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과 풍수(130) 동양오술 (용대기2)
동양학과 풍수(130) 동양오술 (용대기2)
  • 성광일보
  • 승인 2020.03.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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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국/

그 동안 전국 민속놀이에 사용되는 용대기의 그림과 다양한 크기를 확인해 보았다.
용대기는 용 그림을 그린 것으로 지역마다 제각각의 이름으로 불리었지만 모두 큰 깃발에 용을 그렸다 해서 용대기이다.
본래 깃발은 전쟁에서 아군과 적군식별, 부대편성, 전투신호, 행렬의 위엄을 보이는 등, 군사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아마 지금의 용대기가 민속놀이에 사용되지만 본래는 군대의 상징 깃발로 쓰였을 것이다.

이제 용대기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기록과 자료를 토대로 고증해 보자. 
용대기의 깃대는 약 10m 정도의 왕대로 만들었으며, 이를 기간(旗竿)이라하고, 깃대 끝에는 깃봉을 단다.
기효신서(紀效新書)에 의하면 깃봉은 둑기의 형태였다고 한다. 
둑기란? 오래전 연재에서 치우천황의 상징이라 소개하면서 조선에서는 뚝섬에 치우천황의 둑기와 그림을 모셨기 때문에 오늘날 둑섬이 뚝섬으로 명칭이 정해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둑기는 그림과 같이 치우천황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세종실록의 “오례의(五禮儀)”에 그 제작과 사용법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오례의”란? 조선시대 때 나라의 다섯 가지 기본 禮를 말하는 것으로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에 대한 예전(禮典)을 말한다.
둑은 모우로 검은 소의 꼬리로 만들었는데 전쟁의 신, 치우(蚩尤)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이 깃발에 제사를 지내 전쟁의 승리와 안녕을 기원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용대기의 깃봉은 둑기의 형태로 지금은 몽골의 국회의사당에 전시되어있는 둑기와 같은 형상이며, 기록에 의하면 소의 검은 꼬리를 사용하였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장끼의 긴 털을 대신 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래서 근대에는 꿩의 꼬리털을 묶은 꿩장목을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첫 번째 그림은 오례의의 둑기 그림이고 두 번째는 뚝섬에 전시되고 있는 둑기이며 세 번째는 몽골의 둑기이다. 몽골은 9개의 둑기를 칭기즈칸의 상징으로 사용하였기에 현재 9개의 둑기가 한 셋트로 국회의사당 입구에 전시되어 신성하게 모셔지고 있다.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상고사 부분을 우리와 같이 한다. 

다시 말해 환인시대와 배달국시대와 고조선의 단군역사를 공통분모의 역사로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우리의 단군을 그들은 탕그리, 탱그리(Tangri, Tengri)라고 부르며 이는 흉노, 선비, 투르크, 불가리아, 헝가리 그리고 알타이지역 대부분에서 우리의 단군신화와 같은 텡그리즘을 상고역사로 최고의 신으로 모시고 있다.
그래서 치우천황의 상징인 둑기가 몽골에서도 우리와 같이 신성시 되고 있는 것이다.
아래 그림은 꿩장목을 사용한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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