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의 기초와 실천: 범유행(Pandemic)의료 위기 극복과 파지리(波池吏)
사회성의 기초와 실천: 범유행(Pandemic)의료 위기 극복과 파지리(波池吏)
  • 성광일보
  • 승인 2020.03.3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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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항석 / 논설위원
정항석
정항석

‘1940년에 들어서자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 전초로 프랑스령 알제리 북부의 가상 도시 오랑(Oran)은 죽음의 도시가 되었다. 중세에 번지고 사라질 것이라는 흑사병(Peste)이 다시 죽음을 몰고 왔다.’

알베르 카뮈(A. Camus 1913-1960)의 <페스트(La Peste 1947)>의 일부이다. 최근, 코로나(Covid-19)로 인하여 이 같은 일을 떠올리게 된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카뮈 타계 60주년이다. ‘2020년 가공스러운 범유행(Pandemic)의 공포’가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전염병과 인간의 사투를 그린 카뮈의 소설, ‘<페스트>’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의 속도 이상으로 그 불안한 심리가 비례하고 있는 탓이다. 그리고 코로나 확산방지와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훌륭한 의료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심의(心醫)! 그들은 말한다! ‘의원(醫員)은 병자를 두고 거래하지 않는다’라고! 하지만, 불행은 다른 한쪽의 반불행(反不幸)이 되기도 한다. 평시(平時)와 비평시(非平時)를 가리지 않는다. 카뮈도 언급했지만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부와 권력을 지향하는 무리가 있는 탓이다.

역병과 인류!

사실 사적으로 인류의 역사는 역병과 같이하였다. 인류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만들었던 환경과 역시 연계되어 있다. 그 배경이야 어찌 되었든, 역병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피폐하게 한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어떠한가!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그리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 옛 문헌을 참고하면 이렇다.

역병은 ‘천심을 살피지 못하고 군주의 부덕과 국정의 그릇됨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조세를 감면하거나 죄수를 풀어주고, 근신하였다(警戒不怠 顧省不遺 夙夜祗懼,不敢寧處 以承天心).’ 또한, 군주의 반찬 수를 줄이기도 했다(減膳 순조실록 24권)고 한다. 반찬 몇 개 제외한다고 역병과 백성의 근심이 사라진다면 좀 좋을까! 어림없다. 또한, 각종 질병에 대한 기록은 전근대적 군주가 어떠한 마음가짐을 보였는지를 알려준다.

반면, 이러한 군주의 마음과는 거리가 먼 벼슬아치들이 더 많았다. 고려 때는 물론이고 조선 말기로 들어서면 각종 역병과 난리 등이 잦았다.

전의감(典醫監), 혜민서(惠民署), 활인서(活人署) 등이 있었지만, 고려와 조선 시대 군주 역시 역병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질병에 대한 사회적 위기는 매우 극심했다. 위생과 민생이 취약한 일반 서민은 말할 것도 없고, 제사(祭祀)와 신줏단지(坛位)를 지극히 섬기는 사대부도 역병에는 이를 넘길 정도이었다.

그리고 역병을 피할 곳을 찾았다(避所). 이는 약을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었던 탓이다. <페스트>에서 고발하고 있듯이 ‘그 혼란한 틈을 타서 돈을 벌려는 무리’도 있던 탓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지방 행정관료, 즉 아전들의 횡포 역시 역병 못지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아전들의 횡포가 역병의 원인은 아니지만, 민심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예컨대, 부역의 초과인 부렴(賦斂), 없어도 앗아가는 늑탈(勒奪) 등이 횡행(橫行)하는 등 소위 삼정의 문란(三政-紊亂)도 한 몫 단단히 하였다.

이는 비단 특정 시공간의 문제는 아니다. 하여튼 그렇다. 사적으로 한국사에서 세종대왕의 통치기는 그나마 이상적인 정치가 있었다고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군주의 인품과 지배층 벼슬아치들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世宗實錄) 권(90)과 권(91)>에 따르면 약을 다루는 ‘전의감·혜민국·제생원’ 등에서의 전횡(專橫)이 있었다. 질병이 만연한 상황에서 약을 다루는 이들이 약값을 올려받는 사태가 일어났다(賣藥價過重 故大小病家未易市買救活). 그로 인해 약값과 수량을 조정할 필요가 있으며(其餘藥價 更加磨勘 酌量差減), 이는 해악(反爲有害)한 것으로 이를 엄단하게 해야 한다(一禁私劑 從之)는 상소가 그것이다. 세종 22년 여름(7월 28일)과 겨울(11월 22일) 의정부와 승정원에서 간한 내용이다. 그리고 임진란 이후 사회질서가 느슨해진 1828년 <순조실록(純祖實錄) 33권 (辛丑/召見藥院諸臣)>에 따르면 그 폐단이 몹시 심했다.

