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의 기초와 실천: 구휼과 공무 행정의 마인드
사회성의 기초와 실천: 구휼과 공무 행정의 마인드
  • 성광일보
  • 승인 2020.05.1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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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항석 / 논설위원

구휼(救恤)!

정항석

이는 경제적으로 가난하거나 생활이 힘든 이들에게 곤궁을 덜어 주는 것을 말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이러한 사례는 많다. 그리고 구휼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i) 하나는 현물(곡식)과 현금을 빌려주었다가 일정 기한(수확기)에 상환받는 진대(賑貸)이고, ii) 또 다른 하나는 무상으로 지급하는 진휼(賑恤)이다.

지난 4월 16일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하여 관계부처합동(기획재정부 복지예산과.기획재정부 행정예산과.행정안전부 재정정책과.보건복지부 복지정책과)으로 ‘고액자산가 제외 기준 등 긴급재난지원금 세부기준’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각종 시중의 금융기관으로 중소상인과 빈곤층을 위한 저리의 대출을 진행하게도 했다. 현물이 빠진 진대와 진휼을 섞은 것으로 적절한 조치이고 박수를 받을 만한 공식적 결정이다.

그러나, 긴급재난지원자금을 신청하는 첫날, 5월 11일 ‘긴급재난지원금을 실수로 기부했다’라는 상당수의 국민적 항의와 불만이 거셌다. 기대만큼 실망이 비례했다. 문제는 뜬금없는 기부에 있었다. ‘기부’라니 무슨 의미인가! 기실, 지난 5월 8일 행정안전부는 9개 카드사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행안부-지자체-신용카드 간 업무협약 체결을 하였다’라고 보도자료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자료에는 ‘기부’에 관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재빠르게 실시 하루 만에 이 기부금 항목은 시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수기부’를 유도했다는 비판은 이를 담당한 공무행정기관이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른즉 이렇다. 각 카드사는 ‘재난지원금 신청 절차 마지막에 기부금 항목을 넣은 것은 정부의 가이드라인 때문’이라고 언론에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사는 재난지원금 신청 페이지를 구성할 때 혼선을 우려해 기부 항목을 별도로 두자고 하였지만 이를 담당하는 기관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선의로 하는 기부는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실수로 이를 유도하게 하였다는 것은 야비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이전에 없었던 것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촌극이라고 하여도 뒷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돌아보자. 건국 이후뿐만 아니라 민족사 이래 이전에 없었던 것을 코로나19(Covid-19)로 인하여 고초를 겪는 국민을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만큼 자연적 재난이 국민의 생활과 존립에 닥친 큰 위기라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이를 처리하는 이들의 몫은 그만한 태도와 정신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몇 걸음을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그리고 어떠한 생각에서 이른바, ‘긴급재난지원금’을 생각하고 있는지에 관한 의구심이 드는 현상이다. 우선, 1) 국민 세금으로 하는 공공기관의 할 일을 시중의 금융기관에 맡긴 것, 2) 자금을 받을 국민이 써야 할 곳을 지정해 준 것, 3) 컴퓨터와 모바일을 통한 신청할 경우 ‘기부항목’을 만들어 혼란을 준 것 등이 그것이다.

좋은 일에도 반성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고 하여도 무언가 개운치 않다. 이런 모습에 볼멘소리하는 것으로 그냥 넘길 일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주는 것이니 받아라’라는 생각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엄청난 오산이다. 국민을 너무 무시한 것은 아닌가!

1419년 세종 때(세종 1년 2월 12일)의 일이다. 연이은 흉년을 걱정하며 굶어 죽는 백성이 없도록 잘 살피라는 왕지를 내린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백성에 대한 관리들의 마음가짐을 다지고 있다.

‘백성이란 것은 나라의 근본이요,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과 같이 우러러보는 것이다. 요즈음 수한 풍박(水旱風雹)의 재앙으로 인하여, 해마다 흉년이 들어 환과 고독(鰥寡孤獨)과 궁핍한 자가 먼저 그 고통을 받으며, 떳떳한 산업을 지닌 백성까지도 역시 굶주림을 면치 못하니, 너무도 가련하고 민망하다... 만약 한 백성이라도 굶어 죽은 자가 있다면, 감사나 수령이 모두 교서를 위반한 것으로써 죄를 논할 것이다(民惟邦本 食爲民天. 比因水旱風雹之災 連歲凶歉 鰥寡孤獨窮乏者, 先受其苦. 至於有恒産之民 亦未免飢餓, 甚可憐憫 ... 如有一民飢死者, 監司 守令 竝以敎旨不從論)’.

