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눈물바다 된 전보
<수필> 눈물바다 된 전보
  • 이기성 기자
  • 승인 2020.03.10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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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혁
방의혁
방의혁
·광진문학 시부문 수상
·광진가족백일장 시부문 준장원
·광진문학 회원
·저서:《꿈이 바퀸 나의 인생》

오랜 옛적, 날 벼락같은 전보를 받았다. “東鎬 死亡”이라는...  
그날 나에게 찾아든 전보는, 전보가 아니라 '날벼락'이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정오가 지나 식사도 거른 채 터미널로 달려갔다.
고속버스를 탔으나 거북이보다 더딘  걸음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7백리 길을 달려 해질녘, 동호가 살았던 산골마을에 도착했다.
급한 마음으로 달려오긴 했으나 내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고픈 마을이었고, 머물고 싶은 마을이었으나 오늘은 아니었다.  
예측은 하고 왔었으나 마을은 온통 눈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모두들 목들이 잠기어 있었다. 나는 천근이나 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동호가 머물러 있는 집에 들어섰다.

이때 모두의 시선은 온통 나에게로 향했다. 그동안 나와 동호는 한 몸처럼 살아왔었으니 말이다.  
그래 통곡하며 눈물 흘릴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보'가 내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기에 눈물이 말라 버렸고, 감동까지 멎어버렸으나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나도 모르는 눈물이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그곳을 떠날 때까지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동호가 죽다니..., 나는 동호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동호는 나의 외종 동생이다. 다섯 살 아래동생으로 같이 중·고등학교도 다녔고, 같은 방을 쓰며 자취생활도 했었다.  
그때 동호는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러 오는 일이며, 그릇 씻는 일을 맡았고, 나는 연탄을 갈아 넣는 일이며, 새벽 일찍 일어나 밥을 짓는 일을 담당했었다.
내가 군에 입대하던 날 동호는 보호자처럼 나를 바래다주었고, 결혼식이 있었던 날도 동호는 친구처럼 같이 동행해 주었다. 언제나 내 곁에는 동호가 있었다.  
그러던 동호가 2년 전 결혼을 했고, 지난 해에는 첫딸을 낳아 잘살고 있었는데, 그 동생이 뜻하지 않게도 내 곁을 먼저 떠나다니, 믿어지지 않는 사건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이웃어른에게 사인을 들어봤다. 어제가 외삼촌의 생신이었단다. 아침부터 마을잔치가 벌어졌고 거나하게 술이 취해 있었단다.
낮 시간에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삼륜차를 타고 물놀이를 갔었단다.  
강에 이르러 피라미 등을 잡아 집에서 가져간 술을 또 마셨다는 것이다.  그 시대만해도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곤드레가 되도록 마셨었다.
흥겹게 물놀이를 마치고 모두가 삼륜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자동차가운데 타고오던 동호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도로로 뛰어 내리더란다.  

차는 빠르게 달리지 않았고 농촌 길 비포장도로였기에 모두들 많이 다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땅에 엎드려있는 동호를 향해 누군가가 소리쳤다.  
“-동호야 장난치지 말고 일어나-!”
그러나 동호는 여전히 꼼짝 안하고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차를 세우고 모두가 내려가 보니 상태가 이상했다. 가까운 보건소로 달려갔다.  
동호는 이미 숨을 거두었다는 청천벽력이었다.

나는 상가마당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모닥불 곁에 앉아서 동호를 생각하며 얼마나 흐느껴 울었는지 모른다.  
밥은 이틀 동안 한수저도 먹을 수가 없었다.  
밥 수저만 들면 눈물범벅이 되어 먹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은 동호가 집을 떠나는 날이었다.  
꽃상여를 따라가며 장송곡을 들어야 했던 나의 심정은 비통하기 그지없었다.  
그때처럼 많은 눈물을 흘려본 때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모두를 향해 원망도 많이 했었다.
“술을 마시려면 집에서나 마실 일이지, 왜 강물까지 가서 술을 마셨어야 되었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이웃 어르신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며칠 전날 밤 이웃어른 부부가 마루에 앉아 밤하늘을 보고 있는데, 동호네 집에서 불(혼불)이 나가는 것을 보았단다.  

그분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염려도 하였단다.
“아니, 동호 집에서 나간 불이 아니 당가요”
“그러-네, 아직 두 양반이 다 50중반인디...”
불이 집에서 나와 날라 가는 것을 본 그분들은 동호의 부모 중 한분의 혼불 일거라고 생각했었단다.  
그러나 차마 좋지 못한 말이라 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동호가 그렇게 떠날 줄은 몰랐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면, 삼일 전 차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것이 아니고, 이미 영혼이 그보다 삼일 전에 떠났다는 신비한 말이 되겠다.
마침내 상여는 집을 나섰다.  

차마 떠나기 싫은 상여는 제자리걸음을 수 없이 반복했고, 마을을 벗어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주경야독하는 학생신분이었기에 장지까지 따라 갈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서둘러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오면서 묵묵히 생각했다.
그래 '서로가 살아있을 때 안부도 묻고, 기회를 찾아 만나는 삶'이 얼마나 유익된 삶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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