본원에서는 삼정(蔘政)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강원도 공삼(貢蔘)에 온갖 거짓이 점점 더해지고 있는데, 지난번의 간사한 무리에 이르러서는 더욱 극심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공용(公用)의 본 물건의 근수를 줄여서 내다 파는 길을 열어 놓았기 때문입니다(本院所重 莫過於蔘政 而挽近江貢 百僞漸滋 甚至向日作奸之類 而極矣 此專由於秤縮公用之本色出給 以開轉賣之路故也)

상황이 이러다 보니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그 폐단이 수정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각의 정도를 넘어선다. 정조대왕(正祖)과 순조(純祖)를 거친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그에 대하여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詩文集 卷5)>에서 운문으로 이를 고발하였다. 그의 서사시(敍事詩) 중의 하나인 ‘파지리(波池吏 파지방 아전)’가 그것이다.

吏打波池坊 아전들 파지방 들이치는데
...
疫鬼雜餓莩 역질(疫疾)로 죽은 귀신에 이래저래 굶어 죽은 시체들
...
中有一貧士 그중에 가난한 선비 하나가 있더라니
瘠弱最伶俜 삐쩍 여위어서 그 걸음도 비틀거리며
號天訴無辜 하늘에다 울부짖어 억울하다 호소를 하는 데
哀怨有餘聲 그 부르짖는 원성이 울리어 메아리 치는고나!
...
立威更何時 고작 그만한 위엄을 언제 세워보기는 하겠냐마는
指揮有公兄 아전의 저 공형(公兄)놈들이 직접 나섰고나!

아마도 정약용이 실학과 천주교에 대한 탄압으로 ‘파지방(波池坊)’, 즉 강진(康津)으로 유배되었을 때 보았던 실정(失政)을 서술한 것으로 추정된다. 18년 동안 그가 목도했던 ‘파지방(波池坊)’만 그러했을까! 그리고 공형(公兄)은 호장(戶長), 이방(吏房), 수형리(首刑吏)로 이들을 싸잡아 삼공형(三公兄)이라고 하였다.

위의 운문에서 ‘역질(疫疾)로 죽은 귀신에 이래저래 굶어 죽은 시체(疫鬼雜餓莩)’라는 표현이 나온다. 일반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닦달하는 아전들의 횡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회적 질서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묘사와 아전들의 비인도적인 작태는 차마 읽기에도 참혹하다. 세(稅)를 악의로 내지 않는 것이라면 몰라도 역병과 백성의 황폐한 살림살이를 목민(牧民)하지 못한 일선 행정관리들의 오류를 비판하고 있다. 그치(癡)들의 벼슬이 높고 낮음이 아니라 ‘불행을 틈탄 비인간적인 욕망이 모질게 넘친 것이다.’

사실 재난과 재앙은 사회 지도층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력은 있어야 한다. 조선 시대, 허준(許浚 1539-1615)의 <동의보감(東醫寶鑑 1610년에 마침)>이 편찬되었으나 제대로 보급이 되지 않았다. 인쇄의 미발달과 교통수단의 미비 못지않게 사회계층 구분은 확실히 문제이었다. 하멜(Hendrick Hamel 1630-1690)도 언급한 바와 같이 중인이라는 특정계층(Chungin Specialists 專門職中人)에 한하여 의술을 잡기(雜技)로 취급하였던 탓도 있다. 사회계층의 평준화를 위한 시도도 아니고, 그저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를 통해 인간이 인간을 군림하려는 작태를 보여준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그 희생과 봉사로 이를 해결하고 보편적인 인간애를 보여주는 영웅들이 있기 마련이다. 위기에 나타나 이를 해결하는 이를 영웅이라고 할 경우, 사실 영웅은 필요하지 않다. 영웅이 없어도 될 사회라면 굳이 이들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위기를 대비하여 국가적으로 상설한 것이 행정(行政)이다. 사무(事務)와 안보(安保)로 구분되는 이것은 카뮈의 <페스트>에서 나타난 비인간적 혐오를 막기 위한 사회적 최선책이기도 하다. 코로나-19사태로 인해 ‘약값’을 올려 받는 작태도 그리고 없는 이들을 몰아대는 ‘파지리(波池吏)’와 같은 어떤 형태도 없어야 한다.

사실, 전염병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공포이다. 알려지기로는 사망자 수가 1500만 명 정도인 제1차 세계대전의 숫자보다 훨씬 많았던 1918년 스페인 독감은 유럽에서만의 상황은 아니었다. 그해 한반도에서만 14만 명이 사망했다고 조선총독부가 밝힌바 있다(매일일보 1918년 11월 9일자>와 <신동아> 2007년 4월호 참조>).

