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자 전 거  
<수필> 자 전 거  
  • 성광일보
  • 승인 2020.05.0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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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승률 
유승률 /  광진예술인협회 명예회장광진사진작가회 회장역임광진문협 회원
유승률
<광진예술인협회 명예회장/광진사진작가회 회장역임/광진문협 회원>

자전거는 내게 퍽 친근한 대상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하루 60여리 길을 자전거로 통학했다. 시골에서는 자동차가 드물어 먼 곳 학교를 다니는데 자전거는 꼭 필요한 한 교통수단이었다. 친구들과 학교를 오가며 언덕길 먼저 올라가기, 평지에서 느리게 가기, 달리다가 뒷바퀴로 미끌어지며 방향 바꾸기 같은 묘기를 할 때 자전거는 우리에게 장난감이었다.

 요즘 들어 건강상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헬스 센터에서 하는 운동은 의무감으로 일하듯 하게 된다. 묵묵히 덤벨을 들어올리거나 러닝머신 위를 한 시간 씩 걷기란 너무 재미없는 일이다. 좀 덜 지루하고 하기 좋은 운동이 없을까. 운동이란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땀을 흘리고 해야 운동다운 운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조건에 딱 맞는 것이 자전거였다. 시간을 내어 조금만 나가면 한강둔치를 달릴 수 있지 않은가. 새벽에 자전거에 카메라를 걸고 나가 물안개 속을 나는 물새와 강변에 핀 꽃도 찍을 수도 있겠다. 운동도 하고 촬영도 하고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지난여름, MTB 자전거를 하나 샀다. 이 자전거는 산악용(mountain bike) 답지 않게 무척 가볍고 날렵하다. 세워 놓고 바퀴를 돌려보면 “째르르르---”하는 프리 휠의 경쾌한 기계음을 들으면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마치 잘 포장된 길을 신나게 달리는 것 같은 환상에 빠지게 된다. 수시로 자전거를 만져보고 들어보고 타이어를 눌러 공기압을 확인해 본다.

  그리고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자전거를 탔다. 춥든, 덥든, 새벽에 나가기도 하고, 일이 끝난 밤 10시에도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렸다. 그때마다 “자전거를 사라. 만약 네가 살아있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떠 올리며 더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날, 왕숙천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영하의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자전거 타기에는 좋지 않은 날씨였다. 그래서인지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바람의 저항을 줄이려 허리를 굽혀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앞쪽에 약간 속도가 느린 자전거 하나가 나타나 나는 그 뒤를 조금 딸아 가다가 추월을 하였다. 추월 시 높아졌던 속도가 정상으로 조금 낮아졌을 때 쯤, 내가 추월했던 그 자전거가 내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가 나를 추월하려나 싶어 속도를 조금 늦춰 주었으나 그는 추월하지 않고 계속 내 뒤를 바짝 따라 온다. 길 앞뒤가 텅 비어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계속 내 뒤를 바짝 쫓아오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 사람을 떼어놓을 생각으로 속도를 높였다. 그러자 그도 속도를 높여 계속 내 뒤를 쫓아왔다. 뒷사람을 떼어놓으려고 애써 달리는 앞 사람과, 앞 사람에게 떨어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쫓아가는 뒷사람, 두 사람은 묘한 경쟁상태가 되어버렸다. 바람소리가 귀에 휙휙 거리지만 그 사람이 계속 쫓아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분명 바람막이로 나를 앞세우고 바람의 저항을 덜 받으려고 내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는 듯 했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자기 힘대로 타면 될 것이지, 남의 뒤를 이렇게 바짝 쫓아올게 뭐람!

두 사람은 그렇게 몇 킬로미터를 달렸다. 바람이 더 거세지고 오르막이 나타나자 속도가 떨어졌다. 뒷사람을 떼어 놓으려면 달리기 힘든 오르막이 좋다. 나는 엉덩이를 들고 힘껏 페달을 밟았다. 언덕을 올라 갈 때 내가 잘 쓰는 “덴싱 페달링”이었다. 바퀴가 다리의 힘을 받아 자전거가 쭉, 쭉 나갔다.

그런데 오르막 경사로의 정점 부근에서 핸들이 휘청거리더니 순식간에 땅과 하늘이 빙글 돌았다. 그리고 몸에 심한 충격이 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자전거와 함께 도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헬멧이 땅에 닿아 있었고 부러져 나간 썬 그래스의 까만 다리 하나가 눈앞 아스팔트 위에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비뚤어진 핸들을 바로 잡고 벗겨진 자전거 체인을 다시 물린 다음 바퀴를 돌려보았다. 자전거는 이상 없는 것 같았다. 몸도 땅에 부딪친 곳이 얼얼할 뿐 특별히 아픈곳은 없었다. 뒤 딸아 오던 사람이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를 책망 할 수가 없었다. 다친데 없으니 가라고 손짓 했다.

나는 도로 경계석 위에 앉아 사고지점을 바라보았다. 서서 페달을 밟다가 도로의 정점 직전에 엉덩이를 내리고 안장 위에 앉았어야 했다. 언덕을 올라 올 때 받은 탄력으로 도로의 오르막 정점을 넘어 이미 빨라진 바퀴에 발의 동력 전달하지 못한 페달이 한 스텝 헛돌았다. 순간 핸들이 흔들리고 중심을 잃은 몸이 길 위에 처박히게 된 것이다. 물리적인 이유는 이것이었다.

하지만 사고의 원인은 쓸데없는 나의 경쟁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이 바짝 쫓아오는 것이 싫었다면, 그 사람보다 월등히 앞선 속도로 멀리 떼어 놓든지, 아니면 아예 천천히 가서 그 사람을 앞세우는 것이 안전한 라이딩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비록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지만 위험하기는 도로 위의 자동차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하게, 경쟁하지 말고 방어운전을 해야겠다. 건강을 위하여 타는 자전거가 건강에 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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