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
<수필>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
  • 이기성 기자
  • 승인 2020.02.10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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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모/성동문인협회 회원
홍성모/성동문인협회 회원

근자에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가이아 콰르텟 콘서트(GAIA QUARTET CONCERT)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내세운 현악4중주단의 공연이다.

체임버홀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최적의 음향시설이 갖춰진 클래식 음악 전문 홀이다. 음악을 좋아는 하지만 비전문가인 내가 청중(聽衆)의 입장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지인과 자리를 함께 했다.

그리고 피아노 독주회나 알려진 오케스트라 공연과 음악의 초보 청중들에게 음악적 잠재력을 일깨운 지휘자 수원시향 지휘자 '금난새' 의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도 즐겨 찾았었다는 기억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각종 공연장에 가면 먼저 온 청중을 훑어보는 습관이 있다. 오랜 세월 특정 직업에 종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타성이다. 이것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와 상관없이 좌석에 앉기 전에 내 시선은 모인 청중을 살핀다. 무슨 통계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방을 보고 판단하는 데 3초가 걸린다고 한다. 미국인은 16초, 스위스인은 22초라나, 3초 만에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특정부위, 즉 얼굴만 보고 평가하는 아주 위험한 발상인데 신중하게 바로잡을 생각도 안한다.
그러니 어울리지 않은 성형미인(成形美人)도 양산(量産)하나 보다.

그러나 내가 하는 것은 참석한 청중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하려 함이다. 소란스럽게 장난치는 아이들은 없는지, 큰 소리로 전자기기를 이용하는 어른들은 없는지, 참석자가 적은지 많은지 등이다.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잘 알려진 강사가 쓴 글에 '사람들 마음의 문을 여는 방법'으로 '첫째는 동질감을 자극하고, 둘째로 칭찬하고 격려하고, 셋째는 청중을 섬세하게 배려하면 눈같이 차가운 청중의 마음도 녹일 수 있다'고 한다. 연주 시작을 앞두고 이미 입장하여 지정된 좌석에서 조용히 유인물을 살피고 있는 총 443석을 채운 홀은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수준 높은 청중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어렵다고 외면하는 클래식 음악이라야 400여 년의 짧은 역사를 넘겼을 뿐이고, 바흐, 헨덜, 베토벤, 모차르트 등 알려진 음악가의 작품도 천여 곡에 불과하다는 것이 음악 평론가들의 정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삶을 누리는 동안 클래식 음악도 관심만 갖고 듣고 익히면 십여 곡 정도는 입에 올려 흥얼거릴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귀는 보수적이어서 귀에 익은 소리만을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조물주가 두 개의 귀를 만들어 주신 것은 한편의 귀로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유롭게 새로운 음악도, 소리도 들으라는 계시啓示란다.
시작 벨이 울리고 악기를 든 네 명의 여성 연주자가 조용히 무대를 점령한다.

잠시 현(絃)을 고르고 첫 곡 사무엘 바버의 출세작인 '현을 위한 아다지오 OP. 11'을 들려준다. 이 곡은 애수어린 호소력과 관능적인 아름다움으로 미국의 존 F.케네디, 아인슈타인 등 유명인들의 추모식이나 장례식에서 빈번히 연주된다. 이어 헝가리 음악의 개척자로서 향토적인 소재를 창작의 기반으로 세계적인 것으로 만든 위대한 작곡가 베라 바스톡의 'String Quartet NO.4'. 20분의 휴게시간 후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기존의 탱고와 다른 독창적인 아르헨티나 탱고의 시대를 열었다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Four for Tango' 와 마지막 연주곡인 핀란드의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가 5악장 소나타형식으로 만든 'String Quartet OP. 56 Voce intimae '의 멜로디는 우리도 즐겨듣는 아름다운 곡이다.

클래식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조건 없이 그 음악을 사랑하는 것이다. 음악은 좋아는 하되 사랑하지 않는다면 작곡자나 연주자나 감상자가 삼위일체가 될 수가 없다. 음악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해는 할 수 있으나, 작곡자의 의도, 연주자가 연습을 거듭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감상자 즉 청중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意味)로 그 음악의 진수(眞髓)를 바로 얻었다고 할 수 없다.

나는 귀에 익은 선율에 감동하면서, 해외는 물론 대학에 출강하여 후진을 양성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함께 연습을 거듭했을 연주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1시간 30분여의 연주시간이 끝나고, 그래도 아쉽게 느낀 점은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에게는 경청할 만한 짧은 해설이 덧붙였으면 보다 더 풍성한 음악적 감흥을 만끽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좌석에서 일어나 지인과 함께 연주회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홀 밖으로 나오다가 연주회를 1회만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입장권 2만 원에 프로그램 유인물 5천 원으로는 홀 대관료, 시설 사용료, 등 총 경비는 5백만 원에서 1천만 원이 소요되는데 입장료를 구입한 일반 청중은 1백여 명 남짓하고 나머지는 무료 초대 손님으로 간신히 채워진 것이란다. 우리도 서양(西洋)처럼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에 심취하는 사람들의 저변확대를 위해 다각적인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어느 원로 트로트 대중음악 가수는 12만 원~16만 원의 입장권으로 청중 4000석 규모의 올림픽 홀을 3일간 꽉 채운다고 한다. 그러니 요즘 한참 뜬다는 아이돌 가수들의 청중의 숫자는 두 말 할 것 없겠고 그 수입도 상상을 초월할 텐데, 요지경 같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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