코로나19 발생 두 달이 넘은 시점(3월 29일 기준)에서 통계발표가 불투명한 국가를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적 확진자의 수는 66만을 넘어서고, 사망자는 3만을 넘었다. 치사율 4%대를 넘는다. 국내는 9천5백여 명 그리고 치사율 1.4%로 사망자 150여 명이다. 한국의 제1 동맹국, 미국은 8만5천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1천600여 명에 달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예전에 없는 정치적인 현상도 등장했다.

트럼프(Donald Trump) 미(美) 행정부는 3월 17일 자국민에게 1000달러(약 120만 원)의 현금지원 그리고 1조2000억 달러(약 1486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말하자면, 전례 없는 코로나-19 때문에 실시하는 미국판 ‘재난 긴급지원 소득’이다. 미국은 IT 버블 붕괴로 인하여 2001년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와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7-2009년에 두 차례 성인 1인당 300~600달러를 지급한 바도 있다. 어려운 시기를 버틸 수 있게끔 나눠주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마땅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이는 2020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하다가 사퇴한 앤드루 양(Andrew Yang 1975-)의 공약과 맥을 같이한다. 대기업에서 돈을 걷어 국민에게 나눠주자는 앤드루 양의 대선 공약인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이 그것이다. 트럼프의 ‘경기부양과 생활고 감축을 위한 현금지급’은 역세(逆稅)의 발상(idea of reverse taxation)이지만, 일시적인 조치로 정기적인 ‘배당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어찌 되었거나 국민이 어려울 때, 생활고를 덜어 주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이다. 물론 수령에 대한 조건은 없다. 세금을 낼 때 조건을 달지 않듯이 역시 보조금 역시 조건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이보다 앞선 3월 10일 전주시가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전주시 저소득 주민의 생활안정 지원조례’에 근거해 시(市)의 자체 예산 250억 원을 긴급 투입하기로 하였다. 낮은 지방자립도를 따른 지자체 예산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추구될 리는 없지만, ‘생활고를 덜기 위한 긴급자금’을 배당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려워야 할 까닭도 없다. 행정의 일차적 목적은 ‘그리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겠다고 했으며, 그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사회적 위기가 발행되었을 때에도 일선 행정 지도층과 담당 공무원의 진가는 드러나야 한다. 평시(平時)이든 위기시(危機時)이든 이들의 역할은 그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무와 현장은 같은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알다시피, 이번 코로나-19는 건강한 사람에게도 전이되고, 그 전이는 또 다른 사람에게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하여,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곳이 있다. 대형 할인점과 시설(교육, 종교 등 포함) 등이 그것이다. 필수품은 택배 등의 방법으로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사람이 모여야 하는’ 시설과 기관은 다르다. 원격교육이 아니라면 면대면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는 차원이 다르다. 3월의 개학과 개강을 넘어서 4월의 그것들도 역시 불투명하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과 몸이 바쁘거나 분주할 수 없는 종사자들이 있다. ‘의료와 약’의 분야와 관련 ‘행정 공무’의 분야가 그것이다. 먼저, 민원과 공무를 담당하는 이들이 바빠지게 마련이다. 또한, 그러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누가 감염자인지’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역세(逆稅)의 발상’으로 ‘생활고에 따른 기본생활안정 지원’과 같은 배당은 ‘굳이 얼굴을 맞대고 하지 않아도 된다’. 첨단전자 수단의 발달에 따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은 형편이 다르다. 알려지기로는 일선 행정기관에서 ‘사람이 많이 몰리는’ 종교와 교육 등과 관련한 시설에 대하여 ‘확진 방지 노력을 당부한다’라는 협조공문을 보낸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다만, 문제는 ‘일일이 기관 담당자는 물론이고 비접촉 체온계(noncontact-type thermometer)를 갖추어 왕래하는 모든 이들의 신원을 기록해야 한다’라는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신원파악을 위한 기록은 그렇다고 치고 비접촉 체온계는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시중에서 구하기도 어렵다. 구하기도 어렵고 국내 공교육기관과 준 교육 시설의 수만큼 시중에 판매되고 있지 않다. 설사 있다고 하여도 그리고 게다가 왕래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다른 시설에서는 오가는 모든 이들을 확진 점검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그렇다. 이는 꼬박꼬박 봉급이 나오는 곳의 실정과 단순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일하는 시간만큼 돈 버는 사적(私的) 기관은 다르다. 위의 도구를 갖추지 못하면 시설문을 닫아야 한다. 그만큼 가계수입을 줄어들게 된다. 위의 ‘생활자금 지원’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런데 ‘이를 어겨서 확진자가 나오면 책임까지도 묻겠다’라는 해석이 가능한 표현이 안내된다. 점검 장비를 주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알아서 갖추었다고 하여도 불확실한 보균자와 감염자를 대하는 것도 꺼림칙한 데, 그 장비를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구할 것이며 그 수량은 마련되어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그 많은 시설에 적은 수의 공무원이 다 점검하기도 불가능하니 ‘일단 공문’을 보내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돌리는 것일까!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역병이건 황폐화된 살림이건 적정하지 않은 세금도 그렇지만, ‘그냥 책임을 전가하는 파지대방(波池大坊)의 삼공형(三公兄)과 뭐가 다른가!’ 민원은 현장이 가장 중요하다. 민원 현장에서 종사하는 이들과의 우호적 협조를 위한 자세가 절대적이지만 현장은 몹시도 그렇지 않다. 민원행정은 ‘이러한 위기를 대비하여 있다’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면대면 접촉이 누구라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민원인의 사적 수입과 행정공무원의 봉급은 차원이 다르고 그 민원을 해야 할 접근의 성격도 다르다. 매일 같이 경찰공무원, 소방공문원 그리고 군인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더 앞서야 하는가’는 자명하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가격이 만만치 않게 올라있다. 3월 현재 비접촉 체온계의 가격은 4~5배로 올라있다. 혹여 코로나-19에 대한 예방 차원에서 ‘그렇다고 하더라’라는 약들 역시 상황은 같다. 일선 약국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일부 약국에서는 있다고 하더라도 약값을 대폭 올려서 판매한다.

