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추억이 내리는 빗줄기
<수필> 추억이 내리는 빗줄기
  • 이기성 기자
  • 승인 2020.05.22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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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경
임춘경 / 수필가
임춘경 / 수필가
-광진문학 신인상 수상
-광진문학 회원
-경제학사.
-문학사.

비가 내린다.
굵어 졌다 다시 가늘어 지는 빗줄기 따라 어릴 적 고향에 대한 기억이 문득 내게로 걸어 나온다. 그 고향에는 논과 밭, 포도 과수원이 있었다. 여느 마을처럼 무성하게 높이 자란 나무들도 있는 곳이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이따금 기러기가 날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밭 가운데 물을 길어 오던 우물도 있었고, 뒷동산과 걸어서 오를 수 있는 산도 가까이 보이는 곳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보기 드물던 골프장이 있었고, 가까이에 사립 유치원, 초·중·고교 및 대학교가 있었다.

내리는 비 소리가 속삭이듯 내 어릴 적 기억들을 들려주는 듯하다. 비오는 날에는 엄마가 꽈배기를 만들어 주어 그것을 맛있게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곤 했었는데, 그 때 논이며 밭이 보이는 풍경 속에도 기러기가 날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아이들이 한가득 했다. 아이들은 공터에 모여 새끼줄 넘기, 널뛰기, 고무줄놀이, 구슬치기, 딱지치기, 공기놀이 등등을 했으며, 마을 골목 이곳저곳을 누비며 술래잡기 놀이와 저녁을 먹고 다시 모여서는 캄캄해 질 때까지 도둑잡기 놀이를 했다.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주로 오후에 나와 모여 시끄럽게 놀았는데도 어른들은 조용히 하라고 하거나 공부하라고 불러들이지 않아 맘껏 뛰놀 수 있었다. 어쩌다 아이들끼리 다툼이 있을 때나 싸우지 말라고 야단을 쳤었다.

아버지 형제들이 한 동네에 살았기에 많았던 우리 사촌들은 설 명절이 되면 우루루 몰려다니며 모든 친척들과 인척들 집을 방문하며 세배를 했고 친척들은 며칠에 걸쳐 한 집씩 차례로 돌며 떡국을 먹곤 하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던 나는 항상 이편저편 공통으로 소속되는 일명 "깍두기"였다. 널뛰기를 할 때는 널판이 쉽게 움직이지 않도록 가운데에 쪼그리고 앉았었고,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놀이를 할 때는 한쪽 인원수가 모자랄 때 그쪽에 편이 되었다. 깍두기도 못하던 동생과 사촌들은 나를 부러워하는 듯 했다. 봄이면 마을에서 쑥이며 냉이를 캐서 할아버지께서 짜주신 작은 바구니에 담아 왔었다. 초등학교 등교 길에 친구들이 골프장 부근 아카시아 나무에 좋은 향을 잔뜩 풍기며 탐스럽게 달려 있던 그 꽃송이를 따 주어 꿀맛 같았던 그것을 먹었었고, 신맛이 나던 넝쿨 잎을 따서 맛보았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철조망 안으로 무성한 나무들이 담처럼 서 있던 골프장을 이따금 엿 보았었다. 그 안은 잘 정돈된 잔디밭이 넓고 푸르게 펼쳐져 있어 낯선 풍경이었다.

우리 마을 가까이에 있던 현재 세종대학교인 수도여자사범대학 캠퍼스는 수위아저씨가 지키고 있어 겁이 나 들어갈 수 없었고, 지나는 길 철망 밖으로 피어난 붉은 장미꽃 넝쿨만 아쉽게 바라 봤다. 친척 언니를 따라 사촌들과 함께 현재 자양동인 자마장에 있었던 친척집에 놀러 갈 때면, 건국대학교 캠퍼스를 가로질러 다녔다. 가는 길에 쉬엄쉬엄 놀이도 하며 호수도 보고 그저 넓은 곳이라고 생각하며 지나갔다.

여름철에 광나루에 가서 커다란 검정색 고무 튜브를 빌려 물놀이를 하였고, 뚝섬유원지에는 한강 가에 수양버들이 있었는데 나뭇가지들이 더위를 먹은 듯 축 늘어져 있던 모습도 떠오른다.

마을에 있던 논이 언제 모두 밭으로 바뀌었는지 기억되지 않으나, 여섯 살 아이 눈에는 넓기만 했던 할머니 토마토 밭의 원두막에서 몇 시간 동안 망을 보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할머니께서 작은 바구니에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를 가득 담아 주셨다. 토마토 향내가 풍길 때면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난다.

정월 대보름 날 밤에 깡통에 불씨를 담아 돌리는 쥐불놀이도 해 보았고, 청년이었던 한 사촌이 우리 어린 사촌들을 데리고 내가 다섯 살부터 올랐다던 아차산에 올라 대보름달 구경을 함께 하며 소원을 빌었었던 기억도 있다.

버스가 다니지 않아 버스를 타려면 옆 동네인 군자동이나 화양동까지 걸어가야 했다. 그러던 우리 마을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던 것이 골프장 이전과 함께 '어린이대공원'이 들어선 것이다. 마을을 통과하는 대로가 놓이게 되면서 일부는 거주하던 집에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밭이 차츰 사라지더니 집들이 들어서고 포도밭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고향의 논과 밭, 골프장과 포도밭은 사라졌으나, 그 모습과 추억들은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이 자리에 내가 어릴 적 살던 집이 있었지. 이곳은 작은집 이었지! 저 곳은 우리 큰집 이었는데......" 하면서.

내리는 빗소리는 속삭이듯 내 어릴 적 기억들을 불러내 들려준다. 밭이 보이는 풍경 속에는 여전히 기러기가 날고 있다. 그곳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지금도 머물러 있는 능동이다. 마치 풍경 속에 한 그루 나무처럼......
조각조각 떠오르는 많은 추억들을 조각보처럼 잇다보니 어느새 빗줄기도 흐릿하게 그쳐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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