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고전13:6) 2020.05.11
“추사체가 제주도 귀양살이 이후에 성립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정설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 환재 박규수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추사의 글씨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그 서법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중략).
만년에 (제주도 귀양살이로) 바다를 건너갔다 돌아온 다음부터는 구속 받고 본뜨는 경향이 다시는 없게 되고 (…) 대가들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일가를 이루게 되니 신(神)이 오는 듯, 기(氣)가 오는 듯,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듯했다.’”
유홍준 저(著) 《추사 김정희》 (창비, 15-1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추사 김정희는 여러 분야에서 높은 경지를 이루었지만 그의 최고의 업적은 개성적인 글씨체인 추사체에 있습니다. 그런데 추사체는 단순히 글씨 쓰는 기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당대 청나라의 고증학과 금석학 등 깊은 학문과 예술이 어우러진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긴 귀양살이를 통해 심화된 내공의 결정체였습니다. 까칠한 사람이었던 김정희는 사람들과 많이 부딪혔고, 다른 사람의 서예를 혹평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그가 고난을 먹고 달라지며 추사체를 만들어 갔던 것입니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지적하듯이 고난에 대한 태도가 공동체와 개인의 흥망성쇠를 좌우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67)
한재욱 목사
강남 비전교회
서울시 강남구 삼성2동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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