깃발과 상징을 통해, 꾸준히 치우천황의 실마리를 찾아 되짚어서 원인을 밝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여 본 연재를 읽으면 이해가 잘되리라 생각한다.

박종화의 임지왜란이란 소설내용 중에 성안 높은 곳에 용대기(龍大旗)를 세우고 크게 군막을 치게 하고, 군사들은 함빡 성으로 나와서 성첩을 지켜라 는 내용이 있다.
이 말은 현재 민속놀이에 사용되는 용대기가 본시 전쟁에 사용되었던 깃발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호에 이미 밝혔듯이 오늘날의 민속놀이는 과거 수천 년 전에는 국경지역 근처의 백성들이 반농반군(半農半軍)의 형태로 살아온 결과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러한 풍습의 결과로 지금도 농부를 농군(農軍)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용대기가 간신히 한 두 곳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민속놀이 보존회에 다양한 크기로 무수히 남아있으며, 100년이 넘는 것에서 최근에 그려진 것까지 존재하고 있다. 이는 민속놀이의 진풀이로 시작을 알리는 기로 사용되었으며, 그 크기로 보면 전시에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거인급 인물이 용대기를 높게 들고 앞장을 섰을 것이다. 이러한 용대기는 크기나 모양, 색상에 따라 황룡대기(黃龍大旗), 교룡기(蛟龍旗)등으로 불리우 게 되었다.

그림의 첫 번째 용대기는 강정리 용대기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용대기로 추정한다.(創始 道光 十五年 三月 日 甲子 七月 日 補修 全北 鎭安 馬靈 江亭里 龍大旗)' 도광은 중국 청나라 도광황제를 말하는 것으로, 조선은 헌종시대로 1835년을 말한다. 지금부터 약 185년 전의 용대기이다.

두 번째 용대기는 크기를 말하기 위해 선택한 사진이다. 가로의 길이가 370cm로 가정집 담에 걸쳐서 찍은 사진이다.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고종1891년, 광서17년에 재작된 홍성 민속문화재 제 4호로 가로 370cm, 세로 190cm이며, 기록으로 이 보다 더 큰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마을의 용대기는 가로 500cm, 세로 345cm로 사진보다 1.5배가 더 큰 것으로 유추할 수 있지만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잔존 확인이 어렵다.
세 번째 그림은 논산의 노티리 용대기는 가정집의 지붕에서 바닥까지 내려놓은 상태이다. 얼마나 길고 큰지 상상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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