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양사언 어머니의 지혜와 희생
<수필> 양사언 어머니의 지혜와 희생
  • 이기성 기자
  • 승인 2020.04.0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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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식 /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성동문인협회 이사
최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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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채널A에서 방영하는 사극 천일야사 중 「첩의 운명-서자의 굴레」의 끝 부분을 보았다. 우연히 본 사극의 끝부분이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이 이야기가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의 작자로 널리 알려진 양사언에 관한 이야기란 점이고, 다른 하나는 아들의 ‘서자의 굴레’를 벗겨 주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뜨거운 모성애가 비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사언과 그의 어머니에 관해 살펴보았다.

양사언(楊士彦, 1517년~1584년)은 조선의 문신이며 서예가로,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에서 태어났다. 1546년(명종 1) 문과에 급제하여 강릉부사, 함흥부윤, 회양군수, 철원군수 등을 지냈다. 회양군수로 있을 때 금강산에 자주 가서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곤 하였다. 여름 금강산의 이름인 봉래(蓬萊)를 자신의 호로 정한 것은 그가 금강산을 매우 사랑하였음을 말해 준다. 그는 해서(楷書)와 초서(草書)를 잘 쓰는 명필로, 안평대군(安平大君)·김구(金絿)·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로 꼽힌다. 문집으로 <봉래집(蓬萊集)>이 있고, 가사 작품으로 「미인별곡(美人別曲), 「남정가(南征歌)」가 있다.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역시 그의 작품이다.

양사언과 그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계서야담(溪西野談)>에 2편, <청구야담(靑丘野談)>·<해동야서(海東野書)>·<동야휘집(東野彙輯)>·<기문총화(記聞叢話)>·<선언편(選諺篇)>에 각각 1편씩 수록되어 있다. 이들 문헌의 기록은 양사언 어머니의 사람됨과 지혜, 뜨거운 모성애를 알게 해준다.

양사언의 아버지가 고을 원님이 되어 부임하러 가는 길에 어느 농촌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점심때가 되어 한 농가에 들르니, 혼자 집을 보던 소녀가 맞이하였다. 점심을 먹게 해줄 수 있느냐는 양공의 말을 들은 소녀는, 들로 일하러 나간 부모를 부르지 않고, 혼자서 점심밥을 지어 일행을 대접하고, 말에게 먹이를 주었다. 양공은 그녀의 지혜롭고 반듯한 말과 행동에 감탄하였다. 그는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가지고 있던 빨강․파랑 부채를 주면서, 농담으로 ‘채단(采緞) 대신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소녀는 양공의 이 말을 진담으로 받아들여 마음에 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양공을 찾아가서, 지난해에 한 소녀에게 빨강․파랑 부채를 준 일이 있는가를 물었다. 양공이 이를 인정하자, 그는 그 일로 자기 딸이 다른 사람에게는 시집가지 않겠다고 하니, 어찌하면 좋겠는가를 물었다. 양공은 한참을 생각한 뒤에, 그녀를 소실로 맞이하였다. 그녀는 양공의 소실이 되어 남편을 지성으로 모시면서 아들 사언과 사기를 낳아 길렀다. 그리고 일찍 세상을 떠난 본부인을 대신하여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본부인이 낳은 아들 사준을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신분질서로 보아 농민의 딸인 그녀는 양공의 정실부인이 될 수 없어 소실로 살았다. 따라서 그녀가 낳은 두 아들은 서자로 살았고, 장성한 뒤에는 벼슬길에 나갈 수 없는 신세였다. 그녀는 이러한 적서(嫡庶)의 차별제도를 벗어나고 싶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들이 그 굴레를 벗을 수 있는 방도를 궁리하였다.

위 문헌에 실린 이야기에서 아들의 ‘서자 굴레’를 벗기려는 그녀의 노력이 두 가지로 이야기된다. 그녀는 남편을 졸라 서울로 올라와 사대문 밖에 아담한 집을 지어놓고, 좋은 선생을 모셔서 아들들이 경서(經書)와 시문(詩文)에 능하게 하고, 선비의 몸가짐을 익히게 한다. 어느 날, 미행(微行)을 나왔다가 비를 만난 임금이 비를 피하려고 그 집에 들렀다가 소년 형제의 접대를 받는다. 임금은 경서와 시문에 능하고, 언행이 반듯한 소년 형제의 비범함에 크게 감복한다. 그래서 소년 형제를 대궐로 데리고 가서 세자의 친구 겸 스승으로 함께 지내게 한다. 그녀는 서자인 아들이 세자의 친구 겸 스승이 되게 함으로써 그들의 앞길을 열어 준다. 이 이야기에서는 그녀의 예지(叡智)와 지모가 돋보인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양공이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양공의 시신을 입관(入棺)한 뒤에 친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장남에게 말한다. “이번에 삼년상을 치른 뒤에 내가 죽으면, 나는 서모이니 반년상(半年喪)을 치를 것 아니냐! 그러면 사언과 사기가 서자인 것이 널리 알려질 것이다. 지금 내가 죽어 아버지와 함께 삼년상을 치르면, 두 아이가 서자인 것이 드러나지 않게 된다. 두 아이가 서자인 것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면, 내가 마음 편히 아버지 곁에 눕겠다.” 사준과 친족들이 그녀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자, 그녀는 여러 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 자리에서 자결하였다. 사준은 서모와의 약속을 지켜 두 아우를 족보에 올리고, 친동생으로 대하여 서출의 굴레를 벗게 하였다. 본부인의 아들을 친자식처럼 기르고, 친족의 인정을 받은 뒤에 자기의 목숨을 바쳐 아들의 장래를 열어준 그녀의 행동은 모성애의 극치를 보여준다.

양사언은 이런 어머니를 두었기에 서자임에도 불구하고 경서와 시문, 글씨에서 뛰어난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지혜와 능력을 갖춘, 청렴한 목민관이 되어 칭송을 받았다. 소실이라는 어려운 처지에서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양사언의 어머니는 이율곡, 한석봉의 어머니 못지않게 훌륭한 어머니였다. 자녀를 실력 있고, 반듯하게 기른 뒤에 스스로 앞길을 열어가게 한 양사언 어머니의 교육 방법과 태도는 현대의 어머니들이 본받아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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