그 흔하던 마스크도 그러했다. 주문이 쇄도하니 탄생 연도의 끝자리 수로 나누어서 구매해야 하는 실정이 이를 말한다. 가격도 가격이다. 그야말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종과 순조 때 ‘올려받는(市買救活)’ 그리고 ‘그 정도가 극에 달하는(百僞漸滋 甚至向日作奸之類 而極矣)’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이러한 위기에 적용되어야 할까! 그것이 사회적이고 인간적인가! ‘병자를 두고 거래하지 않는다’라는 심의(心醫)까지는 아니더라도 제품에 부착된 ‘희망가격’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위와 같은 비판의 내용은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아니다. 또 그래서도 아니 된다. 다만, 일어탁수(一魚濁水)를 경계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한 마리 미꾸라지를 잡는 것과 동시에 두렁이 샐 수 있는 요지를 막자’라는 민원의 해결도 포함된다. 간략하게 반추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행정적 접근이다. 이번 사태와 같이 확산방지 과정에서 누가 민원을 담당해야 하는가는 뚜렷하다. 반복되지만 민원행정의 장소는 민원인이 있는 현장이 되어야 하고, 군림하는 태도는 물론이고 안일한 공무의 모습을 보여서는 아니 된다. 동시에 각 지자체는 공중 시민위생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는 공원 등 특정 장소에 있다. 관리 요원을 두되 간단한 세면과 세수를 위한 세척제도 같이 구비하여 무상 혹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누구든지 이용하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의료정책의 접근이다. 의료는 다른 것과 차원이 다르다. 생사를 결정한다. 따라서 인구 밀도당 의사와 약사의 분포가 적절한 수준인가를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2002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스(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 SARS), 2015년 호흡기감염증,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 MERS-CoV) 등의 의료공포는 잊을 만하면 출현되고 있다. 이에 대한 의료 대처를 위해서라도 가정의학의 지식도 사회적으로 더 교육할 필요도 있으며, 그리고 향후를 대비하여 현재의 의사와 약사 배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재구상할 때이다.

끝으로, 인도주의적 접근이다. 사스(SARS)나 메르스(MERS-CoV)에 대한 염려는 사그라진 듯 보인다. 하지만, 현재도 사스나 메르스의 치료법과 예방약은 알려지지 않았다.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렇다.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는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누구라고 이를 피해갈 수 없다. 다행, 한국이 생산하는 코로나-19 검진 도구(test kit to detect Covid-19)에 관하여 세계의 인식이 긍정적이다. 이런 면에서 인도주의적 보편적인 가치 확산을 위해서 검진의 도구는 물론이고 백신의 개발이 있게 되면 경제적 척도가 아닌 최소한의 비용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불안한 이들을 구하는 인도주의적인 한국의 이미지를 널리 알리는 것이 요구된다. 가장 우선하여 자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만, 단기적인 경제적 수준과 동시에 장기적인 외교의 관점에서도 투사할 필요는 있다. 한국은 수출하여 먹고 사는 나라이다. 이 못지않게 인류애 차원에서 그리고 이 지구에서 사는 존재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하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불안하면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선 언급된 <카뮈의 페스트>를 읽는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불안한 심리를 그를 통해 극복하려는 것이다. 그만큼 다급하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또 나이도 들어가지만, 그것이 무언가를 깨달아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된다. 삶이 주었던 대처의 노련한 요령이 늘어갈 뿐 무지를 극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절망적 위기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 희망은 자연적 바이러스에서가 아니라 비인간적 바이러스로부터 먼저 해방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도 코로나 확산방지와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의료진과 일선 공무원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성광미디어와 그 운영진들은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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