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향기가 그리워질 때면
그대 향기가 그리워질 때면
  • 성광일보
  • 승인 2020.05.1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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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 / 논설위원
송란교 / 논설위원
송란교 / 논설위원

텅 빈 마음 속 마른 고목으로 그리움이 실바람에 실려 머뭇머뭇 진한 안부로 다가온다. 꼼지락거리는 아지랑이 따라 먼 길 찾아오는 길손은 어찌 그리도 굼벵이 기어오듯 더디게 오는지 모르겠다.

어제는 친정 엄마의 다정한 손길 같은 봄을 만끽하면서 둥글넓적하고 탐스런 튤립이 활짝 피어나더니 오늘은 시어머니의 매서운 눈초리 같은 겨울로 되돌아 간 듯 꺼끌꺼끌하고 뾰족한 청보리 한 무더기가 고개를 내민다.

산란기를 맞은 잉어 떼들이 안양천을 흐르는 잔물결 따라 느릿느릿 흐느적거리는 물풀 사이에서 아우성치며 퍼덕거리니 천둥소리 요란하게 들려오고, 왜가리는 그 옆에서 조그만 물고기를 잡기 위해 길쭉한 목과 날카로운 부리를 사정없이 물속으로 찔러대고 있다.

떠도는 구름 따라 흐르는 강물 따라 삶의 시간들이 그렇게 다가오고 있다. 세상은 언제나 기분 좋게 기다리던 금요일 밤은 아닌가 보다. 세상을 아름답게 살려 거든 꽃처럼 살고 세상을 편안하게 살려 거든 물처럼 살면 된다고 하지만 꽃처럼 물처럼 산다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래도 둥글게 살아보겠다는 흉내는 내보려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하지도 않겠지요. 안될 이유가 있으면 될 이유도 있을 것이다. 간단하다 생각하면 어렵지 않지만 어렵다 생각하면 쉬운 것도 어렵게 느껴진다. 해보지도 않고서 하지 못했다는 변명은 호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아껴보려 한다. 단순하지만 복잡하고 복잡하지만 간단한 것은 마음이 결정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면서 달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눈으로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고 마음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보고도 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음 한잔에 인정과 눈물이 녹아있다. 하만 스타인은 ‘울리지 않는 종(鐘)은 종이 아니며 부르지 않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며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했다. 그래서 오늘은 무조건 누군가에게 그리운 안부를 전해보려 한다. 누군가는 이 세상을 향기로 물들이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향기에 물들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향기에 절대로 물 들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종이에 향기로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보자. 함께 부대끼며 살다보면 따라 하기를 통해 닮아가기도 물들어가기도 할 것이다. 함께 보낸 시간만큼 채워지는 것도 겹치는 것도 많아질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쌓이는 인연들이 탐욕과 분노와 불평이 아닌 희망과 사랑과 행복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대 향기 안에서 미소를 짓고 싶다.

나도 그대 향기에 물들고 싶다. 너는 나의 마음을 싱싱한 초록으로 물들이고 나는 너의 마음을 잘 익은 단풍으로 물들이면 좋겠다. 같은 색을 칠하고 같은 향기로 목욕하고 같은 몸짓으로 뒹굴어 생각이 조금씩 엇비슷해지면 좋겠다. 같은 주파수를 맞추어 놓고 함께 웃을 수 있고 같은 핏줄인 듯 비슷한 구조의 DNA를 지니고 있는 그 사람의 향기에 취하고 그렇게 닮아 가면 좋겠다.

타는 가뭄에 개미 한 마리만 지나가도 누런 먼지가 펄펄 휘날리고 떨어트린 달걀 노른자위가 사방으로 퍼지 듯 갈기갈기 흩어진 마음들을 촉촉하게 적셔줄 단비 같은 너의 미소가 그립다. 그대 눈동자에서 보름달이 굴러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대 마음에서 시원한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대 입에서 얼쑤절쑤 장단 맞추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외로운 별은 홀로 빛날 수 있겠지만, 서로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넣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배려한다면 그 별은 더 이상 쓸쓸하진 않겠지요? 정이 메말라 소화불량 걸리면 인생도 불량이다. 냉장고 문을 열어두면 춥다고 문 닫으라 울부짖고 대문을 열어두면 도둑이 들어오지만 마음의 문을 열어두면 행복이 들어온다. 그 문은 나를 위한 문이다. 기분이 우울하면 하늘에 기대고 마음이 슬프면 가슴에 기대고 사랑이 고프면 꽃에 기대고 이별이 슬프면 달에 기대라. 기댄다는 것은 마음이 스며드는 것이고 마음이 곱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쉬운 미련을 시렁에 걸어두지 말고 지금 당장 따뜻한 안부를 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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