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을 비춰주는 국격
개인을 비춰주는 국격
  • 성광일보
  • 승인 2020.02.2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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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석 / 건국대 철학과 교수
김 석 / 건국대 철학과 교수
김 석 / 건국대 철학과 교수

한국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지만 외국에 나가면 대한민국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체험할 수 있다. 필자는 90년대 초 40일 동안 유럽 여러 나라를 배낭여행 한적 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의 위상이 높지 않고 인지도도 낮아서 특별한 주목도 받지 못하고,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의 변방 국가로 취급된 기억이 난다. 몇몇 현지인들이 축구 잘하는 나라라고 엄지를 척 치켜 준 기억만 어렴풋이 남는다. 

90년 중반 프랑스로 유학 갔을 때는 현지 방송에 한국 소개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어쩌다 외신 뉴스가 나오면 격렬하게 시위를 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데모를 많이 하는 나라라 혼란스럽다는 식으로만 보도했다. 

내가 어학을 배우던 도시는 일본 고베시와 자매 결연을 맺은 도시라 일본 정원도 도심에 있었고, 프랑스 주민들도 일본을 아주 좋아했다. 길에 다니다 보면 일본인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았고, 한국에 대해 외국 친구들에게 설명하려면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동양문화하면 일본이 대표 주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한중일의 차이점을 설명해주느라 꽤 노력도 했다. 그러다 시내 극장가에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걸려 반가운 마음에 보러 간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영화를 프랑스 땅에서 본다는 게 참 신기했다.

대략 2002년 한일공동 개최 월드컵 때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국인들 눈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같은 옷을 입고 광장에 모여 응원을 해도 싸움이나 소란이 벌어지지 않고 일사분란하고 자발적으로 응원을 하는 붉은악마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직접 청소를 하고 질서정연하게 해산하는 모습을 보도하면서 역동적이면서 시민의식이 성숙한 나라라고 찬사를 보내면서 중국이나 일본과의 차이점도 종종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하자 감히 한국 같은 약소국(?)이 축구 강국 이탈리아를 이길 수 있냐고 분개하며 뭔가 술수를 썼을 거라고 한국을 싸잡아 매도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한 때 조심하고 다닌 기억도 난다. 

이탈리아는 물론 프랑스 사람들도 한국이 이탈리아를 축구에서 이긴 것은 우연이거나 아님 심판을 매수한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모함(?)을 했다. 어찌 보면 그 만큼 우리 국력이 약했고 한국도 저평가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인 유학생들 다수는 인종 차별을 겪진 않았지만 프랑스에 살면서 다소 위축되거나 우리나라에 대한 특별한 자부심은 없었다. 하지만 유학을 마치고 유럽을 몇 차례 방문했을 때는 갈 때마다 한국에 대한 대접이 점점 달라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10년인가 프랑스에 가서 현지 학자들을 많이 만났는데 혹시 한국에서 부르면 학술대회나 초청 강연회에 오겠느냐고 물었더니 대다수가 간절히 바라는 눈치였다.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BTS가 젊은이를 중심으로 유행하고, 한국 영화가 많이 소개되고, 아기상어 같은 캐릭터가 세계를 휩쓸면서 이제 한류는 확실한 징표이자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길거리나 관광지에서 한국인이냐고 단박에 묻는 사람들이 확실히 늘었다. 이번 2월에 필리핀에 다녀왔는데 그곳 사람들이 워낙 친절하기도 하지만 한국에 대한 반응이 참 호의적이고, 긍정적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현지인들은 물론 공항 같은 공식적인 곳을 통과할 때 한국어로 “안녕하세요”인사를 하거나 한국 좋아한다고 영어로 말하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지난 얘기를 좀 길게 한 이유는 한국인으로 경험한 에피소드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관계적이고 집단적이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면 언제나 자기가 속한 나라의 격에 맞게 대우를 받고 싫든 좋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평가를 받는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류 뿐 아니라 여러 이유로 유럽은 물론 아시아권에서도 한국에 대한 호감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의 국격은 문화 뿐 아니라 정치, 법, 경제 등 다양한 것에 의해 결정된다. 

이번에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는 것을 보면서 외국에서 한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선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비록 확진자가 늘고는 있지만 전에 싸스나 메르스 사태와 달리 이번에는 체계적으로 방역과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한 외국 언론의 긍정적 시선이 적지 않다. 

심지어 한국을 부정적으로 깎아 내리기 일쑤인 일본 주류언론조차 바이러스 사태에 대해서는 한국을 본받으라며 아베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반대로 그간 경제 뿐 아니라 사회시스템, 의료 등 전반적 영역에서 한국보다 선진국으로 인정받던 일본이 이번에 대형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의 감염자에 미흡한 대응을 하면서 전 세계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일본은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경기가 더욱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어 악재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일본의 부진은 아베정권의 무능함과 독선 이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정치나 제도, 시민의식이 얼마나 그 나라의 국력 뿐 아니라 외국인 눈에 비친 국격에 반영되는지 잘 보여주는 예다. 우리 모습을 냉정히 평가하기 위해 때로는 의도적으로 밖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필요도 있다. 

필자가 가르치는 대학생들에게 단기 간 이라도 외국에 다녀오라고 하는 이유도 바깥에 나가면 보이는 것과 우리가 어떤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방문한 나라의 장단점도 우리가 어떤 식으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지 영감을 얻을 때도 많다. 
외국에 나가면 비로소 한국이 보이기 때문에 여행 이외에도 국제 교류를 계속하는 것이 여러 모로 중요하다. 또 중요한 것은 한류가 유행하고 한국 명성이 올라간다고 만족할 게 아니라 이제 유럽이나 미국 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에서 그에 걸 맞는 연대와 책임을 다하면서 더 성숙한 한국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외국의 평가에 너무 매일 필요는 없지만 때로 우리를 바라보는 좋은 거울로 활용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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