일면 백성에 대한 세종대왕의 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당시가 태평성대는 아니라고 하여도 지도자로서 어떠한 자세와 정신을 가져야 하는지를 그리고 일선 공무와 행정을 맡은 관리들 역시 그러한 마인드를 지닐 것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흉년 등 자연적 재난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국가적 구휼에 대한 목민관들의 자세는 어디까지 헤아려야 하는지를 태조실록(태조실록 8권)은 다음과 같이 전하다.

때는 1395년 태조 4년 7월의 일을 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수령이 때때로 살피도록 하라. 노병(老病)이나 기곤(飢困)으로 밥 먹는 데에 나오지 못하는 자나, 양반(兩班)이라 i) 마음으로 부끄러워하여 먹는 데에 나오지 않는 자는 분간하여 별도로 알아서 구휼하게 하라. 수령으로서 ii) 여기에 마음을 쓰고 좋은 방법을 써라(守令以時考察. 其有老病飢困不能就食者 兩班男女心懷慙愧不屑就食者 分揀推考 別行賑濟. 守令有用心做辦)’.

혹여라도 i)과 ii)는 구휼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처지를 긍휼히 여긴 것이다. 과연 이번 긴급지원자금을 실시하는 공무 행정 담당자들은 이러한 자세와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12일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그렇게 경계하고 주의를 하고 있음에도 코로나 19(Covid-19) 때문에 사상자가 30만 명을 넘고 있다. 게다가, 백신이 나오지 않는 한 한국 역시 확산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렇다면, 향후에도 긴급자금지원은 또 이루어질 수 있다. 근자에 한국 의료행정은 세계적 찬사를 받고 있다. 다른 공무 행정 역시 이에 준하거나 넘는 수준은 되지 않을까! 그러기를 바란다.

1423년. 세종 5년 2월의 일이다(세종실록 19권). 세종대왕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전국적으로 흉년과 재난 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치세는 매우 국민을 안정시키려는 데 자세와 정신이 집중되었다.

‘진대(賑貸)하려 한다면, 시기에 맞추어 나누어 줄 수 없게 될 것이오니, 위의 항목에 말한 각도는 위에 아뢰는 절차를 제외하고 임인년에 환상(還上)한 수량에 의하되, 6개월에 한하여 진휼(賑恤)하고, 만약에 넉넉하지 못하면 임시(臨時)에 아뢰어 더 주도록 할 것입니다(若啓聞後發倉賑貸 則未得及期分與. 上項各道 除申啓 依壬寅年還上數 限六月賑恤 如有不敷 臨時啓聞加給)’.

절대적인 권력의 상징인 군주제가 시행되는 조선시대이다. 그러나, 정부의 지침에도 이를 어긋나게 하는 이들이 있었다. 공무 행정을 집행하는 이가 지침을 어기자 이를 처벌하였다. 1423년. 세종 5년 6월의 일이었다

‘기민 구제에 실패한 지곡산군수를 처벌하다杖知谷山郡守庾順道九十 以不能賑飢民也)’.

그렇다면, 실수로 기부를 유도하게 하였다는 가이드를 작성하고 이를 카드사에 지침을 내린 공무 행정을 담당한 이에 대한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순 실수라고 보기 어렵고, 그렇다고 하여도 그렇다.

물론 조선 초기에 안정을 다져야 했던 세종대왕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목민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준다(세종실록 76권). 1437년(세종 19년 1월 6일)의 일이다.

‘호조에서 아뢰기를, ‘하삼도는 쌀과 베[布]가 나는 곳인데, 잇달은 흉년으로 인하여 공부(貢賦)를 견감(蠲減)하였기 때문에 창고가 비고 고갈되어 나라의 용도가 장차 떨어지게 되었으니, 청하옵건대, 각품의 봉록을 감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라서 1품으로부터 2품까지는 콩 3석을 감하고, 3품으로부터 6품까지는 콩 2석을 감하고, 7품 이하는 콩 1석을 감하고, 면주(綿紬)와 정포(正布)와 동전(銅錢)은 모두 전감(全減)하였다. 호조에서 또 용도가 부족함으로 인하여 성균관생(成均館生)의 평상시 궤양(饋養)하는 수효를 감하기를 청하니, 생원 백 사람을 머물러 두고 재사(齋舍)에 기숙하고 있는 백 사람을 내보내니, 상사(庠舍)가 드디어 비게 되었다(戶曹啓 下三道米布之所出 連因凶歉 蠲減貢賦 倉廩空竭 國用將乏 請減各品俸祿. 從之. 自一品至二品減豆三石 自三品至六品減豆二石 七品以下減豆一石 緜紬正布銅錢 皆全減 戶曹又以用度不足 請減成均館生常養之數 留生員百人 放寄齋百人 庠舍遂空)’.

흉년으로 인하여 각 직위에 따라 그 봉록을 감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담당하는 공무 행정 관리들과 공부하는 유생들도 군소리 없이 받아들였다. 이미 오래전에 단지 최고 의사결정자만이 아니라 일선 공무 행정 담당자들이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백성은 곤궁하고 백성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봉록이니 당연히 이처럼 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으나, 군주를 신뢰하던 세종대왕의 시대와 오늘날과는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따져보자. 253개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서울시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재정자립도가 현저히 낮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중복되는 것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긴급재난지원금은 구휼의 성격이기 때문에 그 성격상 담보로 한 자산의 일부인 신용을 매개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처음 실행한다고 하는 것을 참작해도 다음의 것은 체크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세금으로 이루어진 긴급재난지원금을 왜 공공기관에서 지급하지 않는 것인가? 왜 시중의 금융기관을 통해서 하는가! 카드는 필연적으로 수수료를 발생시킨다. 둘째, 왜 사용처를 행정기관에서 가리는가! 모든 곳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사용하든 이는 국민이 판단할 몫이다. 국민 생활을 파악하기 위한 통계수집도 아니다. 셋째, 어디에 기부하라는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세수가 부족하다면 긴급자금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여 국민에게 먼저 물어야 하지 않았을까! 또한, 세종대왕 당시 실시했던 것처럼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봉급 역시 이에 준하여 삭감 또는 낮춰야 하는 것이 균형적이지 않을까! 봉급은 매년 오른다. 그런데 서민경제는 나아지지 않다.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다른 것은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카드사를 통하여 주는 것을 고안했다면 5월 11일의 상황과 다음의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당연히 카드로 한정할 경우 발생될 것을 예측했어야 했다. 했을까! 여하튼 다시 보자.

2017년도 기준으로 카드(신용과 체크)의 이용은 약 847조 3600억으로 시중은 추산하고 있다. 국세청은 얼마나 카드의 수수료율을 수거하는지를 제대로 밝히지도 않는다. 못하는 것인지 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시중에서 거래되는 카드 사용수수료는 평균 0.7-0.8%라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것이다. 얼른 계산해도 1천억을 훌쩍 넘는 수수료가 발생한다. 그만큼 긴급지원자금에서 감해지는 셈이다. 말하자면 주어도 다 주는 것이 아니다. 일부를 다시 챙겨가는 ‘깡’과 무엇이 다른가! 도대체 이러한 그 의중을 사전에 막을 수는 없었을까! 이러한 염려와 의구심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다는 아닐 것이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고 있으면서 실시했다면 전근대적 정신상태와 무엇이 다른 것인가!

국민으로부터 거두어 드린 세금을 국민을 위하여 쓰는 것이 그렇게도 아까운가! 본디 누구의 것이던가! 왜 그런가! 이러한 자세가 지금까지 해온 실체인가! 아니라는 해명이 필요하다. 더욱이, 이번 긴급재난지원금은 가중되는 생활고를 일시적으로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나아가 이것으로 선순환 경제의 물꼬를 조금이나마 트게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알면서 실시하려고 했다면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부이겠지만 그리고 이 같은 태도와 정신이 계속된다면 큰일이다.

온통, ‘옳다 그르다’에 관한 것이 아니다. 자세와 정신 등 마인드를 묻는 것이다. 바뀌어야 한다. 아니 바뀌게 해야 한다. 문제는 정치인은 선출을 통해 바뀌기라도 하지만, 한번 철밥통을 꿰찬 공무 행정의 자리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것도, 자질과 능력의 유무와 상관없다. 잘하는 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잘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일부가 미칠 부정적 걱정을 덜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참된 공무 행정가(공무원)를 가리기 위해서라도 변화는 불가피하다.

고여 썩은 물에서 맑은 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변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그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행정책임제, 공무행정실명제, 고용한정계약제 등을 점증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우선하여 공무원의 봉급을 전년도 세수의 일정 비율로 묶어야 한다(군인.경찰.소방직 제외). 절대 국민 대다수와 같이 균형적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맞다. 기울어지지 않아야 한다. 국민의 실상을 늘 점검하여 민원을 해결해 주는 행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국민은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든 공무 행정기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싶다. 반복하지만 좋은 일에도 반성은 필요하다. 이러한 우려가 단번으로 그쳐야 할 것이다. 반천년 전에 세종대왕이 걱정했던 우려가 기우(杞憂)로 그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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